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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하는 존재와의 대화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7-03 00:00

엄마는 당황스럽다. 며칠 전 좋은 볕에 산책 나갔다가, 돌이 지나지 않은 둘째가 갑작스럽게 울어 제치는 바람에 어쩔 줄 몰랐다.  젖도 잘 먹고, 기저귀는 안 젖었는데, 뭐가 못마땅한지 우는 목소리에 성질이 실렸다.  사람 많은 곳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대니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허겁지겁 우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올 수 밖에.  그 뒤로도 잠투정이라곤 없던 아이가 잠들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질 않나, 시도 때도 없이 떼쓰듯 울어대는 통에 엄마는 그저 안절부절이다.

아빠는 황당하다. 놀이터에서 열심히 모래장난하고 있는 세 살배기 아들. 이제 갓 돌이나 지났을까,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작은 여자 아이 하나가 모래장난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자꾸 가까이 다가오는데… 이 녀석 대뜸 가지고 놀던 모래삽으로 아이를 때리고야 만다.  결국 아이는 엉덩방아를 찧고 와~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놀란 아이엄마는 아이를 얼른 품에 안고 어르면서, 아들과 아빠를 쳐다보는데.  말로 안 했다 뿐이지, 그 바라보는 눈매가 "아니 애가 어떻게 이렇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 버려뒀어요?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신 거예요.!!" 다를 바 아니니… 아빠는 졸지에 애를 잘 못 키운 사람이 돼서 억울하기도 하고, 왜 내 아들이 저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나 싶어 걱정도 되고, 그래도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는 가르쳐야지 싶어, 아들한테 따끔하게 혼을 내고야 만다. 

말하는 존재인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연결된다. 말, 즉 언어가 의사표현의 수단이자,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전달에 있어 "말", 즉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채 안 된단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 몸짓, 그리고 말하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 의사전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직까지 우리 어른들이 쓰는 언어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편한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 

울음이 그렇다.  아기들은 울어서 자신이 배고프다는 뜻을 엄마에게 전달한다.  아기들은 울어서 자신의 기저귀가 젖었다는 것을 알린다.  아이의 자지러진 울음은 남들 앞에서 엄마를 창피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산통(colic)으로 배가 아프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꿈을 꾸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이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신생아들의 두뇌는 다 큰 어른의 25%에 지나지 않는다.  이 두뇌의 크기는 만 2살 때까지 거의 3배 이상 커지게 되는데, 크기가 어른의 두뇌와 얼추 비슷해진다고 해도, 여러 가지 감각, 감정, 생각을 복합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정리해서 언어로 표현해내기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이의 행동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행동으로 아이가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세 살짜리 아이는 처음 본 상대를 인식(나보다 어려 보이고 약해 보이는 여자아이)하고,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여(예를 들면 짜증, 분노, 화 혹은 모래장난에 대한 몰두등), 그것을 만만해 보이는 대상을 향하여 행동으로 나타낼(때린다)만큼 지능적이지 못하다. 아이는 자신이 재미있게 노는데 뭔가 거치적 거리는 것을 손으로 치웠을 뿐이다. 그 손에 마침 모래삽이 들려있었던 것이다. 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어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그래서 어떻게 판단되고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알지 못한다.  한껏 재미나게 놀고 있는데, 졸지에 폭력적인 아이, 훈육이 제대로 안된 아이로 낙인(?)찍혀 버리고 만 아이야 말로 가장 황당한 사람이 아닐까?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의사를 표현한다.  울고, 웃고, 소리를 지르고, 뛰고, 성질을 내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린다.  나를 표현하고, 나의 상태와 생각을 나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런 아이들의 비언어적 의사표현은 많은 경우 본능적이고, 감정적이고 즉각적이다.  순수하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규범적인 어른들의 반응이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무게로 다가갈 수 있다.  아이의 마음결을 누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마", "그러면 안돼" 라고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할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아이가 그 행동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읽는 것이다.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화났어?" "속상해?" "뭐가 잘 안돼?" 라고 물어보자. 

어떻게 처음부터 아이의 비언어적 표현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린 이미 다양하고 창의적인 비언어적 의사표현수단에서부터 "말"이라는 제한된 표현수단만 가지고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을…  말하지 못하는 존재와 대화할 때 필요한 것은 말 이외의 표현수단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을 나의 가치와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판단하기 보다는, 그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그 마음을 알아주고, 그 감정을 살펴주는 일이 필요하다. 이렇게 아이는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아이는 온 몸으로 우는 것 외에는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표현할 길이 없지만, 안아주는 두 팔에서, 그 울음의 의미를 헤아리려는 다정한 목소리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작은 성취감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안정감과 성취감으로 아이는 세상을 향해 한 발 더 내 딛는 것이다. 

필자 김은주 사회학과 사회사업을 공부했다.  지역사회에서 가족, 노인, 청소년과 함께 일했고, 현재 썩세스 초기아동발달팀에서 일하고 있다.


썩세스 초기아동발달팀에서는 여름을 맞이하여, 7,8월 다양한 야외활동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나, 6세 이하 아동양육과 관련된 상담은 604-468-6101로 하시면 됩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칼럼니스트:조은숙
  • 석세스의 가족지원 및 심리상담프로그램 담당자
  • 김은주/써니윤
  • 영유아발달 프로그램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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