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과 ‘51번째 주’ 발언 이후 미국 여행을 끊었던 캐나다인들이 월드컵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미국 제품과 여행을 피하는 ‘보이콧 미국(Boycott USA)’ 운동이 확산됐지만, 캐나다 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대표팀 응원을 위해 미국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미 여론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캐나다인의 미국 방문은 이전보다 약 30% 감소했다. 하지만 캐나다 대표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게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캐나다 대표팀 서포터스 단체 ‘더 보야저스(The Voyageurs)’의 매트 서슨 이사는 블룸버그에 “캐나다축구협회가 배정한 LA 경기 입장권 5600장은 판매 시작 몇 분 만에 모두 동났다”며 “이미 LA에 도착한 캐나다 팬들이 표를 구해 달라는 문의를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 사는 아를린 포치네크(54)도 예외를 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장례식 참석을 제외하면 미국을 방문한 적이 없지만, 대표팀 경기를 보기 위해 LA로 향했다”며 “정말 특별한 예외”라고 말했다.
캐나다 팬들이 미국 보이콧을 잠시 미루는 배경에는 사상 최고조에 이른 축구 열기가 있다. 캐나다는 앞선 두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축구 변방’이었다. 그러나 알폰소 데이비스, 조너선 데이비드, 카일 라린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축구 인기가 빠르게 높아졌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대표팀 경기를 보기 위해 두 차례나 밴쿠버를 찾는 등 월드컵 열기에 힘을 보탰다. 결국 캐나다는 32강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1대0으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월드컵은 캐나다와 미국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미국은 캐나다의 최대 교역국이자 오랜 동맹국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가 맞붙은 4개국 아이스하키 대회에서는 캐나다 팬들이 미국 국가인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가 연주될 때 거센 야유를 보냈다. 토론토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 개막식에서도 미국 국기가 등장하자 일부 관중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캐나다 축구 대표팀을 이끄는 제시 마치 감독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대표팀 코치 출신인 그는 경기 전마다 캐나다 국가를 힘차게 따라 부르고 선수들의 애국심을 강조하며 캐나다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마치 감독은 최근 “미국에서는 선수들에게 국가를 부르라고 독려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캐나다 선수들은 모두 자랑스럽게 국가를 부른다”고 말해 미국 축구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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