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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그 뜨거운 감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8-15 00:00

1999년, 저의 미국 생활도 어언간 1년이 넘어선 때였습니다. 영어공부도 할 겸, 또 늘 하던 일이 그 일이라 열심히 미국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미국 ABC 방송에서 연말에 일종의 테스트 성격으로, 전혀 새로운 방식의 퀴즈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정말 신선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늘 시청률 경쟁에서 비실비실하던 ABC 방송의 효자로 자리잡아 매주 시청률 1위를 독식하다시피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바로 요즈음 다시 시작한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 후에 약 3년간 방송되다가 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던 해인 2002년 미국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2002년 한국에 가니 한 방송국에서 매우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금액수가 좀 적은 것을 빼고는 세트조차 거의 비슷했습니다. 원 프로그램은 100만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10억 정도를 주는데 한국 프로그램의 최고 상금은 1000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사실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영국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입니다. 워낙 프로그램이 재미있으니까 세계 각국에서 돈을 주고 포맷, 즉 프로그램의 형식에 대한 저작권을 사다가 각기 나라에 맞게 방송을 했거나 하고 있는데 그 나라 수가 거의 100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도 돈을 주고 저작권을 샀는가?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그 프로그램하고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입니다. 누가 봐도 비슷한 프로그램인데 말이지요. 이 원고를 쓰느라고 자료를 보니 심지어는 베트남에서도 돈을 주고 사갔더군요. 문제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비일비재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른바 베끼기는 방송가의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그저 아이디어를 살짝 빌려오는 정도는 그냥 애교로 보아줄 수 있지만 프로그램 형식을 통째로 가져다 쓰면서 나 몰라라 하는 프로그램도 참으로 많습니다. 만약 제가 아는 그렇게 베낀 프로그램을 다 말씀 드린다면 아마 상당히 놀라실 겁니다.

이 프로그램 베끼기는 어제오늘에 시작된 일이 아니라 꽤 역사가 깊은 일입니다. 뭐든지 역사가 깊으면 깊을수록 없애기가 어려운 법인데 어쩌면 이 일도 그래서 더 끊기가 힘든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끼는 대상은 예전에는 주로 일본방송이었는데 지금은 미국방송도 열심히 보는 모양입니다.
저작권을 사고 파는 일은 그 어떤 형태의 저작권이건 간에 이제 국제적인 약속이자 불문율입니다. 다시 말해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지요. 특히나 방송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방송은 무슨 핸드백처럼 몰래 몰래 숨겨서 만들어낼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교묘하게 가져다 쓰면 막상 그 것이 저작권 위반인지 따지기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저작권위반 여부를 따지기 전에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자존심 문제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한국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방송프로그램의 형식에 대한 저작권을 사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것이 큰 뉴스가 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헛갈렸습니다. 지금 이른바 문화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때문에 미국 친구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데 방송은 여전히 무사태평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슬아슬합니다. 걸리고 안 걸리고를 떠나 그 무슨 창피란 말입니까?

우리들이 저작권에 대한 무개념은 여기 캐나다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을 방송국에는 일언반구 없이 마음대로 복사해다가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여하튼 지금 벌건 대낮에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어차피 베낀 방송을 베낀 것이니 피장파장인가요?



사는 일, 그리고 방송 혹은 영화
글쓴이 배인수는 1959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칼럼니스트: 배인수 | Tel:604-430-2992 | Email: bains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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