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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하누리 제 12회 정기공연 ‘오동리 소방서’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9-28 10:55

배우 윤명주 “아날로그 시대의 응답, 10월 25일 공유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은행 잔고가 두둑해지는 순간, 행복해질 수 있을거야”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라는 양반이 손위 형님과 재산을 놓고 떠들썩한 싸움에 기꺼이 매달리는 모습만 놓고 보면, 돈이 곧 행복이라는 믿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이고, 또 행복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사람들마다 동경하는 ‘행복의 열쇠’가 어느 정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질문에 단답형 답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그래도 이 사람에게만큼은 ‘참 행복해 보이시네요’라는 얘기를 무턱대고 건네고 싶었다. 상대방이 성급한 평가에 당혹해 하고 그래서 ‘정말이지 무례하기 짝이 없군. 남의 속도 모르고 말야’라며 투덜대더라도 말이다. 그는 하누리의 연극배우 윤명주씨다.


<▲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후원을 기대할 수박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해에는 한아름마트가 하누리에게 연습 공간을 무료로 내주었다. 윤명주씨는 “매년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것이 계속해서 연극을 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 사진=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

연극 때문에 죽고 못산다고? 그냥 ‘생활’일 뿐이죠 
윤명주씨, 이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에게 해야 할 일이란 노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다. 4년 전 밴쿠버에 정착한 윤명주씨는 처음 몇 년은 간판을 만들어 주며 생계를 해결했고, 그 후에는 건설 현장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약 1년 전부터는 초밥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다.

“초밥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기술 느는 속도도 더딘 것만 같고···. 조금이라도 빨리 회를 만져봐야 할 텐데, 지금은 그저 캘리포니아롤 같은 것만 손대고 있는 수준이에요.”

초보 요리사여서 그런지 그리 큰돈을 버는 것 같진 않지만, 가장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겐 행복이다. 또 다른 행복은 ‘하고 싶은 일’에서 얻는다. 그것은 바로 연극이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극단에 들락거렸고, 그 후 줄곧 무대와 인연을 맺어 왔다.

“밴쿠버에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극단 ‘작은 신화’의 소속 배우로 있었습니다. 배우만으로는 생활이 좀 어려워서 조명감독 생활도 꽤 오랫동안 했지요.”

‘지겹지 않았어요?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연극계서만 20년 넘게 생활했는데?’라는 질문에 그는 담담하게 답한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연극을 시작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좋다, 나쁘다 얘기할 것도 못 돼요. 연극은 그러니까, 제게는 그냥 생활인 거죠.”

‘죽고 못 산다’는 다소 식상한 답변을 예상했는데, 그는 ‘생활’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그 단어에서 더욱 애틋함이 느껴졌다. 그 애틋함은 오랜 시간 살을 부비고 그래서 서로의 속마음을 말 한마디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부부에게서나 느껴질 수 있는 감정처럼 보였다. 그 애틋함을, 그 생활을 뒤로 하고 그는 밴쿠버로 왔다.


3,4일 공연 위해 1년을 던지는 우리는 ‘배우’
이민을 결심한 건 가족 때문이었다.

“아내가 딸을 데리고 1년 먼저 밴쿠버에 정착했어요. 그 시간 동안 저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 셈이죠. 한국과 캐나다를 오고 간 것은 아니니깐 기러기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런가요? 어찌됐건 가족이 서로 떨어져 지내는 건 아니다 싶어서 결국엔 캐나다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연극 없는 그의 삶이 쓸쓸할 거라는 건, 누구보다 아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말했다. 밴쿠버에 와서도 당신 좋아하는 일 하며 살 수 있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 준 곳이 바로 극단 하누리였다.

하누리는 한 울타리의 순 우리말이다. 1989년 그 울타리가 처음 세워졌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창립공연으로 ‘돈’(강태기 모노드라마)을 무대에 올렸다. 그후 이제까지 총 11회의 정기공연을 가졌다.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이처럼 꾸준히 공동작업에 매달릴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놀라운 일이다.

성과물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해 공연작이었던 ‘짬뽕’은 한국 역사에 쓰린 상처로 새겨져 있는 ‘5·18 민주화 항쟁’을 중국집 주인의 시선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하나의 작품을 수준이 낮다, 높다로 섣불리 선을 긋는다는 게 좀 유치한 면이 있긴 하지만, 2011년 밴쿠버에서 올려진 ‘짬뽕’은 서울 대학로의 연극과 견주어봐도 모자란 구석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 작품을 내놓기까지 물론 긴 단련의 시간이 필요했다.

“극단 단원들 대부분이 생업은 따로 있으니까 연습 시간 맞추는 게 가장 힘이 듭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배우들끼리 서로 미안해 눈치를 보기도 하지요.”

돈이 나오는 것도, 그렇다고 떡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누리 극단 배우들은 1년에 고작 3,4일 열리는 공연을 위해 밤이 되면 서로의 시간을 기꺼이 내놓는다. 그 연습은 종종 새벽 3시까지도 계속된다.

해마다 이맘 때 걸려오는 문의전화가 큰 힘
정기 공연이 끝나면 허탈함과 조우하기 십상이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해왔던 일들을 순식간에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가 만들어졌을까.

“매일 밤 만나서 연습한 게 버릇이 되서인지, 정기 공연 끝나도 한 동안은 연습 공간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나면 다음 작품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게 됩니다.”

하누리의 다음 작품은 ‘오동리 소방서’(작 이영기, 연출 권호성)로, 밴쿠버에서 초연된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부담이 많다.



<▲ 오는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되는 '오동리 소방서'  >


“기존 작품을 공연하면 참고할 거리를 꽤 많이 접할 수 있잖아요. 녹화된 공연 화면을 보면서 감정선을 체크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밴쿠버가 초연 무대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난 정기공연 ‘짬뽕’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한국의 연출가를 초빙해 연극 무대를 하나둘씩 다듬고 있는 중이다. ‘오동리 소방서’의 연출은 권호성씨로 현재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상임연출자로 있다.


“이번 연극은 충청도의 한적한 마을, 그곳에 문닫을 처지에 있는 작은 소방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마을 사람들이 그 소방서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무대에 담고자 합니다.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고 ‘효율’이 최대 덕목인 요즘 예전의 그 아날로그적 감성을 끄집어 내고 싶다는 게 저희의 바람입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하누리 극단 관계자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이따금씩 전화를 받는다. 올해 공연은 언제 시작하냐는 문의 전화다. 그만큼 하누리를 향한 애정어린 시선이 꽤 있다. 그들은 이번에도 기꺼이 하누리를 찾고 연극이 끝나면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박수를 칠 것이다. ‘오동리 소방서’의 문은 10월 25일 열린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공연 정보
날짜 및 시간 : 10월 25일(목) 오후 7시 30분
                          26일(금), 27일(토) 오후 4시 30분, 오후 7시 30분
장소 : 쉐보트 아트 센터 (버나비 디어레이크에 위치. Shadbolt Centre for the Arts)
문의 : 604-552-2828, 778-887-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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