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오신 여름 손님에 대하여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최종수정: 2016-06-23 13:44

권민수 편집장의 캐나다 브리핑(136)
About Our Summer Guests

“냉장고를 벌컥 열어서 마음대로 드시더라고요”· “말씀 없이 제 차를 몰고 쇼핑몰 다녀와서 차를 도둑맞은 줄 알았어요”· “언제 귀국하신다는 말씀이 없으셔서요…"

앞의 얘기는 기자가 들은 밴쿠버 방문 ‘한국 손님’에 대한 하소연 섞인 사연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 중 한 곳에 정착해 사는 대가 중 하나는 여름 손님 치르기다. 일가친척·친구·동창이 밴쿠버를 찾기 전에 인연부터 찾는다.

오래간만에 인연의 확인이 반갑고 즐겁다.  이런 좋은 감정이 가끔은 손님의 요구로 망가진다. 대체로 내용을 들어보면 “가져다 달라”· “데려다 달라”는 부탁이 있을 때 감정이 폭발 지점까지 갈 수 있다. 이 지점에서는 서로 조심스러워야 모처럼의 여행이나 만남을, 심지어는 관계를 불편한 감정으로 소모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요구가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생활 리듬을 맞출 수 없어 손님 치르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새벽같이 나서서 심야까지 이곳저곳 보고 즐기는 손님과 아침 일찍 일터나 학교로 나서서 고단한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온 이민자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생업이나 학업을 손님이 왔다고 놓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여행지의 들뜬 기분으로 밴쿠버를 보는 사람과 일상의 안정감으로 밴쿠버를 생활하는 사람은 감정의 교집합도 적을 수밖에 없다. 금쪽같은 여름 주말을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손님에게 바친 분들 심정은 어떠한가? 친하지 않기에 겪는 낯선 가운데 먹먹함을 안다면 아마도 오래된 이민자일 것이다.

손님 대접에 무슨 좋은 답이 있겠는가 하면, 이민 40년차 지인은 이렇게 답한다. “뭐, 그러려니 하고, 하고 싶은 일 알아서 다하라 하고 보내야지 별수 있어요? 은퇴하고 나면 부담이 좀 덜해요” 무사하고 즐거운 여름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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