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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전투를 캐나다군과 함께 치른 한인, 김재붕씨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1-25 15:34

지난 22일 캐나다 다문화장관 추천으로 영국여왕 재위 60년 기념메달(다이아몬드 주빌리 메달)을 수상한 김재붕씨는 27년 생이다.

6.25 때 영연방군으로 출전한 캐나다군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가평전투와 파주전투를 몸소 체험한 이다. 미국 유학왔다가 캐나다로 이민 온 이나 전란 중 난민으로 입국했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렇기 때문에 비공식이기는 하지만, 김씨는 65년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최초의 한국인 캐나다 이민자이다.

김씨와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았을 때, 허허허 웃는 웃음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뒤이어 담백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돋보이게 쓰고 싶은 욕심이 불쑥 머리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쓰지 않아도 김씨의 인생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충분히 채울만 하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6.25때 캐나다군과 어떻게 인연이 닿았습니까?

" 부산에 피난가서 먹고 살아야 되니까 노동을 하는데... 트럭이 한 대가 서있고 사람을 모집해요. 뭐하는 것이냐 했더니 외국 군대가 오는데 일할 사람을 찾는다고 해요. 부산 가보셨어요? 부산에서 초량쪽으로 말이요. 트럭이 주욱 가더라고요. 어떤 언덕 위에 군대 주둔지라고 있어요. 군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거기서 몇 일간 천막치는 일을 했어요. 군에서 가장 먼저 온 부대가 통신대인데, 하루는 보니까 무선통신차가 있어요. 그래서 병사보고, 내가 사실 통신 기술자인데 내가 일할 수 없겠느냐. 그랬더니 다음날 특무상사한테 데려가더라고요. 특무상사가 나를 하사들한테 데려가서 시험 쳐라이거야. 근데 운이 좋았어요. 아는 것만 물어봐서 패스했지요."

김씨는 평양 출생으로, 평양공업학교 전기과에서 교육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체신전문학교로 바뀐 해당 학교를 졸업했다.


영어를 잘 하신 듯 합니다.
"일제시대 배운 영어라는게 형편이 없어요. 그렇지만 기술 용어는 같으니까 그 덕을 봤지요. 제가 운이 좋았아요"


그럼 군무원(군속)으로 들어간 것입니까?
"캐나다군인은 캐나다 국민(시민권자) 아니면 안되요. 저는 현지 군속이 된 것이지요."



캐나다 군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 통신대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제 일선으로 나가게 된다 이거야. 4월 초순이었을꺼야요. 그때 나간 거이, 가평 전투 있잖아요? 거기 참가했어요. 거기서 정말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지요. 여단 본부 소속 통신대로 각 연대로 나가 고장난 통신기기를 고쳐주거나, 통신기기를 설치하는 일을 했어요. 휴전할 때까지 거기서 계속 있었어요. "

1951년 4월 중공군은 서울 재점령을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미군과 한국군의 방어선을 뚫고 대대적으로 남하해온 중공군을 캐나다군을 포함한 영연방군이 격파하는데 성공, 서울 재점령을 막아낸 장소가 가평이다. 영연방군 41명 전사, 반면에 중공군은 1만명 이상 사상자를 기록했다. 캐나다 기록을 보면 영연방군 사이에 시간차 포격 지휘와 항공보급을 위한 통신망 유지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휴전 이후에도 계속 군무원으로 있었습니까?

"휴전 즈음해서는 라디오 메이플리프라고 캐나다군 방송에 있다가, 그게 라디오 커먼웰스로 바뀌었어요. 영국군 대위가 방송국장이었는데, 54년 4월까지 거기 있었으니 휴전(53년 7월 27일) 이후에도 계속 있었던 것이지요"


캐나다 이민은 어떻게 오게 됐습니까?

" 거기에... 운이 좋았아요. 여단 본부에 군법무관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로렌자 소령이라고 군 재판장이에요. 그 사람하고 상당히 친했어요. 사람이 좋다보니까 친하게 지냈는데, 그러다보니 소위 끈을 잡은 거지요. 사실 휴전 직후에 바로 이민올려고 했어요. 로렌자 소령이 캐나다 정부에 상신을 했어요. '내가 이 사람을 캐나다로 초청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건의 했는데, 그 당시에 캐나다는 동양인 이민을 받는 법이 없다고 답을 받아서 못했다 이거야. 그래서 서울에서 래디오 가게도 하고 연명하다가... 1961년 쯤에 브라질 이민 얘기를 들었어요. 동생 친구가 이민 관련 일을 했는데, 나도 이민을 가겠다하니, 이 친구가 브라질이 아니라 캐나다 문이 열렸다고 알려줬어요."




닫혀있는 캐나다 이민 문이 어떻게 열렸습니까?

"동생 친구 말로는 당시 중공에서 홍콩으로 난민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홍콩에서 그 난민을 다 수용할 수 없어요. 결국 연영방국가에 문호를 열라고 요청했는데, 그 때 캐나다 문이 열린거지. 그 덕분에 내가 캐나다 이민 1호로 올 수 있었던 것이고."


이민 서류를 직접 신청하셨습니까?

" 이민 가야겠는데, 끈이 없단 말이지. 그래서 미 8군 안에 캐나다 연락장교를 찾아갔아요. 어떻게 왔느냐 하길래, 메이저 로렌자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연락할 방법이 없겠느냐 했더니 책장에서 두터운 인명록을 뒤져보더랍니다. 고급 장교니까 기록이 다 있는거야. 찾더니 눈이 휘둥그래 지면서, 당신이 그 사람을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거야. 그래서 인연을 얘기했더니, 그 사람이 현재 캐나다군 준장, 법무감으로 일하다 예편해 몬트리올에서 변호사 협회 회장이라는 겁니다. 연락처를 주길래, 로렌조에게 연락을 했더니 홍콩 캐나다 공관에서 이민수속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인터뷰 하란 얘기도 없어요.  이민 비자가 나왔다길래, 주한 캐나다 영사관에 이민 비자를 받으러 갔어요. 이민 비자를 받으러 갔더니 거기서 일하는 지모씨란 분이 물어봐. '아니, 캐나다로 이민갈 수 있습니까?' (웃음) 이름은 다 기억이 안나는 데, 지모씨 그 분도 후에 캐나다로 온 것으로 알아요"

캐나다군에서 준장은 사령관급이다. 한편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캐나다 이민을 신청하면 수속을 홍콩에 있는 캐나다  공관에서 처리했다.


이민을 오신 해가 언제입니까?

"64 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 때 사업하는 것도 있고해서 정리하느라 65년 8월 25일 입국했어요. 프로펠라 비행기로 한국에서 동경, 하와이를 거쳐 밴쿠버에 도착했지요. 밴쿠버에서 또 몬트리올로 가서, 밤 12시인데, 로렌자, 그 분이 직접 운전해서 마중을 나왔어요. 저와 부인, 아들 셋 모두를 태워서 그 분 집으로 가서... 그 분 집에서 2주 동안 머물렀는데, 도저히 미안해서 안되겠어. 그래가지곤 나 이사가겠다고 했더니, 계속 있으라. 그런데 염치가 있어야지. 그래서 아파트를 구해 나왔지요"



일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6.25 때 알았던 캐나다 친구 중에 래브라도시티라고 북방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연락이 됐어요. 그 친구가 광산에 일이 있다고 해서, 거기 가서 일자리를 찾았어요. 멀로니 전총리 아시죠? 그 멀로니 소유 광산 회사에 기계 정비로 취직했습니다."


가족도 함께 광산으로 간 겁니까?

" 처음엔  떨어져 살았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이민생활에 실망하고 한국에 가겠다는 말이 나왔어요. 광산 책임자인 에스토니아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제가 만든 테스트 기계를 들고 회사 부장과 승부를 봤어요. '이 사람이 이런 기계를 만들었는데, 이런 사정으로 한국가게되면 회사에 손실이 많다'하니 과장급들에게 주던 관사를 내줬어요. 그래서 가족과 함께 정착해서 살았어요"


계속 광산에 계셨습니까?

" 애들이 자라서 교육 때문에 도시로 나가야겠다 해서 동생사는 토론토에 갔더니 대도시라 복잡해요. 못살겠다. 그래서 밴쿠버에 와서, 5월에 스탠리 파크를 봤어요. 꽃 피고 나비 날고, 나도 눈코입 있기는 밴쿠버 사람과 마찬가진데, 이것 누리며 여기 살아야겠다. 매력에 푹 빠진 거에요. 그런데 직업이 없어서, 찾아보니 프린스톤에 동 광산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거기에 자리를 잡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말마다 프린스톤에서 밴쿠버로 나와서 직업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못 공장에도 취업했다가, 목재회사 캔포에 취직해서 전자계통 일을 58세까지 했습니다"


58세에 은퇴하신 겁니까?

"목재회사라는 데가 미국 경기가 좋으면 일자리가 많다가, 안좋으면 일자리가 없어요. 미국 경기가 나빠지니 공장 문을 닫게되더라구요. 그래서 일찍 은퇴하고 현재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이민 후배에게 조언을 한다면?

" 예전에 투고한 적이 있어요. 아무데 가나 자기 노력없이 저절로 되는 곳은 하나도 없다. 무엇이든, 바닥에서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각오를 하면 한국에서도 사실 잘 살 수 있어요.  무엇이든 성실하면 인생이 잘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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