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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6-26 12:31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11 밴쿠버에서 사제 서품 받은 구장한 신부

한때 그는 세상의 기준에 맞는 성공을 원했다. 빠른 속도로 저축 잔고를 늘리고 싶었고, 은퇴 후에는 세계 곳곳을 한적하게 여행하는 삶을 꿈꿨다. 그는 이 목표대로 충실히 살아왔다. 이른바 명문 대학에 입학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내로라하는 인터넷 기업의 선택을 받았다.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개인적으로 투자자로서 나름 재미도 봤다. 이처럼 그에겐 보장된 삶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됐다.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어떤 삶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게 됐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렸다. 새로운 한인 사제인 구장한 신부(사진)의 이야기다.




<사제 서품식이 열린 지난 5월 23일을 구장한 신부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았기 때문이다.  


“워털루공대 수재, 오랫 동안 종교를 등졌지만…”

천주교에서 성직자는 자기 자신을 신(神)에게 오롯이 봉헌한 사람으로 통한다. 다소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는 이 정의는 새 사제의 서품식에서 혹은 수녀나 수사가 종신 서원하는 현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이 의식의 한 순간 제대 앞의 예비 성직자들은 십자가 모양을 한 채 바닥을 보고 눕는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신을 섬기겠다는,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마음이 그들에게서 느껴진다. 

지난 5월 23일 성(聖) 로사리오 주교좌 성당에서도 같은 의례가 진행됐다. 십자가 아래 한 사내가 무릎을 꿇었고, 그는 이 날 밴쿠버 한인사회에서는 두번째로 사제가 되었다. 구장한 신부였다.

1995년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족과 함께 밴쿠버에 정착한 그는, 아마 총명하고 착실한 아이였을 거다. 뛰어난 학업 성적 덕분에 워털루대학교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중 하나인 아마존닷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탄탄대로, 부러운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는 사제의 길을 선택했다. 왜일까?


어려서부터 종교관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천주교 신자였던 건 맞지만 제 믿음이 항상 돈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때 성당을 등진 적도 있었거든요. 11학년 때였습니다. 당시의 저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신이 정말 있다면 인류의 고통이나 어려움, 혹은 그 어떤 악(惡)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의혹이었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제 질문에 그 누구도 속시원히 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설령 그 답을 들었다 한들, 제 마음은 열리지 않았을 겁니다. 계속해서 반문을 했고 어느 순간 나는 도저히 신을 못 믿겠다,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냥 착하게만 살면 되지, 종교가 아니면 성당이 뭐가 필요한가…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그렇다면 종교와 다시 가까워지게 된 계기가 분명 있었을텐데요.
당분간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집을 떠나 동부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게 제겐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공부하고 또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했습니다. 성당 쪽으로의 관심은 아예 끊어진 상태였지요. 물론 종교적 질문에는 관심을 갖고 있어서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선택해 수강하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왜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사제의 길을 선택하게 됐는데….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는데, 만날 때마다 제게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항상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제게 기도를 해보라는 거에요. 살짝 난감했지만 눈을 감고 손을 모았습니다.

어떤 기도를 드렸습니까?
첫 기도에서는 어떠한 생각도, 말도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두컴컴했을 뿐이지요. 그러다가 신께 겨우 한 마디를 건네게 됐습니다.  당신이 만약 존재한다면 내게 그 신호를 보내 달라는 거였습니다.





사진제공=구장한 신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른바 “응답”은 다음날 들려온 모양이다. 그는 전날처럼 기도했다. 시야가 어두어진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신을 멀리했던 지난 시간들이 순차적으로 재생됐다. 어렵고 힘들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받아들였다. 그에게 있어 그 누군가는 바로 하느님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이 그를 곧바로 성직(聖職)으로 인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마음을 움직인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성서를 읽던 중이었다.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구절 앞에서 그는 호흡을 멈췄다.  마치 예수가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건네오는 것 같았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게 됐습니까?
세상에는 두 가지 가치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성공을 쫓아가는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신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천주교식으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가치관이었습니다. 저는 후자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전자의 행동이나 습관 등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하느님의 가치관을 따라갈 때 본래의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변화했고, 그 변화에 끌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심은 남아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이해하겠지만 예수는 아직이었습니다. 무한한 신이 유한한 인간 세계로 들어와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그 의심을 풀어주었습니까?
시애틀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는데, 마침 짬이 생겨 피정(천주교 신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묵상하거나 기도하는 것)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때 제 안에 있던 내가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상처들을 보게 되었고, 그 상처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느꼈습니다.


피정을 마친 지 몇 달 후 그는 부모와 함께 성지 순례길에 올랐다. 보스니아의 작은 마을 “메주고리에”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사제의 길을 처음 생각했다. 과학도의 의심이 전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경험한 후였다. 그는 바로 부모에게 말했다. “저, 신학교에 가야 겠어요”.


부모님 반응이 궁금한데요.
너무 놀라셨는지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제 뜻을 언제나 존중해 주는 분들이었지요. 제가 결국 신학교행을 결정했을 때에도 말씀을 아끼셨어요. 제 결정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마음이셨겠지요.

솔직히 아깝지 않았습니까? 이제까지 쌓아올린 것을 버려야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 수도 없으니까 말이죠. 인간적인 고뇌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짐작되는데요.
전혀요.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돈버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또 그것을 위해 살았어요.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은퇴해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버렸다고 해서 저는 슬프지 않았습니다. 제 꿈대로 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제게는 부러움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내게 꼭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너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이쯤에서 한인 1.5세나 2세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인사회의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해서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을까요?
결국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한 삶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시각으로 보자면, 경쟁을 해서 이기면, 즉 성공하면 우리는 행복해질 겁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경쟁이 아니라 나눔의 삶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내 위치나 능력에 상관 없이 나눔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한인 2세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제의 길을 걷고자 합니까?
온유하고 겸손한 신부가 되겠다는 게 저의 마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애기한다면 한인 사회와 캐나다 사회를 연결하는데, 이민 1세대와 2세대를 연결하는데 제게 어떤 역할이 주어질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사진 제공=구장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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