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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람 깃들어 2023.05.15 (월)
오월은그 무엇이라도벚꽃 같은 바람 깃드는 시절 날 찾아온 꽃바람부끄러이 꿀꺽 삼키면민들레처럼 번져오는 다정한 얼굴들 꽃이 핀다사람이 핀다내 그리운 어머니목단꽃으로 살아나고기억의 꽃송이 물오르고다섯 살 손녀는 즐거운 참새아련히 밀려오는 푸른 꽃향기에할미꽃도 살짝궁 고개를 든다 애잔하구나안아볼 수 없는 것들이여사랑스러워라오월의 사람이여 꽃바람 깃들면 하늘 저편도하늘 이편도모두가푸른 꽃송이다.
임현숙
갑자기 떠난 여행 2023.05.15 (월)
  “엄마 우리 떠나요.” 저녁 늦게 퇴근한 딸아이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외친다. 오늘 회사를 퇴직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어디로, 예약해야지?” 두서없는 물음표가 튀어나오며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 떠나자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출렁거린다. 아직 방학을 안 했고 평일이니 캠프장에는 자리가 있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지하실로 내려간다. 한 번도 쓰임을 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먼지를 쓴 채 박혀 있던 텐트를 찾기...
민정희
5월이 오면 2023.05.15 (월)
  해마다 봄이 오면 친정 집 뒤뜰에 붓 끝 모양의 푸른 잎이 무더기 무더기 돋는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 꽃을 유난히 사랑하고 상사화(想思花)란 세칭을 피하여 당신만은 모사화(母思花)라 이르셨다.  해토(解土)가 되기 무섭게 지표를 뚫고 용감한 기세로 돋아나는 모사화 잎은 오직 잎만 피우기 위한 듯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어느 날 무더위가 시작 될 즈음 초록빛 융성한 잎은 모두 죽어 거름이 되고 거기 죽음 같은 꽃 잎을 물고 연보라 빛이...
반숙자
오월 2023.05.15 (월)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뒤를 돌아보니 아카시아 꽃잎이하얀 이빨을 내 보이며 히히 웃고 있다아카시아 나무가 줄지어 선과수원 길 샛길에서우리들의 개 똥 철학은꽃잎이 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지소식 몰랐을 땐막연한 그리움이 마음 한 켠에차지하고 있었는데이제 그 자리마저 내놓아야 하다니훅 밀고 들어오는 옛 생각에다시 과수원 길을 뒤돌아보지만너는 여전히 따라오지 않는다친구야그곳에도 오월은 오니
김희숙
불청객 2023.05.08 (월)
  그날 아침, 나 여사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아뿔싸, 새벽 5시였다.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30분 전에 깼어야 했다. 나 여사는 불에 덴 듯 벌떡 일어나서, 어젯밤 챙겨두었던 등산복으로 환복을 했다. 발라클라바 덕분에 엉망으로 눌린 머리와 쌩얼을 가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현관으로 향하는데, 거실에서 드르렁, 컥, 퓨! 하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남편은...
곽선영
특별한 봄 2023.05.08 (월)
  해마다 봄은 온다. 들판을 수놓는 갖가지 꽃들과 포근히 내리는 봄비도 변함이 없다. 나이 들어 몸에 적신호가 오고부터 봄이 특별해지고 감사하다.젊을 땐 신경 쓰지 않았던 건강을 지금은 영양제를 챙겨 먹고, 하루 칠천 보 이상 걷는 걸 자구책으로 삼는다. 해빙기로 땅이 질퍽해도 불평하지 않고 피어날 꽃망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자연에 밀착한다. 너그러워지고, 느긋해져야 한다며 십계명을 외우듯 독백한다.갈수록 장수하는 노인들이...
이명희
봄 날의 호사 2023.05.08 (월)
북서풍이 떠나며 남긴 눈 녹은 물빗방울 되어 부서지는 소리동남풍에 실려 여기 왔네얼음 속 건져 낸 꽃망울 터지는 소리깨어지는 겨울 자리 틈 사이로적셔지듯 스며드는 봄의 속삭임시퍼렇게 겨루었던 동남 북서풍서로 끌어 안고 빗물 되어 흐르네온 세상 고즈녘히 가랑비에 젖는데매실 차 하나 찻잔에 채우고빗방울 소리로 휘저어 주는반가사유눈물이 핑 돈다 이 봄 날의 호사
조규남
노랗게 송홧가루 날리며수려한 사월이 진다고슬퍼하지 않겠습니다분홍 꽃눈 나리는 나무 아래서내 안에 있는 이름나직이 불러보며보고 싶다 말하지 않겠습니다이슬비가 눈처럼 내려살 떨리도록 추워도외롭다고 눈물 흘리지 않겠습니다바람 부는 날이면그리움의 깃발 나부끼며오롯이 내생의 봄날을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입니다.
임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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