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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노트] 행복은 원래 느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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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3-01-02 15:47

[1]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동네 목욕탕 가기

"교수직 떠나 자유 찾아온 일본… 친구와 별것도 아닌 일에 웃고
동네 목욕탕을 어슬렁거리면서 천천히 말하고 느리게 움직인다
빠르기만 한 일상에 지쳤는데 이제야 내 삶의 정상속도 같아
이 느림에 진정한 행복 느낀다"


비가 오는 날조차도 사실 구름 위 하늘은 푸르다. 우리는 늘 불행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지만, 불평불만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일상은 사실 작고 사소한 실천이나 발견만으로도 달라지는 것. 실제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 세로토닌은 사소한 일로 분비가 촉진된다고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맥주 한잔을 들이켤 때, 허름한 동네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전신욕을 즐길 때, 칭찬받기보다 칭찬할 때, 행복은 더욱 분출하고 분비된다.

조선일보는 2013년 신년기획으로 '행복 노트'를 연재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행복에 도움이 되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충분조건인 것은 아닌 법. 작고 사소한 즐거움으로 행복을 만끽하는 이들,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내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의 행복 비결을 들춰본다.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정경열 기자

일본에 건너온 지 꼭 일 년이 되었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정말 가당치도 않은 만용으로 정년 보장 교수직을 '때려치웠다'. 그러나 이내 후회하며 다섯 평 남짓한 일본의 차가운 방바닥을 구르고 또 굴렀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어투를 흉내 내며 '그따위 두려움은 개나 물어가라지!'를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내 '두려움'을 먹고 자란 그 개들은 이제 송아지만 해졌다.

내 두려움과 외로움을 위로한다며 '시인 김갑수'와 '사진작가 윤광준'이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일본을 찾아왔다. 지난가을 우리는 교토 북쪽의 계곡에서 배를 탔다. '계곡에서 배를 타자'는 내 제안에 전혀 다른 상상을 했다며 시인은 음탕하게 웃었다. 단풍이 불타는 '아라시야마(嵐山)' 계곡의 '보진천(保津川)'을 두 시간 넘게 배를 타고 내려왔다. 시인의 느닷없는 그 상상은 바로 강 이름 때문이었다며 사진작가는 또 음란하게 웃었다. 젠장, 이런 늙은 변태들!

강물 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천천히 내려오는 배 위에서 '20년 전 시집 한 권 낸 게 전부인 시인'과 '사진 찍어 돈 버는 일이 거의 없는 사진작가'는 '사람 심리, 특히 여자 심리에 관해 도무지 아는 게 없는 심리학자'에게서 아주 큰 변화를 찾아냈다. '느려졌다'는 거다. 말투도 느려졌고, 걸음걸이도 느려졌다는 거다.

바로 그거였다. 지난 몇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난 언제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이야기하면 짜증 내며 중간에 말을 끊었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 처리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수업이나 각종 모임, 약속 시간에는 수시로 지각했으며, 바쁘다며 항상 먼저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혼자 지내려니 내 몸 하나 유지하기 위한 청소, 설거지, 빨래, 장보기와 같은 '기초 생활 시간'이 너무 길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빨리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말하며, 기분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거다. 행복은 추상적 사유를 통한 자기 설득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밤늦게 동네 목욕탕에 어슬렁거리며 가는 것도 요즘 내가 발견한 새로운 삶의 기쁨이다. 일본의 동네 목욕탕은 60·70년대 한국 동네 목욕탕처럼 '후졌다!''후져도 너~무 후졌다!' 삐거덕거리는 옷장, 나무로 된 허접한 신발장 키, 수십년은 족히 된 낡은 안마 의자, 20엔을 넣어야 불과 몇분 작동되는 드라이기, 좁은 욕탕. 아, 그러나 이 동네 목욕탕에서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목욕탕의 물은 정말 뜨겁다. 우리나라 사우나의 열탕보다도 훨씬 뜨겁다.(우리나라 사우나 물이 미지근해진 것은 한국인들의 삶이 급해져서다. 내 가설이다.) 달리 피해갈 방법이 없다. 욕탕이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참고 들어가야 한다. 아주 천천히 발목부터 덥히면서 욕탕에 들어가자면 참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지난달 난 교토 외곽의 만화일러스트 관련 전문대학에 학생으로 아주 어렵게 합격했다. 성인만화, '시인'과 '사진작가'를 모델로 하는 노인 변태 전문작가로 데뷔하면 어떨까 하는 아주 기막힌 생각도 이 목욕탕에서 한 거다.

목욕탕의 물의 향은 참 달콤하다. 온천향을 섞은 듯하다. 고등학교 때 밀리는 차 안에서 맡았던 진명여고 학생 목덜미의 '다이알비누' 냄새처럼 설렌다. 목욕을 다녀온 날 밤의 잠은 아주 깊다. 잠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그 기분 좋은 느낌은 집을 나설 때부터 날 설레게 한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내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행복은 아주 느린 거다!

☞김정운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전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지난 3월 본지 ‘101 파워클래식’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독후감을 의뢰받고 읽다가 “이 책이 던지는 ‘자유’라는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 대학에 사표를 던지고 자유를 선언했다. 현재 일본 교토에 머물면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인생 2막’을 위해 지난달엔 교토 외곽의 전문대학 만화일러스트학과에 응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을 낸 베스트셀러 저자. 언변이 좋아 ‘강연 섭외 1순위’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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