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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 두렵고도 설레이는 이름으로…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6-05 00:00

나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푸른 제복 속의 아버지는 어느 나라 왕자님 못지 않았고,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사병들이 거수경례라도 할라치면, 꼭 내가 공주님이라도 된 듯, 혼자 으쓱하곤 했다. 
나의 아버지는 호랑이 대대장님이셨지만,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하신 분이었다.  당신이 경상도 남자라, 또 군인이라 딸들에게도 무뚝뚝하게 대할까 봐 당신 스스로 애써 노력하시고 마음 한 켠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셨다. 


중학교 때였던가, 엄마가 외갓집엘 다니러 가신 때가 마침 용돈 받는 날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당연히 어머니께서 돌아오신 후에 용돈을 받으리라 여기고 있었는데, 뜻밖에 아버지께서는 봉투 3개를 준비하셨다.  내가 받은 봉투엔 빳빳한 새 돈 3000원이 새하얀 종이에 싸여 들어 있었고, 그 하얀 종이엔 “쓰고, 더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해라.” 이 한 문장, 까만 사인펜으로 쓰여있었다.  얄팍한 군인월급을 모르던 철없을 나이는 아니었으니, 아버지가 나의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허세일수도 있었다.  그냥 말만 그렇게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그 짧은 문장에서 나를 향한 아버지의 믿음을 느꼈다. 내가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는 아버지의 인정, 그리고 내가 더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들어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약속을 읽었다. 이런 아버지의 믿음과 온전한 지지는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힘든 선택을 할 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날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은 늘 나에게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었다.   

다가오는 6월 21일이 아버지의 날이다.

우리 세대만 해도 낳으실 때 괴로움이나,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신 공로는 주로 어머니께 돌아가기 마련이었고, 아버지는 엄부자친(嚴父慈親)이라 엄하고 권위적인 존재로만 여겨지곤 했다.  세월이 많이 변해, 이제 많은 아빠들이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하고, 아이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도 마음을 표현하는데 멋적고 익숙지않기만 하다.
뭘 어떻게 해야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는 건지.  그냥 저 아이가 커서 제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할 때 든든히 밀어줄 수 있도록 열심히 버는 것이 아빠의 몫이 아닌가 싶을때,  잠시 생각을 모아보자. 
나는 무엇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는지. 아버지가 내게 준 아픈 기억이나 혹은 좋은 기억이 있다면 어떤 순간들이었는지. 학교 행사에 부모님이 참석하지 않아 슬펐던 기억이 있으면서도, 일에 치여, 혹은 쑥스러워 아이의 학교행사에는 아예 갈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지만 치명적이었던 그 순간들을, 지금 나는 또 내 아이에게 되풀이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아이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반쪽이다.  그 반쪽을 통해 아이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생명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실감할 수만 있다면, 두렵고 떨리지만, 설레임으로 “아버지”노릇을 만끽하자.  내가 아이로 인해 뿌듯할때가 언제인지 알려주자. 이쁘면 이쁘다고 말하고, 힘들땐 힘들다고 얘기하자. 그래서 아이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 또 아버지를 인간대 인간으로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면, 그건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없어지지 않을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세상에 좋은 아버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 그 두렵고 설레이는 이름이 나에게 주어졌을때, 내 마음을 아이에게 여는 것, 좋은 아버지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필자 김은주 사회학과 사회사업을 공부했다.  지역사회에서 가족, 노인, 청소년과 함께 일했고, 현재 썩세스 초기아동발달팀에서 일하고 있다.


썩세스 초기아동발달팀에서는 아빠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아빠! 나와 함께 놀아요” 프로그램을 지난 1년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6월 20일(토)엔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여, 코퀴틀람 타운센터 공원 운동장에서 미니 올림픽을 개최합니다.  아빠 혹은 할아버지가 포함된 모든 가족이 참여할 수 있으며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행사에 참여하시길 원하시는 경우, 혹은 초기아동발달 및 관련 프로그램에 관한 문의는 604-468-6101로 하시면 됩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칼럼니스트:조은숙
  • 석세스의 가족지원 및 심리상담프로그램 담당자
  • 김은주/써니윤
  • 영유아발달 프로그램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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