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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 아이스댄스 길레스 동메달, 암으로 엄마 잃고 난소암 극복

김민기·장민석 기자 ch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2-13 09:54

엄마 애청곡 맞춰 ‘별이 빛나는 밤’ 옷 입고 헌정



12일(한국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캐나다 대표로 출전한 파이퍼 길레스(34)와 폴 포리에이(35)는 빙판에 한 폭의 명화를 펼쳐냈다. 아이스댄스는 남녀 선수가 한 몸처럼 밀착해 점프 없이 화려한 발놀림과 예술적인 안무를 선보이는 종목이다. 길레스는 빈센트 반 고흐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을 경기 의상에 아로새긴 채 파트너 포리에이와 함께 밤하늘을 별로 수놓는 것 같은 유려한 연기로 은반을 물들였다. 미국 가수 돈 매클레인이 1971년 고흐 헌정곡으로 발표한 ‘빈센트(Vincent)’를 영국 포크 듀오 고바도가 커버한 배경음악으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Starry, starry night(별이,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도입부로 한국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올드팝이다.

길레스와 포리에이가 ‘빈센트’를 프리댄스 배경음악으로 택한 것은 2018~19시즌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보통 피겨스케이팅 심사위원들은 선수가 같은 곡을 다시 사용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길레스는 이 프로그램에서 아직 끝맺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 과감히 올림픽 시즌에 도입했다. 그는 “엄마의 병이 위중할 때 ‘빈센트’로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결국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한 연기”라며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라 이 곡에 맞춰 연기를 하면 늘 (엄마와) 함께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어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난 엄마와의 이야기를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길레스와 포리에이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연기로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프리댄스에서 자신들의 시즌 최고 기록인 131.56점을 받아 총점 217.74점을 기록, 프랑스·미국 조에 이어 3위를 했다. 길레스와 포리에이가 세 번째 올림픽 도전 만에 처음 따낸 메달이었다. 길레스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늘 아침 해가 뜰 때 느꼈어요. 엄마가 제 곁에 있다는 걸요. 엄마, 사랑해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길레스는 ‘피겨 가족’으로 자랐다. 오빠 토드와 쌍둥이 자매 알렉시까지 모두 피겨 선수로 성장했다. 이들을 묵묵히 뒷바라지한 사람은 간호사로 일했던 어머니 보니였다. 훈련 환경이 더 낫다며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로 이사한 그는 피겨계에서 ‘스케이팅 맘’으로 유명했다. 호주, 독일, 일본, 스웨덴 등 각국 선수가 훈련이나 대회 참가를 위해 콜로라도를 찾으면 집 문을 열어두고 언제든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했다. 2018 평창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애덤 리펀 등 80여 명이 길레스 가족 집을 거쳐갔다고 한다.

활달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였다. 집 안을 몇 시간씩 서성이거나 이유 없이 구토를 반복하던 어머니는 결국 병원에서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길레스는 훈련 틈틈이 시간을 쪼개 어머니 곁을 지켰다. 그는 간호를 위해 2018년 평창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려 했으나 어머니는 “딸이 올림픽에 나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인 파트너 포리에이를 따라 캐나다로 국적을 바꾼 길레스는 생애 첫 올림픽을 8위로 마쳤다. TV로 딸의 연기를 지켜보며 박수를 쳤다는 어머니는 올림픽이 끝나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길레스는 이후 캐나다 뇌종양 재단 홍보대사가 됐고, 뇌종양 관련 걷기 대회에 나서기도 했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을 7위로 끝내고 그해 10월 길레스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난소암이었다. 12월 수술을 받은 그는 불과 두 달 만에 복부 압박 벨트를 착용한 채 다시 링크에 섰다. 학창 시절 난독증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얼음 위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온 길레스는 2023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2011년부터 함께한 파트너 포리에이는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동성애자인 그는 길레스와 15년간 빙판 위에서 기쁨과 시련의 순간을 함께하며 특별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결국 둘의 오랜 동행은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길레스는 메달을 목에 건 뒤 “자신을 믿고 꿈을 좇기만 한다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며 “내 메달이 어두운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자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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