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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네 말이 맞아! 그런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0-01-04 00:00

비가 부슬 부슬 내리며 초겨울을 재촉하는 어느 날,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전화너머로 들려오던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슬픔이 베어있어 만나자는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그녀가 물었습니다.
“ 너는 행복하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 한 것은 행복하다고 하면 친구를 모른 척 하는 것 같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딱히 덧붙일 말이 없어서 였습니다.
“무슨 일 있니?”
조심스럽게 물어보며 속으로는 별일이 아니기를 빌었습니다.
“아니, 별일은……그저 사는 게 다 그렇지.”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넋두리는 특별히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중년의 걱정과 외로움이 뒤섞인 것이었습니다.
“애들은 늦게 오고 남편도 그렇고…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거니?”
“그래, 그렇지. 운동이나 뭐 그런 걸 좀 해보지 그러니?”
“그래, 운동 좋지…….그런데 그것도 팔자 좋은 여자들이나 하는 거지 내 주제에 무슨.”
“그럼 무슨 일 같은 것을 좀 해보는 건 어떠니? 시간도 그렇고 돈도 벌면 좋을 것 같은데.”
“그래, 일하면 되겠지.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니? 알다시피 주부경력만 이십 년인데…… 그리고 안 하던 일한답시고 몸이라도 아파 봐라. 혹 떼려다 붙이는 경우지.”
“음… 그렇기도 하겠네. 그럼 취미생활을 좀 해보면 좀 낫지 않을까? 너 예전에 퀼트 좋아했잖아.”
“예전에야 좋아했는데 지금은 나이 드니 그런 것도 다 시들해져서……”
“그래. 그럼 예전에 자주 만나던 애들하고 계라도 해볼까?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여서 놀면 시간도 잘 가고 재미있고.”
“그래. 좋겠지. 근데 다른 애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이런 것 같아 솔직히 만나기 싫더라.”

 

이쯤 되니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약간 무기력한 느낌과 짜증이 느껴지며 아울러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끊임없이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런데...’를 반복하면서 내가 해준 말을 무력화시키며 마치 아무리 ‘네가 아무리 충고해 봐라. 내가 너 말을 듣고 그렇게 해보나?’ 하고 버티는 것 같으니 뭐라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친구는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것일까요?

위와 같은 대화패턴을 인간관계 교류를 분석하는 탁월한 상담이론의 하나인 교류분석이론에서는 ‘Why don’t You-Yes, but’ 게임(game)을 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이라 하면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 떠오르지만 교류분석에서의 게임은 사람들 간의 관계가 묘한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끝나는 경우를 말하며 이를 심리적 게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게임은 재미가 있어서 반복하는 오락게임과 같이 인간관계에서 불쾌한 감정을 느껴도 그것이 마치 재미난 듯 계속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 것이며 정작 본인도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대화에서 자신의 생활에 대해 불만인 친구는 다른 친구의 적절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계속 yes-but 게임을 하고 있는데 도움을 주려는 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점점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한쪽은 도움을 구하는 듯 하고 상대방은 이런저런 해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바람직하고 도움이 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에게 이러한 문제가 있어’ 라고 은연 중에 도움을 구하는 메시지를 던져주고는 상대가 해결책을 제시하면 매번 ‘너의 방식(충고나 해결책)은 별 것 아니고 틀렸다’라는 메시지가 전달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친구는 왜 이런 yes-but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교류분석에서 이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즉 어릴 적 지배적인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간섭 받고, ‘시키는 대로 해라’ 는 명령이나 통제, 충고 등으로 자란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곁으로는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속마음으로는 ‘나는 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하고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나중에 자신이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만들고 누군가가 부모처럼 간섭이나 충고, 명령을 하려고 하면 그것에 따르지 않겠다는 결단을 슬며시 내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게임을 하는 목적은 뭔가 허전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애정이나 인정자극(스트로크), 관심을 받기 위해서이며 동시에 자신의 기본적인 인생태도를 반복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즉, 나에게 간섭, 명령, 통제, 충고를 한 부모(상대)는 틀렸고(You are Not OK),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은 괜찮다는 ‘나는 괜찮다(I am OK)’라는 인생태도를 반복해서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어릴 적에 형성된 것으로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출발을 합니다.

그렇다면 친구의 이러한 대화 패턴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없을까요?

첫째는 상대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려는 성급한 마음보다는 상대의 얘기를 진정으로 공감하면서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속이 상했구나!” “나라도 그랬겠다!” 등의 말로 상대의 마음을 감싸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상대에게 “뭘 하고 싶니?” “어떻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일 것 같니?” 등의 생각(해결책)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가 받고 싶은 애정 즉 스트로크(긍정적 인정자극)을 주고, 해결책 또한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게 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not-ok 태도를 확인할 기회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상대의 생각이 적절한 경우, 적극적인 지지와 인정자극을 주어 상대는 “그래, 그렇지, 난 OK야” 하고 상대방을 기분 좋게 대하게 되는 바람직한 교류가 이루어 집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게임을 연출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것은 우리가 어릴 적 무엇인가(사랑, 인정, 칭찬 등)를 얻기 위해 구사했던 전략을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된 지금은 어릴 적 전략이 적절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아닌 지금 현재에 맞는 좀 더 성숙한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다른 이의 말을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것, 말을 하는 것은 줄이고 듣는 것은 더 늘리는 것, 판단이나 비판보다는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를 수 있으며 세상 무엇보다 귀한 존재라는 기본적인 인식을 가지고 타인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인과의 교류에서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글쓴이: 박미현(전문심리상담 카운셀러(CMC), TA전문 카운셀러)
        밴쿠버 아름다운 상담센타/다문화교육심리연구소
전화: 604-588-6568(or 604-626-5943)

밴쿠버 아름다움 상담센터 에서는 매주 우울증(화요일)과 실버정신건강(수요일) 워크샵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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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C주 임상카운셀러 협회의 등록회원을 중심으로 김미라 소장을 비롯한 10명의 심리상담 전문 카운셀러로 이루어진 한인 최초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문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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