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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유관(四門遊觀)의 '충격'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5-10-11 00:00

종교간 대화를 위한 불교 이야기(6)

싯다르타는 화려한 궁중에서 생활했지만 거기에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고 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그가 서른 살 가까이 되던 어느 날 궁중 밖 세상을 한 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했다. 아버지도 어른이 된 아들의 청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아들은 마차에 타고 마부 찬다가와 함께 궁궐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첫날 궁궐 동쪽 문으로 나가 보게 된 처음 광경은 말할 수 없이 늙은 꼬부랑 '노인'이었다. 싯다르타는 이 광경을 보고 마부에게 저것이 뭐냐고 물어 보았다. 마부는 늙은이라고 말하고, 우리도 다 늙어가고 있고, 늙으면 저렇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고 설명했다. 왕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서둘러 궁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두 번째 남쪽 문으로 나갔을 때는 '병든 사람'을 보게 되었다. 다시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궁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서쪽 문으로 나갔을 때는 '죽은 사람'을 보게 되었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절대적 운명이라는 사실에 더욱 큰 충격, 다시 귀가. 네 번째 북문으로 나갔을 때는 어느 출가 수행자(沙門, ?rama?a)을 보게 되었다. 마부는 이런 사람은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집을 나선 사람이라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전통적으로 '사대문을 돌며 보았다'는 뜻에서 '사문유관'(四門遊觀, four passing sights)이라 한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 그의 마차에 충격흡수장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요즘처럼 캐딜락 같은 차를 타고 나갔으면 그렇게 충격을 받지 않았어도 되었을까? 물론 정통적 답은 그가 그런 것들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30에 가까운 사람이 아직 이런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일까? 자기 아버지만 보아도 이제 80 노인이 되었을 것이고, 자기 생모가 어떻게 되었는가 물어보았다면 사람들이 생모의 죽음을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 뿐인가? 4000명인가 4만 명이 된다는 무희들 중 춤을 추다가 갑자기 아파서 기절하는 이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저히 30에 가까운 사람이 삶의 이런 기본적인 사실들을 아직 모르고 있었을 수는 없다.

그러면 정말로 왜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 그의 '나이'와 관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는 비록 그런 것들을 보았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의 상태였다.  생로병사 같은 인생의 중대사가 정말로 실감나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야 한다. 영어로 해서 'realize'한다는 말은 그전까지 진짜 같이 보이지 않던 것이 진짜처럼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왜 그 때에 가서 생로병사가 진짜처럼 보이게 된 것인가?

심리학자 융(Carl G. Jung, 1875-1961)의 말에 의하면 30대 초반이 되어야 인생사에서 참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게 되는 '개인화 과정'(individuation process)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비로소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심각하게 보기 시작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이면서 문필가였던 벅(Richard M. Bucke, 1837-1902)은 사람이 살아가다가 어느 단계에서 특별 의식에 접하게 되는데, 이런 의식을 그는 '우주의식'(cosmic consciousness)라고 하고, 이것이 보통 30대 전후해서 생긴다고 했다. 30세에 침례를 받으면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예수님이나, '30에 입(立)했다'고 하는 공자님이나, 그 외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30세경에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부처님도 이제 30에 접어들면서 이런 문제들이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라는 새로운 심각성으로 육박해 옴을 느끼게 된 것이고, 이를 좀 더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 이런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soft103@hotmail.com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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