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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울 효과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11-18 00:00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한눈에도 나와 같은 ‘과’임을 직감했습니다. 자그마한 외모와 단정한 모습도 호감이 갔지만 안경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여성 센터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회화 모임이 있다는 광고를 지역 신문에서 보고 찾아간 첫날, 인종 전시장 같은 분위기와 스무 명이 넘는 아줌마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막히던 참이었고, 그 때 그녀가 가만히 들어와 빈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녀도 좀 놀란 눈치였지만 곧 옆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는 듯 보였습니다.
사실 회화도 회화지만 2년째로 접어든 캐나다 생활을 하면서 맘에 꼭 맞는 친구 하나쯤을 인종에 상관없이 가져보고자 하는 맘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날은 인사도 못하고 그냥 헤어졌는데 그로부터 한 달쯤 후 내가 듣고 있던 다른 클래스에 그녀가 찾아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맥도널드에서 뻑뻑한 햄버거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역시 수업시간에 썼던 단어가 예사롭지 않아서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흔히 말하는 일류 대 영문과 출신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는 한국서도 같은 동네에 살았었고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이고 남편들도 같은 취미를 가져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비 내리는 밴쿠버에 좋은 친구 한 가족만 있으면 인생이 즐거울 수 있을 거라고 노래를 부르던 참이라 정말 잘되었다 싶었지요. 내가 처음 짐작한대로 그녀는 역시 그리 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영어가 주 관심사인 우리는 이런 저런 모임에 같이 나가고 아이들 공부도 서로 의논하며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안지 4년째. 하지만 왠지 우리 사이는 처음과 같은 거리에서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더 이상 가까이 가기를 거절하는 것인지 그녀가 거절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나에게 그녀는 친구라고 부르기엔 너무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이였습니다. 막상 만나서 얘기를 하면 웃기에 바빠 정작 필요한 얘기는 전화로 해야 할 만큼 우리는 비슷한 감각의 유머를 가졌고 서로의 고민에 진부하지 않은 충고도 주고받으며 무엇보다 바쁘게 삶을 이끌어간다는 점에도 여지없이 잘 맞는 한 짝 인 듯 보이는데 어째서 더 이상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녀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고, 내가 즐겁다거나 행복하다는 단어를 쓰면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를 보는듯한 시각을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도 이론적으로는 행복이 결국 추구해야 할 절대가치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그리 쉽게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견딜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그녀의 대답은 항상 이랬습니다. “좀 우울했어.” 이유는 항상 다르지만 항상 우울할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울은 결국 사색이라는 뜻으로 생각 없이 잘 지낸 사람은 어째 좀 무식해 보이는 듯 한 어투인데, 같은 뱃속 출신인 형제도 각각 인데 남하고야 다른 것이 더 합당한 일임을 왜 모르겠습니까?
정작 내가 불편했던 것은 그녀가 너무 논리적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할 때 였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그것이 심각하던 아니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해답을 듣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그저 얘기가 하고 싶을 뿐 인 것입니다. 잘 들어주기만을 기대하는데 해답까지 얹어 주면 마치 충고를 듣거나 뭔가를 털어 놓고 있는 내가 뭔가 잘못된 사름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얘기했나라는 후회감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 해답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본인은 세상이 두 쪽 나도 이게 정답이라고 얘기하면 속으로 “누군 몰라 이러냐? 안되니까 그러지” 하는 맘이 생기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렇게 그녀와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오히려 더 답답해질 때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바로 그녀의 모습이 내 모습임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듯 그녀가 내 과임을 처음부터 알았듯, 나를 답답하게 하는 그녀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해답을 몰라 저러나 싶어 가장 평범한 진리를 일러주고, "인간들 사이의 감정 선이 복잡하게 얽혔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 자르듯 자르라 일러주고, 어떤 고민이던 정확한 해답을 일러주는 일이 마치 타고난 사명인양 잘난 척을 하는 바로 나의 모습. 물론 누구나 내 앞에서는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물어보면 나의 해답은 간데없고 모두들 자기식대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결국 나 스스로는 사람들을 도왔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도울 수 없었고, 나로부터 그리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는지 모릅니다.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이론에서는 이를 ‘거울효과’라고 합니다. 나와 타인과의 교류를 잘 분석해 보면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같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알게 되므로 사람은 사람을 통해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입니다. 타인에게서 좋은 면과 싫은 모습을 본다면 그것은 내속에 있는 나의 모습일수 있다는 작은 자각이 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며, 상호 인정을 통한 한층 기분 좋은 교류(I am OK, You are OK)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를 통해 나를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그것을 수용하고 변화하려 노력한다면 어느새 그 거울속에 좀 더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박미현, 심리상담 전문 카운셀러 (CMC). TA전문 카운셀러
밴쿠버 아름다운 상담센터
전화: 604-583-6568 (or 604-626-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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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아름다운 상담센터 ‘마음’칼럼
  칼럼니스트: ‘마음’칼럼
  • BC주 임상카운셀러 협회의 등록회원을 중심으로 김미라 소장을 비롯한 10명의 심리상담 전문 카운셀러로 이루어진 한인 최초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문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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