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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신앙과 초자연적 신관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6-04-03 00:00

어린 아이가 착한 일을 하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 할아버지가 썰매를 타고 와서 벽난로 옆에 걸어 놓은 양말에 선물을 가득 넣고 가리라는 희망 때문에 1년 내내 삶이 즐겁고 의미있는 나날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런대로 좋다. 그러나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어른이 아직도 문자적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온다고 믿으며 선물에 목을 매고, 오직 선물 때문에 나쁜 일을 하지 않겠다며 노심초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해야 할 처지인데, 아직도 자신이 받을 것만 생각하다니....... 어른이라면, 산타 이야기에서 선물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여러 사람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 온 동네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것, 신 안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과 우주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것 등 더욱 깊고 넓은 의미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보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보살을 믿는다는 것도 보살의 도움을 받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일이 아니라, 보살의 정신을 본받는 것, 내가 보살이 되는 것, 궁극적으로 나와 너, 그리고 우주가 하나라는 것, 이런 깊은 차원의 진리를 깨닫는 일이 가능하게 될 때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기복적 보살관은 초신자들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는 좋다. 입시를 준비하는 자녀를 둔 어머니가 절에 가서 합격을 기원하는 삼천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심신의 긴장도 풀리고 건강에도 좋고....... 방에서 떨고만 있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공부하는 자녀에게 심적 부담을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수험생은 수험생대로 방해 받지 않고, 자신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 이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것이기에 정말로 시험을 더 잘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보살을 나의 물질적, 사회적 안녕을 추구하는 나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들러리 역으로만 믿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자기중심적 믿음으로 일관하는 것은 초보적 단계의 신앙에 머무는 것이고, 이런 영적 난쟁이 상태로 끝나는 것이 불교이든 그리스도교든 그 신도들에게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불교의 궁극 목표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 거기서 오는 해방과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보살 신앙은 아직 이런 단계에 이르지 못한 우리를 보다 높은 경지로 이끄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보살 사상의 진정한 종교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 아닐까.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방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가르침이 점점 높은 단계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강조하는 불교 사상가로 중국 당나라 때의 종밀(宗密, 780-841)을 들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죽어서 지옥이나 어디로 간다는 것에 신경쓰거나 보살에게 빌어서 보살이 기계적으로 인간사에 개입한다고 믿는 등의 생각은 가장 초보에 속하는 신앙 형태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신앙도 어느 정도 우리에게 유익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양 그리스도교도 과거에는 우리가 기도만 하면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직접 개입해서 우리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개입/간섭주의적 신(interventionist God), 초자연주의적 신(supernaturalistic God) 개념이 적어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독자들은 Marcus J. Borg의 'The Heart of Christianity: Rediscovering a Life of Faith'(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2003)라는 책이나 존 쉘비 스퐁의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이렇게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이 가능하다는 '믿음'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한국 불자들 사이에서 점점 보편화되리라는 예상은 어긋난 것일까?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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