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속 지연 때문에…” 강제로 흩어질 위기에 처한 가족

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최종수정: 2014-12-15 15:18

배우자 초청 수속 장기화에 피해 입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서 살고 싶습니다.”
 
온타리오주에 거주하는 뉴질랜드인 빌레어 해치(Hacche)씨가 떨리는 모습으로 캐나다 매체에 섰다. 해치씨는 담담해 보였지만, 말을 하는 내내 그의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캐나다인 약혼자를 따라 힘들게 캐나다 이주를 결정한 그였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15일 해치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캐나다인인 약혼자 젠 워드(Ward)씨를 만나 지난 2013년 2월 캐나다에 왔다. 그와 워드씨 사이에는 13개월 된 아기 덱스터와 전 처 사이에 낳은 6살 난 아들 이완이 있다. 그는 어려운 타국살이를 하면서도 새 가정을 꾸리는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영주권 신청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그의 가족은 심각한 재정난에 부딪히고 말았다. 7월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이를 받기까지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신청한 취업 비자마저 거절됐다. 뉴질랜드에서 유망한 프로그래머였던 그는 취업비자가 없어 아무런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기초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자가 만기되면서 이제는 캐나다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해치씨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가족과 떨어질 수는 없다"고 했다.

◇ "배우자 초청 이민, 적체 심각한 수준"
해치씨와 비슷한 이유로 가족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캐나다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길어진 영주권 수속 탓에 비자가 중간에 만료된 경우다.

배우자 초청이민은 총 2단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신청서를 검토하는 1차 수속에는 현재 기준 16개월이 걸린다. 이 기간 내에 초정 대상자는 취업 비자 발급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초청된 배우자 역시 외국인 임시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취업 비자 수속 절차를 밟아야 된다. 신청자의 배경이나 의료 기록 등을 검토하는 2차 수속에는 평균 8개월이 소요된다. 

이민부는 해치씨와 같이 수속 중간에 비자가 만료돼 고국으로 발길을 돌려야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고국에서 영주권을 신청한 뒤 기다리는 방법을 권고하고 있다. 해치씨가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을 신청했다면, 1차 승인에 2개월, 2차 승인까지 11개월의 기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게 이민부의 설명이다. 대신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해치씨는 어린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있는 쪽을 택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캐나다에 우선 이주한 뒤 영주권 수속을 하기로 결심했다. 가족과 떨어져 있기 보다는 함께 시간을 기다리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이 서로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해치씨는 "(떨어져 있는 것이)잠시라고는 하지만, 절망스럽다"고 했다. 해치씨는 자신의 상황을 편지에 담아 이민부 장관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에게 보냈다. 그러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 "이민 대상자에게 취업비자 발급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왜?"
캐나다 이민부에서 37년 동안 일하다 퇴직한 클라우디오스 무스타스카스(Mustaskas)씨는 해치씨와 같이 캐나다인 배우자를 만나 캐나다 내에서 영주권을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는 신청자가 1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스타스카스씨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수속을 기다리는 신청자에게 취업비자 등과 같은 합법적인 거주 자격을 준다면 문제는 해결 될 것"이라며 "어떤 것을 우려해 이들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민부에서는 일부 유학생에 대해서는 관대한 비자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외국 유학생이 배우자와 동반해 캐나다에 오는 경우, 그 배우자에게는 즉시 취업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무스타스카스씨는 배우자 초청 이민을 통해 캐나다를 찾는 이들에게도 이와 동일하게 취업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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