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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 표리부동 -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11-20 00:00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먹어보면 시기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라 먹을 수 없는 살구다. 겉만 번듯하고 내용이 거기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사람을 대할 때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우가 허다하니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겉과 속이 반드시 다르지만은 않는 경우도 있은 것 같아 아리송하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가지 속담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겉만 가지고 속을 알아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인가. 특히 사람의 경우 그야말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영어로 포커페이스(poker face)라는 말이 있다. 포커라는 서양 카드 놀음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손에 좋은 패가 들어오든 나쁜 패가 들어오든 그것을 상대방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한 결 같이 무표정한 얼굴을 해야하는데, 이렇게 시치미를 뚝 딴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정도 차이는 있으나 모두 이런 포커페이스를 가지고 히루하루 살아가는 셈이다.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우리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본마음을 의미하는 ‘혼네(本根)’와 사람을 대할 때 들어내는 태도를 뜻하는 ‘다테마에(建前)’를 엄격히 구별한다고 한다. 점원으로 일할 경우 자기 속마음이 어떠하던 상관할 것 없이, 손님이 오면 손님에게는 언제나 손님에게 대할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협상을 할 때도 자기가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그것은 일단 감춰두고, 상대방의 말에 계속 ‘나루호도’(아무렴요)를 덧붙여 준다. 나쁘게 말하면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이중성이라고 할 수 있고, 좋게 말하면 사람을 대할 때 자기의 개인적 감정을 함부로 표출하지 않는 전문성의 발휘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의 속사람과 겉사람이 다른 경우를, 심리학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모두 가면(假面)을 쓰고 다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어의‘인격(personality)’이라는 말 자체가 ‘가면’을 뜻하는 라틴말‘persona’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중세 연극에서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배역을 했는데, 모두 자기에게 주어진 가면에 맞게, 슬픈 얼굴의 가면을 썼으면 슬픈 소리를, 웃기는 얼굴의 가면을 썼으면 웃기는 소리를 냈다. 라틴말 persona는 그것을 ‘통하여(per) 소리(sona)’를 낸다는 말의 합성어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깊은 차원의 우리 됨됨이와는 상관없이 선생이면 선생, 부인이면 부인으로 사회에서 주어진 역을 수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참 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장자(莊子)」32편에 보면,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겠지만, 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개 사람의 마음은 산과 강보다 더 험하여, 하늘을 알아보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하늘에는 사계절과 아침저녁의 구별이 뚜렷한데, 사람이란 표정을 굳게 하고, 감정을 깊이 감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신중한 것 같지
만 속으로는 교만한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재능이 훌륭한 것 같지만 실은 덜 되먹은 사람이 있고, 일견 일을 성급하게 처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 통달한 자가 있고, 겉으로는 건실한 것 같지만 나태한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부드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사나운 사람이 있다. 따라서 의(義)에 목마른 것 같이 달려가는 자들도 경우에 따라 그 의를 뜨거운 것에서 도망가듯 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시험할 때, 먼 곳으로 일을 보내 그 충성심을 알아보고, 가까이 두고 일을 시켜 그 공경심을 알아보고, 번거로운 일을 시켜 그 재능을 알아보고, 갑작스런 질문을 하여 그 재치를 알아보고, 어려운 약속을 하게 하여 그 신의를 알아보고, 재물을 맡겨 그 어짐을 알아보고, 위험을 알려 줘 절의(節義)를 알아보고, 술을 마시게 하여 그 자제력을 알아보며, 남녀 함께 자리하여 성(性)에 대한 태도를 알아보게 하라. 이 아홉 가지를 살펴보면, 덜된 사람들(不肖人)이 가려지게 되리라.”
결국 세상에는 위선자, 가식하는 자가 너무나 많아 옥석을 가리기 어려우니 이런 여러 경우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를 알아보고 그 사람의 참된 됨됨이를 가려보도록 하라는 말이다. 예로부터 돈과 주색(酒色)을 주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느니, 그 사람의 친구들을, 혹은 그 사람의 장서(藏書)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느니 하는 말이 있지만 여기서는 아홉 가지로 확대, 세분된 셈이다.
사실 이 아홉 가지 항목은 내가 남을 알아보기 위한 잣대로 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나 스스로를 살피기 위한 체크 리스트로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물론「장자」에서는 이렇게 ‘덜된 사람’의 상태를 면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선 그 정도만 해도 내가 나도 모르게 빛 좋은 개살구로 거
들먹거리며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는가.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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