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현 / 몬트리올 은행 노스 버나비 지점 |
예약 문화
필자가 처음 캐나다에 와서 경험한 한국과 다른 새로운 사회적 풍습 중 하나가 예약문화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아이가 많이 아파 동네 의원(Clinic)을 방문하려 하니 예약이 다 되어서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물론 아이가 많이 아프면 예약 없이도 우선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이후에 곧 알았지만 그때는 잠시동안 난감했었다.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가가려고 해도 예약을 하고 오라고 했고 회계사나 부동산 중개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지금 어떤지 모르지만 필자가 캐나다로 이민오기 전 부친께서 오랫동안 지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계셨는데, 몇 년 동안 이 주일에 한번씩 병원을 방문하여 아버지의 약을 타와야 했었다. 그때도 예약제도가 있어서 분명히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에 의사를 만나도록 예약이 되어 있었건만, 병원 가는 날이면 길어야 이삼분 정도의 의사 상담을 받기 위해 항상 두시간 이상을 소비하게 되었다. 그때는 그래서 예약에 대한 장점과 편리함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캐나다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예약제도의 장점을 이해하고 나서는 이 제도가 상대방에게 서로 유익한 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직업상 일주일에 몇 분씩 한국에서 새로 이민오시는 가정을 만나게 된다. 평소에도 대출관련 상담이나 투자상담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새로 갓 이민오신 가족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캐나다의 금융제도가 기본적으로 한국과는 일맥상통하지만 결국 운영하는 방법은 상이한 점이 많아서 처음 이민오신 분들에겐 그에 대한 설명에 특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있다. 그 이유 말고도 새로 이민오시는 분들에겐 아마 필자가 캐나다에 와서 거의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 사람일 수 도 있고, 은행에 근무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공인으로 더욱 더 믿고 신뢰하게 되니 자연 금융 문제 이외의 문제까지도 상담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길게는 두시간 이상씩 상담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만약 예약 없이 방문하시는 경우, 기존 예약손님에 대한 상담이 끝날 때 까지 오래 기다리셔야 한다는 불편함도 있겠고,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비는 시간에 안내를 해드리지만 바삐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가끔 본의 아니게 서비스를 제대로 못해 드리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니 결국 손님 본인도 손해를 볼 수 있다. 물론 긴급한 사항은 중간에 예약손님께 양해를 구하고 잠시 상담할 수 도 있지만, 일반적인 상담은 꼭 예약을 해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
예약은 미리 만남을 약속하는 것이므로 예약을 하는 자와 예약을 받는 자 서로가 미래에 약속을 지킬 것에 대한 의지가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지킬 수 있는 상황 하에서 만들어지는 약속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예약 제도가 정착될 수 있다. 처음에는 불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 약속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겠지만, 일단 익숙해 지면 서로에게 유익한 제도라는 점에 동의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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