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부자로 불리기 위한 조건에 대하여”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2-30 16:27

서예가 춘강(春江) 서정건의 새해 메시지
그의 하루는 고요하지만 풍족하게 꾸며진다. 아내와의 아침 산책을 거르지 않고, 소박한 식탁에 오를 땅의 선물들을 직접 가꾼다. 고서(古書)를 통해 옛 스승들의 지혜를 더듬는 한편 인터넷에 기대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도 관심을 둔다. 그는 서예가인 춘강(春江) 서정건 선생(사진)이다.

선생이 처음부터 서예가였던 것은 아니다. 한국 시절 그는 유능한 전기 기술사였고, 관련 사업체의 경영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환갑을 몇 해 앞둔 어느날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캐나다로의 이민이 바로 그것이다.

새 이민자에게 낯설게 다가온 삶은 분명 무료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도 이 따분함이, 이 심심함이 그는 싫지 않은 눈치다. 2015년의 끝자락, 자택에서 만난 선생은 이렇게 얘기했다.

“복잡한 사회, 물질 위주의 사회가 싫어 밴쿠버에 정착한 사람들조차 이곳에서의 삶이 심심하다고 불평할 때가 많습디다. 그런데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들 역시 천국에는 죄다 가려고 하더군요. 하늘나라가 이곳 밴쿠버보다 훨씬 재미 없는 곳일텐데 말이에요. 이거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태도 아닌가요?”

심심해진 그의 일상에 편입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서예였다. 붓과 먹물 그리고 화선지와의 친분은 성경 필사를 통해 더욱 두터워졌다. 4년, 5000여 시간 동안 그는 구약과 신약에 새겨진 120만자를 다 옮겨 적고 마침내 서예가가 되었다. 그의 완서 소식에 한국 서예사의 대표적 인물인 고(故) 여초 김응현 선생은 이렇게 애기했다.

“서정건씨도 이젠 명필이야. 100만자 정도 써봤다면 명필이라고 할 수 있지.”









“한 가족이 농사지어 먹고 살 밭 하나만 있다면…”

성경 완서 후에도 그의 작품 활동은 늘 현재 진행형이었다. 15년간 3000점의 한시를 화선지에 담았다. 오래된 인류 기록과의 잦은 만남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자양분이었다. 유교에서 언급하는 다섯가지 복, 즉 오복(五福)을 선생은 이야기 거리로 삼았다.

“오래 사는 것, 부자되는 것, 건강한 것, 좋은 덕을 갖는 것, 천수를 누리는 것, 이렇게 다섯 가지를 우리는 오복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이 중에서 요즘 사람들이 특히 집착하는 것이 부(富)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복들은 우리 의지대로, 다시 말해 노력한다고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수중에 얼마를 갖고 있어야 부자란 소리를 듣게 되는 걸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선생은 한자 풀이로 대신했다. 부(富)는 집을 뜻하는 부수 갓머리와 한 일(一), 식구 구(口), 밭 전(田)자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대로라면 한 가족이 농사 지어서 먹고 살만한 하나의 밭이 있다면, 거기에 집 하나가 추가된다면 부자라는 의미겠지요.”

여기에 보통의 우리가 추구하는 복(福)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졌다. 복이라는 한자도 부와 마찬가지로 “일, 구, 전”이 핵심  구성 요소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의식주가 해결되면 부자인데다 복도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더 갖기 위해서 늘 무리합니다. 내 것을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요. 재산 문제로 형제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천륜에 어긋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조금만 여유있게 살면 될 것을, 그 한도를 넘겨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만 드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못된 짓도 서슴없이 하게 되는 겁니다.”

남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끊임 없이 비교하는 것, 이 행위는 스스로를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동력이 될 뿐이다.

“하늘이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인간이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고 그랬어요. 옛 스승의 이런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걱정은 몸과 마음에 짐만 될 뿐이다”

선생은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로 근심을 꼽았다. 애를 쓰며 속을 태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평범한 세인은 걱정, 또 걱정하기만 한다.

“걱정은 마음과 몸의 짐만 될 뿐이에요.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약간의 도움도 되지 못하지요. 그래서 2016년에는 모두가 낙이불우(樂而不憂)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살고 걱정하지 말란 얘깁니다.”

인터뷰 중에 선생은 친(親)과 믿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먼저 친할 친(親) 속에는 나무 목(木), 설 입(立), 볼 견(見)이라는 한자가 들어있다.

“친은 부모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엄친(嚴親)은 아버지, 자친(慈親)은 어머니를 뜻하니까요. 이 친이라는 한자 속에는 나무 위에 서서 내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고 있는지 지켜보는 가장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마음이, 이 모습이 바로 친(親) 그 자체입니다.”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는다는 의미의 신(信)도 눈여겨볼 한자다.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이 만날 때 믿음은 출산된다. 사람의 말이 진실된 것이 믿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믿음은 또한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믿음에서 비롯되니까요. 때문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애정이 생기지요. 다시 말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믿음을 줘야 합니다. 험한 말로 남의 상처를 건드려선 안 돼요. 좋은 점은 칭찬해 줘야 하구요. 그래야  믿음을 얻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은 자신의 생각을 “막상의유신애”(莫相疑唯信愛)라고 정리했다. 서로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고 사랑하라는 의미다.

“막상의유신애, 오랫 동안 가져왔던 생각이에요. 내년이라고 해서 또 내후년이라고 해서 달라질 생각이 아닙니다.”


인터뷰 말미에 선생은 자신의 뒷마당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의 텃밭이 자리잡은 그 마당은 수목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크고 깊다.

“보시다시피 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아요. 이 자연 속에 나의 스승들이 존재합니다. 보세요. 때 되면 꽃 필 놈은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놈은 열매를 맺습니다. 내줄 것은 내주고 받을 것은 받지요. 이 과정이 변함없이 반복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이 같은 움직임을 보며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저조차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디다.”


선생의 작품들은 전남 남원의 한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그리고 그의 서체에 감동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예전이 준비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난 그의 작품들은 2016년 가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사람들과 만날 예정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창립 31주년 맞은 한인신협 석광익 전무
한인들 전폭 지원으로 캐나다 100대 신용조합 성장 '뿌듯'
조합원 경제편의 위해 업무 융통성있게 노력할 터
<▲밴쿠버 한인신협의 석광익 전무. 사진 김혜경 기자>“한인사회와 함께 시작하고 성장한 신협은 한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금융기관입니다. 한인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신협을 찾을...
주민 행복이 최우선 시정...주택 일자리 정책 우선적 개발 추진
마이크 헐리 버나비 시장과의 대담
지난해 10월 BC주에서 열린 지자체 선거에서는 메트로 밴쿠버 지역에서만 16명 의 시장이 새 얼굴로 바뀌는 등 큰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지난 선거는 급속 성장과 관련된 주택난, 교통악화...
사진 4장으로 車수리비 견적 ‘뚝딱’ / 밴쿠버 차량 정비사업에 승부수 띄워
<▲ 국내 최초로 차량 외장수리 견적비교 서비스를 론칭한 모카의 에릭 임 대표(34). 사진 = 최희수 기자>애지중지 아끼던 새 차가 헌 차가 되는 건 한 순간이다. 밤사이 누군가 긁어놓고...
서울고법-사법연수원 현판, 4.19묘비 등 수많은 작품 남겨 서가협 밴쿠버지회 출범..후학 양성에 혼신의 힘을 쏟을 터 백석 김진화 선생..밴쿠버 박물관서 전시회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서예 얘기를 하는 동안 그의 눈매는 젊은이처럼 또렷또렷했으며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하는 병약한 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강건한 모습이었다....
BC주 최초 재선에 성공한 박가영 교육위원 트라이시티 교육행정 및 예산 의결업무 11월6일 선서식
“먼저 저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은 한인 커뮤니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20일 치러진 BC주...
넷마블 투자..밴쿠버 게임산업 성장 견인차 될 것 / 고용 통상 및 기술 장관 인터뷰
“잠재력과 역동성이 놀라운 한국과 BC주와의 교류는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BC주 비즈니스 교역을 담당하고 있는 브루스 랄스턴 고용 통상 및 기술 장관이 최근 본사를 방문해...
광화문시네마 공동대표 전고운 감독 데뷔작 / 제37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초청 / 취향·가치관 지키는 30대女 그려
전고운 감독에게 여성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화두다.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자극적인 장면 없이 여성의 주체성을 그려내는 법을 안다. 그래서 인지 전 감독 영화...
6번째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데릭 코리건 현 버나비 시장
대표적 친한파 성향 정치인-한인들의 역량 강화 도울 것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 놀라워..양국 관계 진전 희망BC지자체 선거가 내달 20일에 열린다. 이번 선거에는 한인 후보가 4명이나...
시의원 출마 스티브 김씨 3번째 도전 출사표, 이제우-박가영씨 등 한인 4명 BC주 총선 출마
“반드시 저를 뽑지 않더라도 이번 선거에 많은 한인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시의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코퀴틀람 시를 위한 맞춤형...
밴쿠버서 할리우드 무대로 맹활약 / ‘레고무비’ ‘파워레인저’ ‘스파이더맨’ 등 3D분야 다수 참여 / 소니픽쳐스 등 세계 유수 기업에서 활발한 활동 펼쳐
<▲ 소니 픽쳐스 이미지웍스(Sony Pictures Imageworks)에서 시니어 프리비즈/레이아웃 아티스트(Senior Previs/Layout Artist)로 일하고 있는 김아름씨. 사진 = 최희수 기자 >요즘 영화의 성공은...
이재정 경기교육감 3일-10일, 북미 지역 한글학교 학술대회 강연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한국어 교육 정책도 변해야 합니다. 이제 변방에 머물던 수준의 한국이 아닙니다. 전 세계인들이 한글로 된 책을 읽고 한국어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문화를 함께...
조리학과 출신 전문 셰프부부·호텔 근무 경력 다수코리안 퀴진에 프렌치 스타일 접목...”퓨전 한식 다이닝 선사”<▲ 화로의 대표 이영근(39), 윤지영(36) 부부. 사진 = 최희수...
한인 남매 CTV 인기 방송 ‘어메이징 레이스 히로’에 출연 / 치열한 경쟁 뚫고 오디션에 합격, 3일 첫 회 방송
캐나다 CTV 인기 프로그램인 ‘Amazing Race Hero Edition’ 시즌 6에 치열한 오디션을 뚫고 한인 남매가 최종 진출해 출연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방송이 시작된 본...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두 아이의 입양, 늦은 나이에 선택한 미국 유학길 2014년 돌연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배우 신애라가 지난...
연방 보수당 재미 슈말 하원의원
“캐나다의 실익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는 원안대로 추진돼야 합니다”제1야당인 연방 보수당에서 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재미...
ICBC 전문 상해 변호사 홍소라씨
“변호사가 된 이유도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었고 지금도 제일 보람된 일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인들을 위해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숭실교회 변상호 담임 목사
<▲숭실교회 변상호 담임 목사>“가난한 목회자 아내로 평생 하나님의 일을 하다 홀로 남겨져 외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는 사모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자 시작했던 일입니다....
크래프티드 밴쿠버 대표 캐리 로스씨 5월9일-18일 한국도자기 전시회, 19-21일 워크샵 개최
      <▲한국 도자기 전시회와 관련 미팅을 가진 크래프티드 밴쿠버 캐리 로스(가운데)씨와 한지공예협회 김제우 회장(왼쪽), 장민우 평통 부회장>“한국 도자기의...
밴쿠버 심포니와 28,30일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브루흐(Bruch)바이올린 협주곡 1번 선보여 2년 한 번 밴쿠버서 음악회 가지려 노력
<▲오는 28일, 30일 밴쿠버 심포니와 협연을 갖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씨>“천재소녀, 신동, 바이올린의 ‘대가’라는 칭찬의 말보다는 삶과 음악의 밸런스를 아는 연주자로...
'Sportsnet 650' 한인 2세 아나운서 쟌(Jawn)장 씨의 '성공 스토리'
방송진행 아나운서가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나 여기 캐나다에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공감한다. 더욱이 이국 땅에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영어를 잘...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