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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팅스 거리의 한인 산타들

박준형 기자 ju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2-23 16:56

"친구가 되려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이 중요", 핫초코로 전하는 따뜻한 손길
"돕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고 친구가 되려는 마음,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밴쿠버 이스트 헤이스팅스가(East Hastings St.)에 젊은 한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토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이들을 볼 수 있다. 김광현(28)씨를 비롯한 20대 한인 청년들이다. 김씨 등은 각자 준비해온 악기를 꺼내들고 연주와 노래를 시작한다. 이들의 가스펠 음악이 들리면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가스펠 음악을 들으며 즉석에서 만들어준 핫초코를 받아든 노숙인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가느다란 미소가 번진다.

10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지만 김씨를 비롯한 청년들은 작은 정성을 모아서 거리에 나간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따뜻한 핫초코와 바나나를 대접한다. 기부금이 많이 모아질 때는 양말이나 장갑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물품으로 마음을 전한다.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아름다운 연주에 실려 거리의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김씨가 처음 헤이스팅스가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여름. 같은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끼리 이웃사랑을 실천하자는 마음을 모아 거리에 나간 것이 벌써 5년이 지났다. 결혼 이후 2년 정도 쉰 적도 있었지만 그는 다시 거리를 찾았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돌봐야 하는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음악은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실천하기 어렵지만 같이 해보자는 마음이 모여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헤이스팅스가는 밴쿠버의 대표적인 빈민가이자 우범지대다. 노숙인뿐만 아니라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 등 소외된 계층의 집합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앞에서 마약을 하고 싸움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김씨 역시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우리도 거리에 나가는 것이 모두 편하고 기쁜 일만은 아니다. 냄새도 많이 나고 무서운 마음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들이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누는 것들에 굉장히 좋아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기쁨이고 동기부여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거리의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비결은 단지 음식을 나눠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며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핫초코는 마음의 문을 여는 매개체일 뿐이다. 핫초코에 담겨진 청년들의 진심이 느껴지자 거리의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자신의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씨는 "외로운 사람들이고 힘들어서 의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생각하는 이웃사랑의 기본은 돕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친구가 되려는 마음이 자신에게도 여전히 목표이고 바램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소외된 이들과 친구가 되려는 마음이 밴쿠버 한인 교민사회에 널리 퍼지기를 소망했다.


<▲김광현(28)씨를 비롯한 20대 한인 청년들이 밴쿠버 이스트 헤이스팅스가(East Hastings St.)에서 가스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 헤이스팅스가에 나가 핫초코를 나눠주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 제공=김광현>

헤이스팅스가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우리는 모두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이다. 헤이스팅스가에서 핫초코와 바나나 등을 나눠드리고 가스펠을 연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한 두 번 못 나갈 때도 있지만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에 나가고 있다. 거리에 1시간 정도 있으면서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그 자리에서 핫초코를 만들어서 나눠드린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5년 전부터 시작했다. 교회 청년들 사이에서 얘기가 나왔고 마음이 모아지면서 시작하게 됐다. 인원이 많지는 않다. 많을 때는 7~8명, 적을 때는 4~5명이 거리에 나간다.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와있다. 그들을 기억하고 돌봐야 하는 책임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전을 받게 됐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거기서 힘을 얻었다. 음악은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또 밴쿠버에서는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웃사랑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듣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렵다. 혼자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같이 해보자는 마음이 모여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10년 여름에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사실 나는 중간에 결혼하면서 2년 정도 쉬었다 다시 참여했다. 쉴 때는 다른 친구들이 계속해서 해왔다."

처음부터 핫초코를 나눠준 것인가?

"처음에는 거리에 나가서 뭘 해야 할 지 잘 몰라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거리에 나가 보니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고 특히 겨울에는 날씨가 춥기 때문에 핫초코와 바나나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핫초코를 나눴을 때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들이 필요한 것을 우리가 해줄 수 있다는 점이 힘이 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장갑을 나눠주기고 하고 초코바를 나눠주기도 했다. 쓰레기 줍기도 해봤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양말이었다. 그 분들이 우리가 나누는 것들을 받아가면 굉장히 좋아하신다. 그 모습이 우리에게도 기쁨이고 동기부여가 됐다."

헤이스팅스가하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두려운 마음은 없었나?

"사실 그 부분이 어려운 것 중 하나다. 거기에 가면 냄새도 많이 나고 무서운 마음도 있다. 적대적인 분들도 많다. 우리가 연주하면 시끄럽다고 욕을 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끔은 악기를 뺏어서 자기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노래하고 있는데 눈앞에서는 주사기로 마약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서로 싸우는 모습도 본다. 지나가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번은 흑인남성이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 주변을 서성이면서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며 방해한 적이 있다. 마치 우리에게 화풀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별다른 폭력적인 사건은 없었다.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곳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들이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열려 있는 분들도 많아 우리가 무엇을 하면 잘 받아주고 호응도 좋다. 우리 얘기를 들어주고 그러다 보면 본인들도 힘든 얘기를 자연스럽게 한다. 함께 얘기도 나누고 몸이 아파서 힘들어하면 같이 기도한다. 우리 노래를 칭찬하면서 같이 따라 부르고 춤을 추는 분들도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거리에 나가나?

"비오는 날도 가려고 노력한다. 밴쿠버는 워낙 비오는 날이 많다. 비가 오면 그 사람들도 더 힘들다. 물론 우리도 비오는 날은 더 힘들다. 하지만 헤이스팅스가에 천막이 있는 자리를 찾아서 이후에는 천막 밑에서 연주를 한다. 천막에, 작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 여름에도 물론 거리에 나간다. 여름에는 메뉴가 달라서 아이스티나 시원한 음료를 나눠드린다."

기부금도 모으고 있나?

"지금까지는 자체적으로 돈을 모았다. 가끔 기부금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샌드위치를 싸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핫초코와 바나나, 양말 등을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1인당 한 달에 5~10달러 정도만 내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돈이 된다. 돈이 없을 때는 핫초코만 나누기도 한다. 핫초코 값이 싸다. 이 일을 하면서 작은 것을 통해서도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작은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크게 받아들이면서 고마워한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얘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소통 없이 우리가 할 것만 했었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것은 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이다. 힘들어서 의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까 대화를 나누면 무척 좋아한다. 그것이 진짜 이웃사랑인 것 같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수도 있지만 그러면 단지 우리 만족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같이 소통하는 것이 그 사람들을 진짜로 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핫초코는 단지 접근할 수 있는 매개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면서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매개체다. 핫초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자기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다. 가족이나 친구가 거리에서 죽은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우리도 같이 안아주면서 얘기를 들어주고 격려해준다. 그럴 때 우리도 가장 감동을 받는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우리를 통해서 믿음을 갖겠다고 다짐하는 분들도 있다.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5년이 지났으니 아는 사람도 있지 않나?

"예전에 50대 정도로 보이는 중국 사람이 있었다. 이름이 조쉬였던 것 같은데 자신이 중국 한의사라고 했다. 지팡이를 들고 나왔는데 우리와 친구가 돼서 우리가 올 때마다 항상 나와 있었다. 항상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격려해줬다. 한 번은 백인들이 와서 우리 여자 청년들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조쉬가 대신 보호해주기도 했다. 감동받은 날이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데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또 한 분은 백인 할아버지였다. 70대 이상으로 혼자 살면서 거동이 불편하고 이도 없었다. 그 분이 우리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 교회도 나왔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 분이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서 시설로 옮겨졌다. 몇 번 뵈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우리를 못 알아보는 상태까지 갔다. 가족이나 친척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다."

제일 힘든 점은 무엇인가?

"우리도 거리에 나간다는 것이 모두 편하고 기쁜 것만은 아니다. 두렵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우리 몸이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매주 고민이다. 가장 힘든 점은 이 일이 형식화될까봐 걱정이다. 분명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무감에 나가는 것이 될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서로 마음을 모으니까 나갈 수 있는 것 같고 더 용감해질 수 있는 것 같다. 5년이 지나면서 멤버가 많이 바뀌었다. 총 50명 정도가 함께 했다. 그동안 개인 사정으로 못 나오게 된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같은 마음으로 해왔다. 항상 누군가 나가면 새로운 누군가 들어왔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은데 나서지 못하는 교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면?

"거리에서 생활하는 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 지 모르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돈을 주는 것보다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돈을 주면 마약이나 술을 살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과일이나 피자 한 조각 등을 사서 주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면 보통 고마워하며 받는다. 새 것을 사다 주는 정성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외투 두 벌 입는 자는 외투 한 벌을 불쌍한 이웃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교민들이 이미 아시겠지만 구세군과 같은 기부를 하는 단체가 캐나다에 많이 있다. 그런 단체를 이용하면 충분히 도울 수 있다. 특히 속옷이나 양말 등을 구하기 힘든데 그런 것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도움이다. 그렇게 작은 노력으로 시작하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거리의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그 부분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우리도 처음에는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나갔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보기에는 되게 우스울 수 있다. 거리에 나가서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상황을 들어주려면 그 사람들과 정말 친구가 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도 한 번에 그런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돕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고 친구가 되려는 마음,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여전한 목표인 것 같다. 매주 거리에 나가면서 우리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램이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거리에 나갈 것인가?

"기약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은 아이도 없으니 당분간은 계속해서 나갈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함께 할 것이다. 개인을 떠나서 이 움직임은 계속됐으면 좋겠다. 우리 교회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김광현(28)씨를 비롯한 20대 한인 청년들이 밴쿠버 이스트 헤이스팅스가(East Hastings St.)에서 가스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 헤이스팅스가에 나가 핫초코를 나눠주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 제공=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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