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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걸면 귀걸이 - 수지부모(受之父母) -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11-01 00:00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른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똑 같은 물건을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어떤 사물을 놓고 자기에게 편리한대로,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한다는 뜻이리라. 극히 자의적인 해석방법이나 적용방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것을 ‘녹비(鹿皮)의 가로 왈자’라 한다. 사슴 가죽에 써놓은 가로 왈(曰)자는 가죽을 아래 위 세로로 당기면 날 일(日)자가 된다. 그러다가 필요하여 다시 가로로 당기면 가로 왈(曰)자가 된다. 엿 장사 마음대로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속담을 좋게 말하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탁 트여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융통성과 유연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풀 수도 있으리라. 이른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냐냐 주의’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라고 하는 ‘도도 주
의’적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귀걸이 코걸이’를 말하는 이 속담을 들을 때마다, 그 옛날에도 한국에 코걸이가 있었던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성경에 보면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가 금코걸이와 금팔찌를 얻어서 하고 있었다는 말이 나오고(창세기 24:22, 29), 옛날 토인 영화 같은 데 보면 토인들이 뿔로 만든 코걸이를 코에 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중국이나 한국 같은 곳에서도 이런 코걸이가 있었단 말인가? 그래도 이런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동양에도 분명 귀걸이 뿐 아니라 코걸이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놀라운 사실은 귀걸이 코걸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걸이 문화’가 젊은이들의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 곳 캐나다 대학교 학생들만 보더라도 귓밥뿐 아니라 귀 둘레로 온통 벌집 쑤시듯 구멍을 뚫고 셀 수도 없이 많은 귀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입술, 혓바닥, 눈썹, 젖가슴, 배꼽, 그 외에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우리 몸에서 뚫을 수 있는 부위는 모두 뚫어 거기다 무슨 ‘걸이’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걸이들을 걸고 다니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나도 이제 구세대에 속하는가? 나하고 별 상관이 없는 학생들이 그렇게 뚫고 다니는 것을 보면 별것 아닌데, 내 강의를 듣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들이 그러고 다니는 것을 보면 말리고 싶어진다.
이렇게 ‘몸 뚫음(body piercing)’문화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처음 시작할 때 코 한 쪽을 뚫고 반짝이는 것을 박던 것에서 시작하여 거기다 고리를 거는 것이 유행한 것을 보면 분명 인도 문명의 전파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 후 오만 군데를 다 뚫는 것을 보면, 옛 아프리카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가히 북미의 창조적 진취성, 저돌성을 유감없이 들어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무튼 내 몸은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좋은가? 구멍을 뚫든 잘라내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인가?
아무리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 그런 시대에 살지만, 우리 몸이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조금은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세계 여러 종교 전통에서는 이렇게 자기 몸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유교 경전 「효경(孝經)」에 보면 “우리 몸은 머리털과 피부까지 포함하여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으로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 이것이 효의 시작(身體髮膚 受之父母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고 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말씀을 굳게 믿고 개화기에 상투를 자르라는 정부의 단발령(斷髮領)을 목숨을 걸고 거부했다. 머리를 자르느니 차라리 목을 치라고 했다. 물론 머리카락 같은 것마저도 건드리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 몸은 우리 부모님이 주신 것, 잘 간수하고 있다가 우리 몸을 통해 훌륭한 자식들이 생겨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하는 생각은 지금도 경청할 생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바울은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오 하느님이 거하시는 전이라기도 하고,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15)하며, 우리 몸이라 하여 우리가 함부로 할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장자(莊子)」제22편에 보면,“도(道)를 얻어서 소유할 수 있습니까?”하는 순(舜) 임금의 질문에 승(丞)이라는 스승이 “당신의 몸도 당신이 소유할 수 없거늘 어찌 도를 얻어 소유할 수 있겠소?”하는 문답이 나온다. 순 임금은 계속해서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것이란 말입니까?” 하고 묻고, 여기에 승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하늘과 땅이 당신에게 맡겨 놓은 형체(天地委形也
)”라 했다. 우리 몸은 하늘과 땅의 합작품이지 우리가 나 개인의 소유물로 알고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현상세계 전반과 함께 몸을 경시하는 듯하지만, 엄격히 따져보면, 불교에서도 몸을 대단히 중시여긴다. 예를 들어 티끌 하나 안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고 가르치는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서 볼 때 우리 몸에 물론 온 우주가 들어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속에 우리의 조상들이 다 들어 있고, 우리 속에 우리의 후손들이 다 들어 있다. 우리는 이 처럼 중요한 존재다. 우리 뺨을 만져서 조상들의 훈기와 자손들의 숨결을 느끼고, 우리 몸을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무튼 젊은이들의 ‘걸이 문화’를 보면 말세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겠지만, 걸이 문화는 옛날에도 있었고 그랬어도 그것으로 세상이 끝나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도 세상은 계속될 것이고, 그러다가 보면 이런 것도 바뀌는 날이 오겠지 한다.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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