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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2023.04.11 (화)
내가 단단한 결정이라는 착각 우리가 개별 포장이라는 오산 나는 나 너는 단지 너라는 착오  물감처럼 우리는 혼색되고 있다 마주치면 물들어 퍼져나가는 파레트 오케스트라 합주 공중에서 섞여 춤추는 소리의 물결 커다란 봉투 안에 뒤섞인 색색깔 별사탕  떨림과 떨림그 사이 사이 구멍.별과 별 사이 우주만큼이나 무수한 구멍들 그러니 당연하지 가끔 나도...
이인숙
농부 이반의 염소 2023.04.11 (화)
  러시아 민담에 ‘농부 이반의 염소’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반은 이웃인 모리스가 염소를 키우면서 점점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게 부러웠다. 부러움은 차츰 질투로 변해갔다. 어느 날, 하느님이 이반의 꿈에 나타나 “이반아, 너도 염소를 갖고 싶으냐?”고 물었다. 이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모리스의 염소를 죽여주십시오.”라고 했다. 하느님은 말없이 사라졌다.이 이야기를 읽으며 섬뜩했다. 열심히 풀을 뜯어먹고 매일 많은 젖을 내는...
정성화
모도에서 2023.04.11 (화)
모도의 베미라미 조각공원벗어버린 조각들이 둘이 마주보거나서로 꼬옥 끌어안고 있거나함께 엎드려 있기도 하다 모래밭으로 내려선다바닷가 바위 위 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작품명 버들선생’멀리서 보면 버드나무처럼 보이는데가까이 다가서 보니 구세 먹은 둥근 쇠기둥에줄기가 모두 쇠사슬로 늘어져 있다바람의 세기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도소리도 다르게 들리니신비롭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다바닷물이 꾸역꾸역 밀려와버들선생...
조순배
이민을 오던 해부터 스물 두 해 째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부엌으로부터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일 처음, 교회 주보를 통해 앞으로 주방에 여자 성도 분들의 출입을 사절한다는 안내가 나갔을 때에만 해도 사실 이렇게 대대적인 변화와 큰 파급효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작년말 새롭게 피택을 받은 장로 6명과, 기존 시무를 맡아오던 두 분의 장로까지 도합 여덟 분의 사나이가 의기투합하여, 그 중에 한 분이 친교부장을 맡아...
예주 민완기
       첨단 설비 세간살이       구색 맞춰 쓸모있고       수학책 속 공식처럼       차곡차곡 채운 공간       날렵한       맵씨에 군침도는        그림 속의 집이란다       침대 놓고 살림 놔도       마음 놓을 곳도 없는        미적분 풀어 지은       연애보다 비싼 집값     ...
문현주
화음(和音) 2023.04.03 (월)
   텃밭에 봄 채소 씨앗을 다독 다독 뿌려 놓고 밭 둑에 앉으니 햇살이 눈부시다. 여기저기 검 불 속에서 지난 겨울을 이겨낸 잡초들이 다투어 돋아 난다.봄은 그래서 자애로운 어머니.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따뜻이 녹여 서로 화해의 손을 잡게 한다.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신비하고 위대하다. 꽃 다지는 작은 키를 돋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양지 쪽 어느 곳이든 조촘 조촘 돋아나서 제 나름의 작고 노란 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도 보아...
반숙자
춘곤 2023.04.03 (월)
4월 한낮은몽롱하다여기 저기 쏟아진 봄 볕이와글거리는 거리를 향해열리는 창들엄청났던 추위 속에서도봄은 창에 손을 얹고 있었던 가 보다연 녹색 담쟁이 이파리들고물 고물찬바람에 긁혔던 벽을 덮어가는데기침 소리 새어 나갈라벽은알약 하나 집어먹는다밤새운 통증으로부은 눈은너무 눈 부시다
김귀희
마지막 파티 2023.03.28 (화)
     죽기 위해 병원에 들어온 환자. 그 환자에 대해 보고받은 순간, 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물론 병원에 들어온다고 모든 환자가 살아 나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살기 위해 입원했고, 우리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 이 환자는 죽기 위해 들어왔다. 그것도 내일. 죽는 시간까지 정해져 있었다.2016년 캐나다에도 MAID(Medical Assistance in Dying, 조력사)가 합법화되었다.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의학적으로...
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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