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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를 떠나보내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6-12 00:00

오는 8월이면 큰 아이가 대학공부를 위해 집을 떠난다. 이제 조금있으면 그 아이의 도시락을 싸주고 밥을 해먹이고 빨래를 해주고 늦게 일어난다고 잔소리하는 일도 끝이난다. 겨우 18년, 그렇게만 같이 살고 떠나는 자식을 나는 평생 데리고 살 것 처럼 생각했다.


늘 자신의 성취를 좇아 몸과 마음이 바빴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을 아이. 여름방학의 한가로운 시간에 오랜만에 손빨래를 하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 나는 장가 안가고 엄마하고 같이 살거야” 라던 다섯살짜리 꼬마. 부모의 결정에 따라 낯선 외국으로 이사갈거라는 말에 “미국에는 친구도 없고 나는 영어도 모르쟎아, 나는 안 갈거야”. 라면서 울어재끼던 그 3학년짜리 아이가, 이제는 영어권사회에서도 상당한 리더쉽을 갖춘 청년으로 성장했다.


한 가지 후회가 남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그 길지 않은 시간에 왜 그리 조급하고 힘들어 했는지. 자녀가 축복이 아니라 내게는 둘러메고 행군해야하는 짐이었다. 내 인생에 필요하긴 하지만 상당히 힘이드는 존재. 어릴 때는 그저 아이가 빨리 잠들어서 조용해졌으면 했고, 좀 커서는 말썽 안부리고 공부 잘하면 다 인줄 알았다. 발표회니 필드트립이니 아이 때문에 과외로 들여야 하는 시간이 짜증나기도 했다. 자녀가 짐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깨달음은 왜 이리도 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걸까. 아이와 함께하는 게으르고 장난끼 어린 행복한 시간들, 깔깔 웃어보는 시간들을 왜 더 많이 가져보지 못했을까.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되니 18년의 시간 중에서 놀러가고, 맛있는 것 먹고, 아이의 작은 발표회에 가서 박수쳐주던 그런 기억만 남는 것을.


넘치는 애정표현은 자녀훈육의 금기라고 여기시던 친정엄마는 딸을 시집보내놓고 못다보인 애정을 쏟아놓으시느라 며칠 전에도 반찬거리며 보약이 담긴 소포를 바다건너 캐나다로 부쳐오셨다. 절제의 미학을 가진 한국어머니들은 그 사랑을 가슴 속에 켜켜로 쌓아두고 조금씩 오래 내보이신다. 그 사랑도 귀하고 귀하다. 하지만, 아이가 함께 있을 때 알맞은 양만큼의 사랑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 충분히 사랑한 부모는 아이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가 혼자서의 삶을 독립적으로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에 다름아니다. 자식을 잘 키웠다면 떠나보내는 일도 잘 하자. 부모가 떠나보내주지 않으면 부모를 잘 떠날 수 있는 자식은 없다. 부모를 제대로 떠나지 않은 자녀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란 어렵다. 부모와 연락하지 않고 살거나, 지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산다고 모두 부모를 떠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부모와 함께 살면서라도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부모와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부모를 떠난 것이다. 건강한 성인으로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떠나기 힘들다. 반대로 홀로서기가 안되는 부모는 자식을 떠나보내기 힘들다.


이제 아이는, 아침에 혼자 일어나야 하고, 혼자 밥을 챙겨먹고, 자기 이름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자기 혼자 비자수속을 할 것이다. 저녁말씀묵상을 할지말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지, 어떤 친구들과 어떤 식의 관계를 맺어갈지, 누구와 결혼을 할지도 부모인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성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공항 출국장에 가면 아무리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이라도 더 이상은 동행할 수 없는 라인이 있다. 그 라인 너머로 혼자 가야하는 아이를 위해 부모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오직 아이의 인생을 위해 축복해주는 일과 감사하는 일이다. 아이는 이미 해야할 효도를 다 했다. 아이로 인해 내 삶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경험들이 만들어졌다. 내가 아이에게 해준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나는 이미 받았다. 이제 그 아이와 우리 부부는 성인 대 성인으로, 친구처럼 만나기를 원한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가 경험할 외로움과 경쟁과 가치관의 혼란, 야망과 좌절의 시간에 돌아와서 영혼과 육신을 회복시킬 수 있는 평온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뒤에서 잠잠히 그 아이를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필자 조은숙
석세스에서 가족상담가로 일하고 있다. 가족학 박사,  BC주 Registered Clinical Counsellor, Univ. of Wisconsin정신과 연구원 역임


심리상담은 개인적, 가족적 문제를 예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석세스에서는 비밀이 보장되는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며, 저소득층에게는 저렴한 상담비가 적용됩니다 (상담신청 604-468-6100).  청소년 진로탐색 그룹 7월모임에 관심있는 세컨더리 및 대학생 그리고 부모님들을 초대합니다 (7월2일  6:30pm 석세스 트라이시티 서비스 센터, 초대손님: 현직 엔지니어들) 문의 및 등록전화 (604-468-6100) 위 프로그램은 United Way, 한인신용조합과 한아름마트의 지원으로 운영됩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칼럼니스트:조은숙
  • 석세스의 가족지원 및 심리상담프로그램 담당자
  • 김은주/써니윤
  • 영유아발달 프로그램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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