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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임]밴쿠버 당구 동호회 "이민 생활, 즐겁게 놀아야 더 재밌지"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6-20 13:37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당구장 전성시대”였다.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에서도 당구장을 찾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길거리에 다방 수가 많은 지 아니면 당구장 수가 더 많은 지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기가 오고 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누리던 인기에 비하면 당구장에 쏠리는 눈빛은 그닥 탐탁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 당구장은 청소년출입금지구역으로 분류됐고, 이런 규율을 비웃었던 까까머리 고교생에게서는 다소 껄렁껄렁한 분위기가 느껴지곤 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당구장은 영화나 드라마 속 패싸움 장소의 단골 손님이었다. 당구가 15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스포츠로 시작됐고, 한반도에 첫 선을 보인 공간도 왕궁(창덕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시절의 당구장은 참 억울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러한 푸대접 혹은 관심조차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던 당구장은 지워졌고, 대신 그 자리를 PC방이 차지했다. 그 많던 “당구광”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달라져서 돌아 온 당구, 그 재미 느껴보실래요?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옛 것”의 가치를 유행처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흘러가도 한참 전에 흘러간 노래가 누군가의 턴테이블 위에서 재생됐으며,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소설책들이 한번 더 읽혔다. 이른바 “7080세대”의 귀환, 이 추억의 행렬 어딘가에 당구도 있었다. 

당구는 그 위상이 확실히 달라져서 돌아왔다.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되었고, 어떤 대학은 당구학과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담배 냄새와 누군가가 먹다 남긴 짜장면 냄새로 범벅이 됐던 당구장의 “아우라”는 종적을 감췄다. 말쑥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당구, 그리고 당구장. 이곳 밴쿠버에서도, 당구의 복귀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밴쿠버 당구동호회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노는 모임”을 만든 오영식 회장과 강신정씨를 함께 만났다.


동호회까지 만들어진 이유,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오영식 회장(이하 오) 제가 당구를 참 좋아하는데, 밴쿠버에서는 이를 즐기기가 쉽지 않아요. 한국과 비교하면 말이죠. 한국의 당구장은 이른바 나홀로 손님도 환영합니다. 혼자 당구장에 가더라도, 함께 게임을 하려는 사람이 꼭 있죠. 하지만 밴쿠버는 달라요. 당구장에 갈 때에는 꼭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게임을 할 수가 없거든요. 이 점이 좀 안타까웠는데, 저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여럿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모임을 만들게 된 겁니다.

그게 언제였죠?
2010년이었으니까, 4년 정도 됐군요.

현재 등록된 회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70명 정도인데, 화·목·토 이렇게 매주 세 차례 정기 모임을 갖습니다. 그때마다 평균 열다섯 명 정도의 회원이 참석해 포켓볼이 아닌 4구당구를 즐기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회원 수가 많은데요. 왜 이렇게 관심이 높은 걸까요?
 한국에서 청년기를 보낸 성인 남자라면 큐대 정도는 한번쯤 잡아봤을 거에요. 그 당시 한국에서 당구를 배운다는 건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였거든요. 제 경우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당구와 인연을 맺게 됐고…. 여하튼 젊은 시절 즐겼던 것을 나이 들어 다시 한다는 게 이곳 한인들에게도 큰 기쁨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당구는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스포츠인 거죠. 한국에서 당구 붐이 새로 일어난 것도, 옛날 친구와 추억을 공유하려는 데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요?

강신정(이하 강)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당구장에 갔더랬어…. 그만큼 당구와 관련해서 추억도 인연도 깊죠. 그때의 당구장이랑 지금의 당구장은 많은 차이가 있어요. 그때는 당구장에서 사람들이 담배 피고, 술도 마시고, 가끔 패싸움도 나곤 했는데, 지금은 건전한 놀이터가 된 느낌이에요. 이게 참 마음에 듭니다.

예전 한국의 당구장에서는 돈내기를 하던 사람도 꽤 있었잖아요.
그랬지요. 그런데 말이죠, 당구는 굳이 내기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운동입니다. 상대방을 이길 때도 물론 즐거움이 있겠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또 다른 만족감 같은 게 있어요. 내가 머릿속에 그린 길 그대로 수구와 목적구가 만날 때, 이 때의 희열은 상상 그 이상이거든요. 

성취감이 대단하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어려운 기술을 성공시켰을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종의 보상을 경험하게 되죠. 

당구는 상당히 아기자기한 운동이에요. 당구대 위에 공을 굴릴 수 있는 방법의 수가 무궁무진하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각조차 보이지 않는데, 득점에 성공하게 되면 정말 짜릿짜릿합니다. 당구의 또 다른 매력은 따로 시간 들여 연습할 필요가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아마추어인 경우에는 말이죠. 그냥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술을 터득하게 됩니다. 골프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바로 밑천이 드러나지만, 당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두분께서 얘기하신 즐거움이 이민생활에도 적지 않은 활력소가 될 것 같은데요.
물론이죠. 잘 놀수록 밴쿠버에 사는 재미도 커질 거에요.

힘든 하루를 보냈어도, 내일이면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 당구를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죠. 이게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고, 이것 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도 좀 덜하게 될 거에요. “큰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도 즐겁게는 살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모임이 꽤 화목할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쉽게 말해서 당구 동호회는 “노는 모임”이죠. 재미가 목적이에요. 그러니까 다툼이 있기 힘들고, 모임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거죠. 회원들도 당구 이외에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당구만 즐길 뿐이에요.

동호회 가입 조건은 까다로운가요?
아니요, 전혀.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이에요. 단 다른 목적, 이를테면 비즈니스를 이유로 모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은 사양합니다. 회원이 되고 난 후에라도 이런 사람들은 바로 퇴출됩니다.

초보자도 함께 어울릴 수 있습니까?
그럼요. 초보자인 경우에도 큐대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테크닉은 죄다 배울 수 있습니다. 

강습을 위해 한국에서 세미프로를 초빙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강습료가 꽤 비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무료였는데, 세미프로가 오고 난 후에는 동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따로 강습료를 책정했어요. 일주일에 두번씩, 그러니까 한달에 총 여덟 번 강습에 드는 비용은 30달러, 이게 전부에요.

거의 공짜인 셈이네요.
회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한번 모임을 할 때 4시간 동안 당구를 치게 되는데, 이 경우 회비로 10달러만 내면 됩니다.
(시중 당구장의 한 시간 이용료는 12달러 정도다) 


모임 장소는 오스틴에 있는 마스터 당구장이다. 강신정씨는 “동호회 회원을 위해 오영식씨가 이곳을 직접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당구대를 비롯한 시설은 모두 최고급. 굳이 골프와 비교하면, PGA 메이저 경기가 열리는 골프장 그린에 견줄만 하다. 오 회장은 “당구장을 만든 이유는 동호회 회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당구를 즐기기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원 가입 문의 (604)492-0899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밴쿠버 생활의 재미를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에서 찾는다는 얘기에 
오영식씨(사진 왼쪽)와 강신정씨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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