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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수단과 목적 정립-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11-23 00:00

정치가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권력이 꽃과 같아서 열흘 이상 붉음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만다는 뜻이다. 특히 지금 권력을 쥐고 있지 못한 편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편을 향해 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대방의 권력이든 자기가 잡으려는 권력이든 권력이란 이렇듯 덧없다고 하면서, 왜 권력을 잡겠다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을까? 모두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이렇게 권력을 쥐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그 권력으로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일념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에 사법고시 합격자들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본 일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 자체를 두고 자기들이 설정한 인생의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이것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떻게 사법고시 합격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심히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장한 일이고, 또 그 일을 위해 일로매진한 결과라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합격 자체가 정말로 인생의 목표인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은 이웃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정의가 보다 광범위하게 실현되도록 한다는 숭고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가? 사법고시 합격은 이런 원대한 목표를 향해 가는 첫걸음에 불과한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지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들이 목적으로 삼고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법고시 합격생만이 아닌 것 같다.  요즘 선거철에 돌입하면서 각종 선거에 입후보로 나서는 이들은 어떤가? 그들도 선거에 당선되는 것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났더라고 한 번 높은 자리에 앉아 목에 힘을 주면서 권세를 누려보는 것이 인생의 목표요 최고 가치라 보는 것이나 아닐까? 
너무 이상적인 공염불인지는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당선되기 원하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 내가 가진 재능을 더 효과적으로 발휘해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길 원하기 때문이라 하는 것이 정석이 아니겠는가? 당선은 어디까지나 내가 속한 공동체에 더욱 크게 봉사하기 위한 출발이요 수단일 뿐이다.
선거에 당선되는 것을 목적으로 보느냐 수단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정치 풍토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 생각된다. 내가 당선하는 것 자체가 목표라면 상대방을 중상 모략하는 등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울 것이다.
그러나 당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긴다고 하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 생각한다면, 나와 나의 상대자들 중 누가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섬길 능력의 소유자인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만은 아무튼 이론적으로라도 내가 당선되는 것보다 상대방이 당선되는 것이 사람들을 섬긴다는 나의 궁극 목적에 더욱 부합한다고 생각될 경우 스스로 사퇴하는 일까지 있을 수 있다. 물론 선거 도중 사퇴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더 큰 안녕과 유익이라는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 사퇴하는 것이다. 물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제어 보아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섬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나의 당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장자」에 보면 안회가 위나라 백성들이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고 있기에 자기가 가서 돕겠다고 했다. 그의 스승 공자가 만류했다.  안회는 자기가 인격적으로나  정치적으로국가 경영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추었는데 못 가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다. 공자는 그래도 아직 한 가지 모자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을 굶기는 일’(心齋)이라고 했다. 내 속에 있는 모든 이기적 욕망을 비우고 나서 정치판에 들어가야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가?「장자」를 몰랐던 간디도 결국은 장자와 같은 원리에서 정치에 참여했다. 그의 ‘진리파지’(眞理把持)의 원리는 나나 우리 편만의 이익이 아니라 상대방을 포함하는 우리 모두의 공동 이익에 이바지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출세와 당리당략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이렇게 당선이나 집권이 결국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한 수단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할까?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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