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대화하며 뇌종양 수술… 후유증 크게 줄인다

김경원 헬스조선 기자

최종수정: 2012-05-09 10:39

피아니스트 이모(33)씨는 부분마취로 정신이 깬 상태에서 두개골을 열고 뇌종양을 떼어내는 '각성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생길 수 있는 손 마비를 막기 위해서였다. 수술대에 누운 이씨는 주치의가 종양을 조금씩 떼어내면서 "주먹을 쥐어 보라", "팔을 흔들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랐다. 각성 수술 후 1년이 지난 현재 이씨는 후유증 없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수술 후유증 줄고 암 생존기간 늘려

각성 수술은 부분마취로 환자의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시켜 놓고, 의료진과 환자가 의사소통을 하면서 진행하는 뇌수술을 말한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김정훈 교수는 "각성 수술을 하면 전신마취 수술 시 따라올 수 있는 언어장애·신체 마비 등 뇌수술 후유증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며 "의사가 환자에게 말을 시키거나 팔다리를 움직이도록 지시하고, 환자의 반응을 살피면서 암조직을 떼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당차병원에서 뇌종양 각성 수술을 받고 있는 40대 남성 환자가“내 말이 들리면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수술법=수술 내내 환자가 깨어 있지는 않고, 암조직을 절제하는 1~2시간만 의식을 유지한다. 수술을 시작할 때는 환자를 수면마취시켜 재운다. 수면내시경 검사와 같은 방법이다. 이어 두피에 부분마취를 한 뒤 피부와 두개골, 뇌막을 절개한다. 암을 떼어낼 때 환자를 마취에서 깨우고 다양한 지시를 한다. 분당차병원 신경외과 조경기 교수는 "두피에서 뇌막까지는 통증 신경이 있지만, 뇌 안(뇌실질)에는 통증 신경이 없기 때문에 환자를 깨우고 뇌를 건드리면 느낌은 있지만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치과에서 마취하고 이를 뽑을 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된다.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를 제거할 때는 말이나 노래를 하게 하고,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를 절제할 때는 덧셈 뺄셈 등을 시킨다. 운동을 담당하는 부위를 떼낼 때는 손발을 계속 움직이게 한다.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거나, 계산을 못하거나, 손발에 마비가 생기기 시작하면 암조직이 남아 있어도 더 이상 잘라내지 않는다. 남은 암은 수술 후 방사선이나 항암 치료로 없앤다.

적응증=언어나 신체운동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생긴 뇌종양에 주로 쓴다.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종희 교수는 "정상 뇌와 암조직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뇌교종, 전이성 뇌암, 혈관종 등이 대표적"이라며 "대개 암조직이 뇌 안쪽에 파묻혀 있다"고 말했다. 조경기 교수는 "과거엔 조직검사도 하기 어려웠던 뇌 깊숙한 시상 부위에 생긴 암도 후유증없이 떼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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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언어·운동 등의 뇌 기능은 뇌 안의 여러 부위에 걸쳐 있고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수술 전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으로 암이 생긴 부위와 뇌 기능 위치를 분석해서 위험 부위를 추정해도, 실제 수술할 때 1~2㎜ 정도의 오차가 생긴다. 장종희 교수는 "뇌신경은 1~2㎜만 잘못 건드려도 장애가 생길 수 있다"며 "각성 수술로 신경 손상을 바로바로 확인하면서 수술하는 것이 후유증을 줄이는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또 뇌는 다른 신체 기관과 달리 기능을 재분배하는 특성이 있어 각성 수술의 이점이 크다. 장종희 교수는 "특정 기능을 하는 뇌 부위에 느리게 자라는 암이 생기면 천천히 이 기능이 이상이 없는 다른 뇌 부위로 옮겨간다"며 "이런 점을 모르고 뇌 기능 부위만 생각하고 수술하면 언어장애나 운동마비 등이 생길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효과=전신마취 수술보다 종양을 안전하게 많이 떼낼 수 있다. 암환자의 생존 기간이 늘어나고, 수술 후유증은 줄어든다. 조경기 교수는 "수술 후 평균 11개월 정도 사는 뇌교종 환자가 우리 병원에서 각성 수술을 해서 평균 26개월 생존한다"고 말했다. 장종희 교수는 "또 뇌교종 수술 환자의 13~27.5%에서 영구적인 언어장애나 신체마비가 발생한다는 외국 보고가 있다"며 "반면, 각성 수술은 후유증 없이 성공하는 비율이 90%를 훨씬 웃돈다"고 말했다.

한계=환자의 심리적 부담이 아주 크다. 수술할 때 칼이나 레이저로 조직을 째거나 태우는 것을 환자가 느끼고 수술 후에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김정훈 교수는 "사전 교육을 받고 동의한 환자만 수술하며, 심리 상태가 불안한 환자에겐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술에 들어가도 환자가 각성 상태에서 심한 공포를 느끼면 다시 재우고 나머지 수술을 하는데, 환자를 수면마취 상태로 오래 둘 수 없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수술을 마쳐야 한다.

/ 김경원 헬스조선 기자 kkw@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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