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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를 버려서 오늘의 내가 살았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1-08 13:31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34-한국문협 밴쿠버 지부 김해영 회장
한국에서의 삶은,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의 밧줄을 팽팽하게 쥐고 있을 뿐이지 뒤를 돌아볼 겨를”은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성공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거의 한결같아 보였고, 여기에 맞게 그녀도 그녀의 남편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계가 왔다. 부부가 원했던 일상의 풍경은 따로 있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는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 여기까지야”라는 말과 함께 결심이 섰다. 국어 교사로 교단에 섰던 그녀와 이제 막 대기업 임원이 된 남편은 나란히 사표를 썼다. 그리고 캐나다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불혹에 시작된 인생 2막이었다. 시인 김해영씨(사진)를 만났다.



“대부분은 걱정하는 습관 탓에 걱정한다”

낯선 캐나다를 부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한 순간 언어에 미숙한 유아기로 돌아갔지만, 이들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1996년, 이민 온 첫해를 “걱정 없이” 즐긴 뒤 그제서야 두 사람은 먹고 살 일을 찾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었다는 게 그저 부러운데요.
걱정이 없었던 이유는 밴쿠버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이민자의 삶도 별다른 건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그래도 걱정 없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요?
대부분의 걱정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것이에요. 생기지 않은, 혹은 생기지 않을 일을 염려하지요. 어제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어제의 걱정 거리가 오늘 나타나지 않을 “벽”이었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경험이 반복돼도 사람들은 걱정의 끈을 놓지 않아요. 근심하는 재미로 근심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걱정하는 게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얘긴가요?
맞아요. 어제를 살았던 것처럼 오늘을 살고 내일도 또 그렇게 맞이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제의 벽을 깼기 때문에 오늘을 살 수 있고 내일의 벽도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는 동안 한군데 상처입으면 좀 어때요. 

이민 첫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데요.
자그마한 차를 타고 온가족이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어요. 숙소 예약도 하지 않은 채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여행이었어요. 한번은 미국 노스캐스케이드 국립공원에서 한밤 중에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어요. 차 안엔 양초 하나, 담요 한 장 없었지요. 같은 길을 계속 도니까 우리가 수상해 보였는지 나중에는 순찰차까지 따라붙더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1년 간의 좌충우돌 여행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었던 거품 같은 걸 빼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외국생활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사라졌다는 거군요.
아니요, 그 뜻이 아니에요. 애초부터 우리 부부에겐 그런 환상 같은 건 아예 없었어요. 내가 거품이라고 얘기하는 건, 기고만장했던 과거에 대한 거였어요. 한국에서의 우리는 나름 잘 나가는 사람들로 비춰졌을 거에요. 하지만 여기선 아니었습니다. 공원에서도 길을 잃고, 도와주겠고 나선 경찰의 얘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귀도 열리지 않은 갓난아이에 불과하다는 걸 여행을 통해 알게 됐어요.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먹고 살 일”을 찾아야 하는 시기인데요.
나는 허황될 정도로 눈이 높았고, 남편은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었요. 둘의 눈높이가 이렇게 달랐지만, 결국엔 액자 가게를 하나 인수하게 됐어요.

원래부터 관심있는 분야였나요?
아니요, 잘 몰랐지요. 남편이 학교에 다니며 액자 제작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가게 영업이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영어 때문에 애를 먹었지요. 손님을 마주하는 것조차 꺼렸던 날들도 있었어요.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이민 첫해 여행을 통해 거품을 뺀 것 같다고 했잖아요. 나의 지금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바닥에 내려 놓았지요. 손님에 대한 첫인사가 “아엠쏘리”였어요. 내가 영어가 서툰데, 천천히 얘기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죠. 얘기가 끝나면 손님에게 할인 혜택을 줬어요. 영어를 가르쳐준 대가였죠. 이렇게 적응했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벌써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한 가게에서 중년의 대부분을 보낸 셈인데요.
어떤 사람은 일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지요. 일만 하다 청춘을 다 보냈다고, 그래서 억울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우린 달랐어요. 우린 일을 즐겼지요. 손님들은 액자를 고르는 우리의 안목과 정성을 믿었고, 그 자체가 나와 남편에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내 인생 제일 깊은 자빠짐, 다시 일어서기까지”


이민 온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요?
단 한 차례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나름 누리고 혜택받으면 살았지만, 그 모든 게 단면적이었어요. 한 가지만을 추구했던 거죠. 하지만 여기서는 달라요. 각각 삶의 목표가 다 존중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불행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요. 내 식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서, 그래서 내가 서럽거나 슬프지 않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습니다. 누구를 짓밟을 필요도, 또 내가 짓밟힐 필요도 없는 삶, 이게 제 이민 생활인데 뭐가 후회가 되겠어요.

그래도 힘든 시기가 있었지요.
암에 걸린 것 말이지요?

예, 맞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일 깊은 “자빠짐”이라 할 수 있지요. 암에 걸렸던 건 말이에요. 2010년 9월 암 진단을 받았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난 내 몸과 정신에 어떤 한계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도, 가게도 모든 게 잘 됐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창작 작업에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암이 걸림돌로 나타난 거에요.

결국엔 다행히 암을 이겨냈습니다.
암 진단받고 약 3주만에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전이 속도가 빠른 몸쓸 암세포여서 일의 진행이 빨랐던 거에요. 이때만 해도 암에 대한 생각 때문에 무섭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은 나중에 왔지요. 수술 후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이게 저를 지치게 하더군요. 3주에 한번 받는 항암은 그나마 괜찮았어요. 하지만 매일 같이 진행되는 방사능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시를 쓰기 시작했지요. 나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 이보다 훨씬 가벼운 고통 속에 살면서도 괴로워하는 사람, 이들을 대상으로 희망의 시를 썼습니다.

암을 이겨낸 김해영씨만의 힘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극복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바꿔야 합니다. 암을 만든 건 바로 나 자신이에요. 그러니 예전의 나 자신, 예를 들어 나의 성질머리, 나의 식습관, 나의 생활 태도, 이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았던 나를 버려야 한다는 얘기군요.
바로 그거에요. 암이란 건 내 몸에 정기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포가 기형이 돼서 나타나는 병이에요. 내 몸 속 면역력이 떨어지면 그 기형이 암세포가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걸 누가 만들었지요? 바로 예전의 “나”입니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 달라져야 하는 건 바로 나에요. 암을 키워낸 내 안의 토양을 바꿔야 하지요. 과거의 나는 늘 완벽주의를 추구했어요.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이런 저를 내려놨지요.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글을 쓰곤 했는데, 작업 시간을 오전 10시부터로 바꾸었지요. 육식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채식주의자가 됐고, 산을 너무 사랑해서 20시간 산행을 해도 지치지 않았지만 이젠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습니다.     

이민 와서 제일 잘한 일을 꼽자면 뭐가 있을까요?
문학을 생명수로 둔 것, 그리고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것, 이 두가지에요.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국어 교사로 일하면서 남의 글만 읽는데 더 오랜 시간을 할애했고, 이민 와서도 가게 일 탓에 글쓰기에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5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산과도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이민온 후 8년만에 가진 나름의 안식년이었어요, 제겐 2005년이 말이지요.

이민 후 소설도 출간했고 시집도 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문협 캐나다지부 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지요.
회장직을 여러 차례 사양했는데, 이번에는 문협 사정상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문협을 이끌게 됐으니, 제가 느꼈던 글의 향기를 다른 회원들도 느끼게 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협이 어떤 단체가 되길 희망합니까?
신나는 문협, 공부하는 문협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특강도 준비 중이고, 소그룹 차원에서의 글공부도 계속 진행될 겁니다. 

김해영 시인은 인터뷰 말미에 균형잡힌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쪽에 치우치면 자기만의 세계관을 갖기 어렵고, 또 그렇게 되면 인생의 황혼기에 만날 허전함이 너무 클 거라고 김 시인은 말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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