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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개 삼년 -‘연륜’의 특권 -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11-20 00:00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한다는 속담의 현대판은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 “대학 개 삼년이면 화염병을 던진다.” “(태권도) 도장 개 삼년이면 돌려차기를 한다” 하는 등으로 변했다고 한다. 어떻게 변했든, 한자리에서 보고 듣고 배우기를 꾸준히 하면 거기서 행해지는 일을 대충 그대로 따라서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을 나타내기는 일반이다.
개의 나이 일 년이 사람의 나이로 따져 칠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 ‘서당 개 삼년’이라면 사람의 경우 무려 21년을 서당에서 보낸 셈이다. 그 정도면 어떤 개든 주워들은 대로 그럴 듯하게 풍월을 읊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그렇게 풍월을 읊을 수 있는 개는 분명 ‘강아지’였을 것이다. 영어 속담에 “늙은 개에게는 새로운 재주를 가르칠 수 없다”(You can’t teach an old dog new tricks)는 말이 있다. 어린 강아지일 때부터 서당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풍월을 할 수 있었지, 늙어서 서당에 왔다면, 삼년이 아니라 석삼
년을 있어도 필경 풍월을 제대로 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주위를 보라. 이 곳 캐나다로 이민 온 가정을 살펴보면, 열 살 미만의 어린 아이들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과연 인간은 개보다 지능지수가 높아, 개의 연령으로 따지면 한두 달 안에) 영어를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삼년이 아니라 삼십년을 살았어도 여전이 떠듬거리는 콩글리쉬(Konglish)를 쓸수밖에 없다. 따라서 풍월을 제대로 읊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결국 서당에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하는 것 보다는 ‘언제부터’ 살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늙은 개는 이제 배우기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이 든 사람은 아예 영어고 뭐고 더 이상 배울 마음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나이가 들어 배우는 경우, 물론 아이들처럼 조잘조잘 자유스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유창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노력여하에 따라 별 불편 없이 의사를 표현하고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갈 수 있다.
독일의 시성 괴테(Goethe)도 나이가 80이 되어서「아라비안나이트」를 읽기 위해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어린 강아지가 풍월을 멋있게 읊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풍월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필경 졸졸 외우기는 했겠지만 그 정도에서 더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 깊은 뜻은 소위 ‘연륜’이 쌓여야 알아낼 수 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또 어린 강아지가 풍월을 읽는 등 여러 가지 잔재주를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인생에서 배울것이 어찌 잔재주만이겠는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삶의 깊이와 폭을 뚫어보는 깊은 종교적 혜안과 통찰이요,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지혜다. 이런 일은 어쩔 수 없이 나이가 지극하고, 어느 정도 인생의 오르내림을 겪어보아야만 얻을 수 있는 특권들이 아닐까?
공자님은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 30에 굳게 서고, 40에 미혹이 없어지고, 50에 하늘의 뜻을 알고, 60에 귀가 열리고, 70에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는 자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릴 때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또 나이가 들어서야 할 수 있는 일, 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것이‘연대기적 연륜’을 ‘의미 있는 연륜’으로 바꾸는 일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연륜이 쌓임을 향유’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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