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세 노인의 ‘자발적 죽음’ 슬픔은 없었다

김수완 인턴기자 kyo@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5-11 17:07

“마지막으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부르고 싶다”
백발의 노인에게 자신의 예정된 죽음에 대한 소감을 묻자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부르고 싶다”고 말한 104세의 호주 과학자는 스위스에서 ‘자발적 죽음’을 선택하고 10일 세상과 이별했다.

지난 3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신이 살던 호주 퍼스를 떠나 스위스 바젤로 온 데이비드 구달(Goodal)씨는 지난 10일 오후 12시 30분께(현지 시각) 자신이 선택한 자발적 죽음에 동의를 얻은 ‘안락 조력사’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여행을 자신이 직접 결정했다.

특별한 지병이 없고 90세까지 테니스를 즐길 정도로 건강했던 구달씨는 70년 이상 생태학 연구에 매진한 학계 권위자로 호주 에디스 코완(Edith Cowan) 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해왔다. 

그는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내일 삶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 진짜 슬픈 것은 죽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조력 자살권을 포함한 자신의 선택적 죽음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가능하게 해준 스위스 의료진에게 감사를 전했다. 또한 “나는 호주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며 호주의 안락사 정책은 스위스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 자신이 좋아하는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힘차게 불렀다.

구달씨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삶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생태학자인 구달은 100살이 넘은 뒤에도 논문을 발표한 현역이었다. 2016년 대학에서 출퇴근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대학 연구실에 출퇴근하며 일해왔다. 

삶에 대한 의지를 꺾은 사고가 발생한 것은 몇 달 전, 그가 혼자 거주하던 자택 방에서 넘어져 큰 부상을 당했다. 청소부가 그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이틀 동안 방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구달씨는 “아무리 소리쳤지만, 누구도 듣지 못했다”며 누워있는 이틀 동안 존엄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난 이제 104살이다. 내 삶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건강 상태가 더 악화되면 더 불행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이번 선택에 필요한 경비는 지난 20년간 안락사 합법화를 지지하는 비영리 단체에서 인터넷 모금을 통해 320명으로부터 약 1만 9000달러를 모금해 가능했다.

세계 언론들은 구달씨의 이번 죽음을 통해 노인들의 ‘선택적 죽음’에 대한 규제를 세계가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전했다. 현재 호주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존엄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스위스 역시 상당 기간 이상 뚜렷한 안락사에 대한 의지를 보인 사람에 한해서만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한편 영국 출신인 구달씨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호주로 건너와 오랫동안 연방 과학산업연구기구에서 근무했고, 평생 130여편의 논문과 저작을 남겼다고 호주 언론은 전했다.

김수완 인턴기자 kyo@vanchosun.com


<▲지난 3일 구달씨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 스위스로 떠나기 전 가족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워싱턴 포스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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