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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사상의 비교 사상적 의미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6-05-15 00:00

불교 사상 중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중관학파의 공 사상과 선(禪)불교의 가르침을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 사상은 그리스도교 신학 중 특히 신관(神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에서 공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논의가 가장 많다. 대표적인 예가 교토(京都)학파와 서양 신학자들이 공 사상을 논의한 것을 책으로 엮은 'The Emptying God'이다.

사실 공 사상과 모든 면에서 정확하게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비슷한 생각은 세계 여러 종교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노자의 '도덕경' 제1장에 "말로 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닙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힌두교 '우파니샤드'에서도 궁극 실재를 '네티 네티(neti-neti)’라고 하는데, '이것이라 할 수도 없고 저것이라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리스도교 전통 중에도 똑같지는 않지만 공 사상을 생각하게 하는 사상이 많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6세기경 시리아에 살았다는 위(僞) 디오니시우스(Pseudo Dionysius, 혹은 Dionysius the Areopagite)의 신비 사상이다. 그리스도교 신비 전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지는 그의 저술 '신비신학'에 보면 궁극 실재로서의 신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따라서 인간의 모든 견해나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주를 초월하기 때문에, 신은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다'고 했다. 최고의 범주인 '영혼'이니 '영'이니 '신'이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질'이니 '영원'이니 '일자(一者)’니 '신성'이니 하는 것조차도 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견해가 들어가지 않는 빔(空) 그 자체다. 우리 자신이 이런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내재적인 신에 대해 일체의 인간적 생각이나 범주를 말끔히 씻어 버릴 때 비로소 신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신학적 태도를 서양에서는 '부정의 신학(negative 혹은 apophatic theology)’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위 디오니시우스의 말을 인용한다.

“신비적 관조를 실행할 때 일체의 감각과 지적 활동, 그리고 일체의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들을 뒤로하라. …… 앎을 버림으로써만 모든 존재와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그분과의 합일을 향해 최대한 높이 올라갈 수 있다. …… 부탁하노니 빛을 넘어서는 이 어둠으로 들어가라. 안식이나 지식을 잃어 버림으로써만 관찰과 지식 너머에 있는 그것을 보고 알 수 있느니."(제2장)

최근에는 나가르주나의 공 사상이 결국 인간의 이성이나 거기에 근거한 모든 이론들을 해체(deconstruction)하는 작업이라 보고, 이를 니체(Friedrich Nietzsche),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데리다(Jacques Derrida) 등으로 대표되는 해체주의 내지 포스트모던 사상과 비교하는 논의도 활발하다. 여기서는 나가르주나가 해체주의자냐 아니냐 하는 문제보다, 나가르주나를 해체주의 입장에서도 해석 가능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물론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 모두 불교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라, 이들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 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이런 궁극 실재의 신비성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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