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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별 뒤편 2018.05.07 (월)
저기 저 등 구부리고 가는 이 누구인가그의 어깨엔 알 수 없는 그늘이 걸려 흔들리고강물 소리 강 언덕 저 너머로 멀어지는데길 잃은 새 떼들 겨울하늘에 원 그리며 간다나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바깥에서문득문득 오던 길 되돌아보지만거기엔 움푹움푹 파인 발자국뿐발자국엔 빗물 같은 상처만 고여 길을 내고 길을 지운다풀잎 같은 목숨, 이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서 먼지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생, 생의 어깨들나는 어린 왕자 같이 마지막 지구별을...
이영춘
현관 등을 갈다 2018.05.07 (월)
현관에 등이 나갔다. 센서 등인데, 집 안에 있을 땐 전혀 불편함이 없다. 들어오는 순간, 그리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깜짝 놀랐다. 어둡다. 신발을 신으러 혹은 벗으러 들어선 현관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아, 등 갈아야겠다.’   그래도 집 안에 들어온 이후로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등을 갈아야 한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채, 내 일을 하기 바쁘다. 아니 실은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남는...
윤의정
길 그리고 글 2018.05.01 (화)
주말 모처럼만에 문협 모임에 나가 오랜만에 반가운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왔다. 첫 화두로 나눈 것이 한국어의 순 우리말 가운데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중요단어들은 대부분이 1음절이며, 또한 ‘ㄹ’받침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다리로 걸으면 ‘길’이 되고, 손으로 써 내려가면 ‘글’이 되며, 생각을 담아 입을 열면 ‘말’이 되는 것이다. 내 정신을 ’얼’이라고 하며 내 모습은 ‘꼴’이라 하니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면...
민완기
 “엄마도 그런 것 먹을 줄 알아?” 뼈 속까지 다 발라 주던 날도 멀리무겁다 못해 빈 껍질이 된 현실의 부모이기적으로 변하여야만 사는 세상인가꽃으로 뭉갤 생각 말라고 엄마는 미리 못을 박은 게다인내의 한계가 온 게다 한 것 분이 난 게다 공경(恭敬)의 시절은 캄캄히 멀어진고국의 지하철 안에서 놀란 풍경이 된 나아득하여 욱 멀미가 일고 천둥이 쳤다더 무슨 말을 하랴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했던그것을...
강숙려
시절을 거스르는 낯 선 땅 묻혀 살며축복의 오월 앞에 엎드린 그댈 본다롭슨 봉* 하늘을 찌른 오만함이 몇 자인가 햇살이 부쳐내는 화전이 그러하고바람이 쌓아 올린 공덕이 그러하듯이곳에 널린 야생 초 입술마저 고운 날 본분을 잊었는지 고산高山이 무너졌다골마다 도랑마다 빙하가 녹는 소리시간을 거스른 것들 여름을 쫓고 있다. *롭슨 봉: Mt.Robson 캐네디언 로키의 최고봉으로 3,954m임.
이상목
냄새 2018.04.23 (월)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길 듣곤 했는데 그 날그 자리에서 내가 그랬다.산만하게 풀려버린 생각의 끈이 미처 동여매여지기도 전에 눈만 말똥거리다 맥없이 허를 찔린 기분이다. 아니, 전혀예상치 못한 뜻밖의 물음이라 질문의 요지조차 간파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옳다. 게다가 순발력을 발휘해재치 있게 받아 쳐보기엔 나의 사고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의외로 너무 이성적이다. 얼마 전에 나는 문학에 관심이...
섬별 줄리아 헤븐 김
강물처럼 살다가 2018.04.23 (월)
            이 땅에서 실향민으로 30년 ,  세월이 갔다            참으로 갈 곳이 없는 때도 있었다            무일푼처럼 허전한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노동 사이 사이            흙바람 부는 조국을 바라보며            시를 써댔다           시인이여, 시인이여 그대         ...
김영주
공활하고 높은 하늘빨간 단풍잎 그려진 국기 아래서이방의 국가를 부른다오 캐나다! 아워 홈 앤 네이티브 랜드!순간검푸른 동해 물이 울컥목구멍으로 올라오고생전에 가본적 없는 백두산이록키산맥의 등줄기 어디쯤 슬쩍 얹혀진다트루 패트리어트 러브!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하고이 기상과 타오르는 가슴으로바라보아야 할 비상하는 조국은이제 어디인가킾 아워 랜드 글로리어스 앤 프리!신이시여버리고 왔으나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떠돌이...
김미선
너무 오랜만이라 짧고 어색한 통화를 끝내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많이 쇠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달리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어 온전히 하루라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국제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바쁘기 그지없는 이민자의 삶 중에서 다행이라면 참으로 다행이었다. 마음 같아선 찾아 뵙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대접하련만 그리 할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 가슴 한 켠으로 한숨만 새어 나왔다. 아버지와의 통화 끝에 옛날 생각에 멍해 있는데...
정숙인
내 인생 2막 2장 2018.04.17 (화)
오늘날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국가적인 과제는 “일자리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청년들의 일자리는 실로 심각하다.  내가 외국에 살며 보아도 이곳 역시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젊은이들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도 특별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갈 곳이 많지 않아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알바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방송에 4시간짜리 알바 두명 모집에 140명이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유훈
한 벽을 온통 열어놓은 유리창 넘어오색 별이  꿈이 되어 내린다겨울의 검은 장막 사이로눈부신 빗방울이 내린다 이국의 길가를 덮은 네온의 불은부서져 내리는 시간의 흰 가루를 모아한 모금 커피 속에 따뜻함을 지핀다 내가 있고타인의 눈길이 비치고서로가 나누는 너그러움이 흐른다 하얀 분말 속에 한 모금 커피 속에잊혀진 시간이 곱게 잠긴다외진 나의 사랑이 모두 담긴다너의 따뜻한 포옹이 밝은 별이 되어 떠오른다 
김석봉
안개 도로 2018.04.10 (화)
온종일 안개가 마을을 먹고 있다시골집 굴뚝에서 웅성웅성 피어오르던 연기처럼꾸역꾸역 달려와 지붕을 삼키고 키 큰 나무를 베어 먹더니지나는 차까지 꿀꺽한다잿빛 도로가 덜거덕거리며 어깨를 비튼다문득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등에 업은 삶의 무게가 저 길만 할까 싶다달리는 쇳덩어리에 고스란히 밟히다가달빛이 교교한 새벽녘에서야 숨을 돌린다신과의 싸움에서 진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처럼거북등 같은...
임현숙
참새와 제비 2018.04.10 (화)
참 오래전에 캐나다 동부 몬트리올에 살 때의 우리 집 어느 해 여름 풍경이다.하필이면 제비가 왜 그 자리에 집을 지었는지 모른다. 우리 집 앞에는 큰 고목나무가 그 옆으로도 키가 큰 나무들과 마당을 감싸 안은 담쟁이 나무들 때문에 우리 집은 마치 숲속의 집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집이 단층이다 보니까 새들이랑 다람쥐들이 아주 겁 없이 우리 집을 넘보았다. 문을 열어 놓으면 다람쥐가 집안에 들어오려고 하질 않나 새들이 벽난로 굴뚝으로...
김춘희
어느 봄날의 찻집 2018.04.10 (화)
봄이 드는 골목길 오래된 찻집 하나도란도란 이야기 담 안에 고여 있다   인생을 우려내 찻잔에 담아 식어가는 기억들을 꽃잎처럼 띄워 놓고 풀잎 같은 입술로 추억을 넘기는 사람들  *파로트가 즐겨 그리던 *콩티언덕 그 언저리에서 한때의 그리움을  아슴아슴한 기억으로 되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강 언덕에 서성이면 꽃 노래 흐르던 봄날도도도한 청춘의 소용돌이도 삭연索然한...
박오은
측은지심 2018.04.04 (수)
이른 아침 하늘은 오랜만에 붉은 노을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여명의 빛을 선물한다. 유난히도 많은 비를 뿌린 이 겨울도 다해 가는지 며칠 전부터 찬란한 햇빛이 영혼의 축축함과 회색의 찌든 때를 씻어 내가는듯하다. 멀리보이는 산에는 하얀 눈이 병풍처럼 펼쳐있고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새들, 그리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노인들이 느리게 걸어가고  옛날 어느 날의 내가 그 장면 속에서 같이 어울려지는 듯한  그런 평화로운 날이다....
김베로니카
어둠이 밝혀내는 황홀한 세상을그대, 보셨나요.실낱같은 잔뿌리들이발끝을 함께 모아캄캄한 땅속, 어미의 자궁벽을 허물고 나와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희한한 세상을그대, 들으셨나요.이때풀꽃과 나무의 꽃들은흔들리기 시작합니다천천히 그것도 아주 느리게보드라운 바람에도낡은 햇살에도새벽을 적시는 봄비에도그리고피는 꽃은머리는 하늘을 이고떨어지는 꽃은온몸을 뿌리 쪽으로그래서꽃은 뿌리의 자식, 어둠의 후손어둠이 밝음을 삼키는 이...
김시극
봄, 그 봄 2018.04.04 (수)
 거리마다 수북이 쌓여있던 흰 눈이 녹아 내리고, 누런 잔디가 어색한 듯 고개를 내민다. 요 며칠 봄볕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틈에 더 따뜻하고, 환하게 세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눈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의 얼굴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아쉬움이 드리워져 있다. “눈이 다 어디 갔지? 지금은 겨울이에요? 봄이에요?” 파란 눈을 반짝이는 아이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묻는다. “봄이 오는 중이야.” 나는 아이의...
권은경
동태 2018.03.26 (월)
동네 수퍼 생선코너에 들렀다죽은 이의 침실로 염치없는 접근근접 촬영한 무대 위에내 자아상은 왜 저렇게 차가울까  두어 마리 비닐에 넣으려다 동태 이빨에 손이 찔렸다 아앗~섣부른 암행의 뒤 끝은피폭자처럼 전염된 종양 하나  사지로 뻗는 심판의 연결고리와죽음의 사인이 무관치 않다 뇌사 판정을 죽었다고 우긴 죄부릅뜬 동그라미, 눈깔로 깔본 죄 얼어 있던 시간을 뾰족하게 날 세워최신의 습기를 빨아들이고한...
김경래
일상의 블랙홀을 벗어나 길을 나서는 일은 나를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일이다. 긴 시간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눈길을 줄 때면, 번잡한 일상의 산란했던 마음이 어느새 고요해진다. 때론 길동무와 정서적 교감을 갖기도 하고 낯선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어느새 여행은 건조하게 되풀이되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투란도트에게 보이던 칼라프 왕자의 열정이 사라져버린 칠순의 여행객도 그윽한 눈빛으로 은발의 아내를...
조정
봄이 오는 풍경 2018.03.26 (월)
캐나다 기러기가 요란하게 울며 돌아온 지도 두 주일 가까이 된다. 봄이 살금살금 오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유난히 겨울이 긴 지역이다. 캐나다 북서부 북극권에 속한 대평원에 자리 잡은 에드몬튼은 거의 여섯 달에 걸쳐서 눈과 혹한이 계속되는지라 3월 지나 4월에도 봄소식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겨우 영상 기온이다 싶어도 북서풍이 불명 체감온도는 영하로 뚝 떨어지곤 한다. 기상청도 일기예보의 정확성에 자신을 갖지 못한다. 5월에도...
이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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