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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집 ‘한옥’ 이명순 대표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2-08 09:47

“낯선 땅 밴쿠버에 식당을 열기까지… 내게 일어난 일들”



통장의 잔고 수위가 어느 높이쯤 돼야 평균적인 인간들은 평범하게 행복하다 말할 수 있게 될까? 최근 리치몬드에 ‘한옥’이란 한식당을 연 이명순씨가 이 질문에 답한다.




반듯한 사장님 ‘맨바닥’부터 다시 시작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얘기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 혹은 한국에 있을 당시 지녔던 명함에 여전히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명순씨 앞에서는 자기자랑을 잠시 접는 게 좋을 듯 싶다.

왠지 억척스러움이 느껴지는 그녀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예식장 몇 곳을 운영하던 반듯한 사장님이었다. 사업을 대충 접고 97년 밴쿠버에 처음 정착했을 때만 해도 경제적으로는 큰 모자람이 없었다. 

“처음 이민 오고 나서 만 5년 동안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생활했던 거죠. 그러다 다시 한번 사업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2002년의 일이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요식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 두었을 만큼 요리에는 관심도, 자신도 있었다. 결과는, 처참한 패배. 식당은 문을 닫고, 잔고는 바닥이 났다. 가슴 속에는 한(恨)이 자라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왜 이런 시련이 주어졌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시 그녀에게 신(神)은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녀의 시린 마음을 위로해 준 것도 종교였다.

“아무 것 하나 가진 것 없이 밴쿠버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허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종교를 통해 나름의 목표를 세우게 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결정되고 나니까 마음은 저절로 평안을 찾게 되더군요.”

밴쿠버에 재정착한 것이 2006년, 처음 왔을 때와는 사뭇 낯선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가게, 성공의 이유는?
대접받는 일에 익숙했던사장님은 난생 처음 ‘남의 집’ 일을 시작했다. 체면이나 그런 것은 애당초 중요하지 않았다.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마음 뿐이었다.

“한 5년 정도 일식집 주방 일을 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 저만의 가게를 열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어요.”

개인적으로 두세 번밖에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꽤 좋은 조건에 자기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명순씨에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 제안을 덜컥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창업 자금이란 게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뭘 좋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돈은 장사를 하면서 조금씩조금씩 갚아나가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식당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큰손’ 시절에 했던 사업과 비교하면 그 규모는 한없이 작았다. 혼자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하고, 돈계산을 할 수 있는, 그런 크기의 식당이었다.

“부지런히 일했더니 댓가가 따라오더군요.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도 다 갚을 수 있을 정도로 장사가 꽤 잘 됐습니다.”

밴쿠버에서 거둔 그녀의 첫번째 성공, 비결이 궁금했다.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건강을 해치는 음식은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 그러려면 화학 조미료는 당연히 쓰지 말아야 하고 재료는 항상 신선해야 한다, 손님을 대할 때도 당연히 친절함을 잊지 않는다, 등등. 뭐 이런 원칙들 있잖아요.”

이명순씨의 비결은 ‘식당 창업 교과서’(만약 이런 책이 있다면) 맨 첫장에 실릴 만큼 진부해 보이지만, 눈 앞의 이익에만 마음을 여는 그런 사람이 따라 하기에는 한없이 어려워 보인다. 원칙을 지키며 2년 가량 자식처럼 키워 온 가게를 그녀는 식당 창업을 꿈꾸던 누군가에게 물려 주었다.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은 채.

“제가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이전 주인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준 것 뿐입니다.”


단골 손님이 투자자로, ‘날개’를 달다
이명순씨는 두번째 가게를 열었다. 그 규모는 첫 식당과는 달랐다. 주방에도 홀에도 직원이 여럿 필요했다. 버나비 한인타운에 위치한 ‘우리집’이 바로 그곳이다. ‘성공하셨네요!’라는 주변의 반응에, 그녀는 살짝 고개를 젓는다.

“제 힘으로만 가게를 연 게 아니에요. 여기까지 오게 된 건 고마운 투자자를 만난 덕분이에요.”

투자자는 첫 식당의 단골 손님이었다.

“제가 차린 음식을 참 아껴주시는 분인데, 어느 날 투자자로 나서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한인타운에 ‘우리집’을 열게 된 거구요.”

화학 조미료 하나 치지 않은 정직한 맛에 감동한 어느 재력가가 선뜻 자신의 지갑을 열어 숨은 요리 신공의 창업을 돕는다는 스토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만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해 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장면이 밴쿠버, 지금 이곳 한인사회에서 연출됐다는 게 꽤 신선했다. 어찌됐건 음식 맛 때문에 투자를 받았으니, 그 음식 맛을 지켜내고 이를 위해 직원들을 관리하는 게 그녀에겐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식당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팀웍이에요.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단 주인이나 직원들 모두 하나의 팀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팀웍을 만들기 위한 실행파일 중 하나가 바로 최고의, 그리고 최선의 밥상이다.

“저는 직원들에게 식당 메뉴 중에서 제일 좋은 것, 자기가 제일 먹고 싶어하는 것을 먹어보라고 해요. 그래야 일터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추천하는 것도 훨씬 자연스러워지죠.”

‘우리집’이 한인타운에 자리잡고 나자 그녀는 중국계가 주류이다시피한 리치몬드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문화권에 도전해서 우리의 진짜 맛을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제 의견에 투자자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구요. 이게 ‘한옥’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에요.”

이명순씨는 달짝지근한 맛을 버리고 재료 자체의 식감을 살려 중국계를 비롯한 타문화권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다. 한옥이 문을 연 지 이제 겨우 보름. 하지만 ‘이게 바로 매운탕 맛이지’라며 흡족해 하는 중국계 손님의 반응을 보면, ‘한옥’의 성장기는 충분히 기대해도 될 듯 싶다.

“큰 식당을 차리니까 이곳저곳에서 돈 많이 벌었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그렇지 않아요. 리치몬드 식당도 투자자가 도와주신 겁니다. 지금 저한테 돈은, 통장의 잔고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소명이나 나의 신념 때문에 땀 흘리고 있을 뿐이지요. 어떤 일을 하든지 나름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전혀 힘들 게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명순씨에게 식당 창업 희망자들을 위한 조언 몇 마디를 대신 구했다. 매너와는 담쌓기 놀이를 하는 고객 다루는 법, 혹은 신선한 재료 값싸게 구하는 법 등이 알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마음이나 발품만 조금 더 쓰면 충분히 풀 수 있는 궁금증이었다. 이명순씨는 식상한 조언 대신, 자신이 겪은 황당한 경험을 들려 주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배추를 절여 놓았는데, 식품검사국(CFIA)에서 이를 보더니 당장 버리라고 합디다.”

이게 뭔소리인지 한참 이해되지 않았다.

“냉장고에 보관해야 하는데, 그 규정을 어겼다는 거에요. 한번은 갓 지은 보리밥을 식히기 위해 실온에 잠시 두었는데, 그것도 내다 버리라고 하더군요. 이것 때문에 벌금을 두 번이나 냈습니다.”

한인의 눈높이에서만 본다면 CFIA 직원의 지적은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실책에 가깝다. 이명순씨는 “캐나다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문화 국가라면, 다양한 음식문화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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