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주총선에 출사표 던진 신재경 교수
인터뷰 대상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려면 기자부터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 과정이 없으면 기자의 관념이 인터뷰이의 입을 빌려 기사로 나간다. 정직한 인터뷰가 아니다.
그런데 신재경 밴쿠버 커뮤니티 칼리지 교수와 인터뷰를 하기로 작정 했을 때부터 마음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앞서 출사표를 던졌던 한인 정치인의 연속적인 낙마를 보며 아쉬웠고 그래서 기자 이전에 한인 유권자로 할 말도 있었다.
BC주 유권자의 대표 자리에 출사표를 던져놓고 정작 한인사회 활동만 하는 듯 보인 신교수의 행보가 낙선행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여러 사례를 봤을 때 한인사회는 당선에 조력을 할 수는 있어도, 주력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인의 힘으로 주의원에 당선됐다고 해도 그 다음이 문제일 듯 싶었다. 신 교수가 캐나다 사회나 일반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에 대한, 한인사회의 소원수리처가 된다면,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된다. 다문화사회 캐나다에서 그런 공격의 빌미를 주면 결국 한인사회에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
신교수가 출사표를 던진 내년 5월 BC주 총선은 선거구의 민의를 대변할 사람을 뽑기 위한 일이지 중국의 전인대처럼 민족 대표자를 뽑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한인사회에 인사를 시작한 신교수를 놓고 혹자는 마치 민족 대표자처럼 치켜세우며 소원을 나열하는 모습은 불안했다. 그 소원 목록에 초선 주의원(MLA)이 할 일 또는 할 수있는 범위에서 벗어난 사항이 적잖게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신교수는 그 부분을 잘 걸러서 듣고 있을까? 이런 저런 기우를 품고 지난 21일 신교수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신 교수는 캐나다의 정치인을 소원하고 있었다. BC주민, 특히 버나비-로히드 선거구민을 대표하는 주의원(MLA)을 원했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의사와 교수가 되기까지 노력한 인생 얘기는 많이 들었다. 정치인 신재경씨가 알고 싶다. 학력이나 직업을 보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왜 불편한 정치인을 택했나?
“(제 직업이) 편안한 것은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스물 일곱살까지 공부하면서 친구들이 시집가고, 차사고 집사고 하는 5년을 구경하며 살다가, 드디어 (서른 넘어) 내 차례다 이러고 있는데, 정치를 할려니까... 반년은 머뭇거렸어요. 저는 앞서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해요. 한 십년 동안 얼마나 돈을 모을 계획을 다 세웠는데, 정치인을 하면 숫자가 크게 달라져요. 부모님께 용돈도 제대로 못드려요. 그래서 꿀꿀했는데...”
그런데도 굳이 정치를 하겠다는 뜻은?
“제 욕심에서 하는 것이죠.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하겠다는 둥, 그런 큰 그릇은 아니에요.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최근에 알았어요. 캐나다란 나라가 어느 정도 좋은 나라니까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끄고 있어도 잘돌아가는구나. 사람들이 크게 불평할 것이 없으니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다른 나라는 기본이 잘못되니까 시위나 쿠테타도 벌어집니다. 캐나다는 가만히 두어도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좀 바뀌었어요. 캐나다는 30~50년대 열심히 뛰어오신 분들 덕분에 좋은 사회보장제도가 있지만 이제는 (사회 제도가) 미국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보건과 교육 분야에 있어 보니, 보건이 분야가 민영화될 가능성이 간당간당하게 보여요. 교육도, 제가 10년 전에 UBC 다닐 때 ‘만불 장학생’이란 게 있었어요. 1만 달러면 4년 학비가 되니까. 1년에 2500달러란 얘긴데, 국경너머 워싱턴주립대만 가도 1년에 2만달러는 들잖아요. 그런데 최근 캐나다도 학비가 꾸준히 올랐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하니까...”
인터뷰 말미에 신재경씨는 자신의 욕심의 정체를 도전의식이라고 밝혔다. “앞에 바위가 있고 손에는 계란이 있어요. 바위가 깨지지 않더라도 그래도 손에 있는 것을 힘껏 던져봐야 겠다고 믿어요.” 이런 도전에 대한 욕심이 스스로를 의사로, 교수로, 이제는 정치로 신 교수를 이끌었다고 했다.
그래서 신민당(NDP)인가?
“네. 그래서 NDP입니다. 이런 말 하면 당에 혼날 수도 있지만, 사실 마음에 드는 백점 정당은 없어요. 다들 장단이 있는데... 저는 자유경제와 자본주의가 경제에 중요하다고 보지만, 그것 자체가 주된 관심사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기본적인 필요(basic needs)해소에 관심이 있어요. 중·저 소득층의 주요 관심사는 교육과 보건 이잖아요. 몸이 아플 때 약 못먹는다는 것,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 못한다는 것. 돈이 없어서 그런 걸 못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에요.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런 제도 자체가 없으면 개인이 할 수가 없지요. 이런 제도를 멋지게 잘만들겠다기보다는 제가 나서서 보호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에서 보니 NDP랑 같이 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 BC NDP 집권 당시 신 교수가 언급한 대학 학비 동결과 의약보험 확대 등 공공보건 강화 정책을 추진했다.
진보적인 가치관은 당에 소속되기 전 부터 있었나?
“1년 전만 해도 정치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때까지 가지고 온 생각, 가치관을 이런 저런 정당과 맞춰보니 NDP가 맞아요. 솔직히 NDP가 좌파(left)라면, 좀 더 중도 좌파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 저랑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중도 우파도 있지만, 중도 우파는 저와는 거리가 있어서 NDP로 가게 됐습니다”
중도 좌파라면 한인 사회가 지원해온 색깔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은 없나?
“한인이 이 당 저 당 나눠서 지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NDP의 방향이 도와줄 수 있는 인구는 전체 50~60% 정도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NDP가 60%의 지지로 정부를 구성한다면, 나머지 40%를 대변해줄 정당도 필요하지요. 만약 NDP를 지원하지 않는 한인이 있다면, 자유당이나 보수당에서 좋은 정치인이 나오도록 열심히 지지해 주셔야 할 겁니다. 그래서 좋은 정치인이 나와서 좌우가 지지자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겠지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뜻인가?
“맞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좌우를 적대 관계로 보는 듯 해요. 선거운동 하면서 일부 친구분들이 와서 ‘미안하다. 너와 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재밌는게... 적이 아니에요. 제가 왼손이면 오른손이 필요한데... 왼손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한국 분들은 저에게 그런 점을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마운데...”
신교수가 지향하는 것은 한민족 정치인인가 아니면 캐나다의 정치인인가?
“저는 캐나다의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원래 뿌리(grass root)가 캐나다인이에요. 제가 10살 때 왔을 때만 해도 한인사회는 참 작았어요. 비디오 가게가 처음 생겨서 신기했고, 한국 가면 오뎅이나 떡볶이를 먹고 싶어한 한인이지요.
그러나 저는 한인 사회보다는 여기 복합문화 사회에 어울려서 살아왔어요. 저를 지원해주시는 분들은 여러 국가 출신에 여러 민족이에요. 그런 분들도 있고, 또 저의 아이덴티티는 캐나다인이에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애국심에 불타는 분 중에는 속상해할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한인사회에만 의존해 선거 운동을 할 생각인가?
“처음부터 한인사회에 인맥이 아예 없었어요. 작년 11월 정도에 버나비 시장(데릭 코리건)께서 한인사회를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서 한인 사회를 접했고, 요근래 한인사회가 크다는 걸 느끼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반가워요. 차세대 분도 멋있는 분들이 많고요. 그러나 캠페인 자체는 캐나다인 중심입니다.”
캐나다인 중심으로 캠페인할 자신이 있는 것인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만난 학생이나 동료 인맥이 2000명이 넘어요. 사회 생활 한지는 얼마 안되는데...사실 쌓아온 인맥이 한인사회는 오히려 없어요. 너무 없으니까, 당에 계신 분이 오히려 한인 사회에 길을 터주고 인맥을 쌓도록 도와주고 계세요”
현재까지 한인 정치후보는 한인으로 나와 캐나다 사회에 도전하는 형국이었다. 도전 뱡항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저는 오히려 반대에요. 캐나다 사회에서만 활동해서 한인사회에 조금 더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지요. 이때까지 (신민당을 지지하는) 아시아계는 주로 중국계가 많았어요. 한인은 모집을 했더니 단 다섯분이 가입했지요. 그래서 지인 분께 사실 징징댔어요. 당에서도 … 아무리 그래도 한인이니까 하는 기대가 있잖아요. 기자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대놓고 가입을 독려해주시고... 그리고 부모님을 유람선 관광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전단을 들고 직접 나서서 모집을 하셔서 그래서 이제 100명 가까이 한인이 가입하셨어요”
당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당원 몇 명의 지지가 필요한가?
“잘은 모르지만 200~300명이 모이면 완전한 공천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에서는 1000명 데려오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캐나다인 네트워크는 1000명은 되요. 그러나 막상 찾아보면 (선거구에서) 한 두 블럭씩 벗어나 살고 있더라구요. 이대로라면 옆 선거구에 출마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한인 분들이 막판에 지원해 주셔서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러나 저의 (지지) 근간은 캐나다인 주류에 있어요. ”
NDP 후보 확정은 언제 되나?
“10월 초에요. 10월 초에 누구를 공천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당원은 최소 90일 이상 당원이여야 해서 6월말이면 모집은 끝나요. 그런데, 당 내에서도 경쟁이 있잖아요? 여기서 당원이 많은 사람이 유리해요. 당 내에서도 제가 루키(신인)고, 경력도 없고 해서 무시할 수 있으니까. 당원을 많이 모아오면 내가 하고자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테니까 열심히 하라 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10월 후보가 되면 내년 5월 본선이다. 자신 있나?
“네. 자신있어요”
어떻게 자신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지난 주총선에서 NDP가 700표 차이로 졌어요. 굉장히 가깝게 졌어요. 헤리 블로이(Bloy)주의원(자유당 소속)이 쌓아놓은 덕도 있고..... 자유당이 여당이었지만 (신민당 입장에서는) 성적표가 좋았어요. 지역 내 신민당 지지세력이 있고, 또 제 인맥 중에, 지난 5~6년간 만난 분들 중에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여기저기 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요. 지금은 제가 정치에 나섰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본선에 들어가면 제가 더 알려지겠지요. 그럴 때 정말 도와주실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자신이 있어요”
그럼 그간 쌓아온 인맥의 힘을 믿는다라고 할 수 있나?
“쌓아왔다는 표현은 좀 거부감이 있네요. 제가 써먹기 위해 쌓은 듯한 느낌이 있으니까요. 이어졌다고 하고 싶네요. 연락이 안되던 40대 후반 중국계 학생이 있었어요. 4년 전에 가르쳤었지요. 어떻게 알았는지. 이 분이 엄마, 아빠 앞에 덥썩 나타나셔서 당원 가입서 한 8장을 가져왔데요. 사실 제 선거구가 아니라 다른 선거구에 사는 분들 입당원서를 가져와서.... (웃음) 그렇지만 그 마음이 정말 고맙잖아요. 이름도 잘 기억 안나지만... 이렇게 저를 위해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만약 MLA가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한인과 연결될 수밖에 없을텐데.
“네. 그래서 교민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어떤 분은 제가 딸 같고, 어떤 분은 동생이나 누나 같을 거에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무조건 찍어줄께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것이 좋은 분들은 그렇게 해주시구요. 그런데 자유당이나 보수당 지지자이신 분은 부담갖지 마시고, 지지하는 당에서 좋은 후보가 나올 수 있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왼손 같으면, 저 도와주실 분들은 도와주시고, 오른손이 좋은 분은, 예쁜 오른손이 나오도록, 그렇게 부담갖지 않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제 주변에는 정말 가족처럼 친밀한 여러 민족 출신의 캐나다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올해에 지원할 수 있는 사항이 10개다 하면 각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들어 그중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골라 일할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한인 사회 요구 중에 하나를 할 수도 있지만 못할 수도 있죠”
민족적 요구가 아니라 지역사회 요구에 따라 일하겠다는 뜻인가?
“네 그렇게 하고 싶고 해야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있어요. 한국분들 프로젝트 중에 정말 해야할 것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교민사회에 중요한 프로젝트라지만,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 일에 대해 제 개인 돈을 기부할 수는 있어도 나랏돈을 쓸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교민사회에 핏줄이 아니라 정치적 요구에 따라서 지지해달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네, 교민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제가 같은 혈육이라서 좋게 봐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지지는 민족적 아이덴티티보다 각자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해주셨으면 해요. 이렇게 얘기해도 나이드신 어르신 중에는 내리 사랑으로 고맙게 정치적 신념과 반해도 지지해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사랑을 고맙게 받지만, 제가 정치적으로 돌려드릴 수는 없는 사랑이에요. 그래도 딸내미 같아서 도와주신다면 짝사랑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웃음) 제가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캐나다에서 정치하는 이들 중 하나가 한국인이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예쁘게 하겠지요.”
만약 NDP가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치 커리어로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
“이런 말하면... 또 캠페인 메니저한테 혼날 것 같은데요. (웃음). 어.... 아까 말한 대로 보호하고 싶은 사회 제도가 있잖아요. 학비동결과 공공보건제도가 없었으면 저나 부모님의 삶은 지금처럼 행복하고 편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 제도의 산물이에요. 그래서 그 제도를 지키고 싶어요.
정치가로서 어느 지위보다는... 우선 정계에 들어가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부터 봐야겠어요.
한인 사회를 보면, 특히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40대, 식당에서 일하는 50대 아줌마를 보면 고생한 엄마 생각이 나요. 또 탁아소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정말 좋은 교육환경에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엄마같은 분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신교수가 원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정치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어요. 왼손과 오른손이 사회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대립이 아니라 사회가 부족한 부분을 각자가 채워나갔으면 해요. 저는 왼손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나가고 싶어요. 자유당이나 보수당에 속한 분들은 적이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해요. 내가 못보는 다른세상, 또는 현실의 뒤통수를 보여줄 수 있는 분들이죠.”
사회는 제한적인 자원과 시간 때문에 100가지 요구 중 몇 가지 밖에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고 선택을 위해 싸움도 일어날텐데... 그 부분을 피해가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싸울 자신은 있어요. 정책가지고 싸우지만, 인신공격을 할 생각은 없어요. 처음에 논쟁을 하는 분위기를 접하면 어렵기는 하겠지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인신공격도 나올 수 있다.
“괜찮아요! 저는 꿋꿋해요. 같이 욕 안하고 저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 교수의 우리말 말투는 수더분하다. 말투에 집중해 들으면 그녀의 말속에 있는 통뼈를 느끼지 못한다. 인터뷰 내용에 집중하면서 루키라지만, 당당한 정치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초심 그대로라면 내년 5월에 꽤 괜찮은 한국계 캐나다 정치인의 성공을 응원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신재경 밴쿠버 커뮤니티 칼리지 교수와 인터뷰를 하기로 작정 했을 때부터 마음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앞서 출사표를 던졌던 한인 정치인의 연속적인 낙마를 보며 아쉬웠고 그래서 기자 이전에 한인 유권자로 할 말도 있었다.
BC주 유권자의 대표 자리에 출사표를 던져놓고 정작 한인사회 활동만 하는 듯 보인 신교수의 행보가 낙선행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여러 사례를 봤을 때 한인사회는 당선에 조력을 할 수는 있어도, 주력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인의 힘으로 주의원에 당선됐다고 해도 그 다음이 문제일 듯 싶었다. 신 교수가 캐나다 사회나 일반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에 대한, 한인사회의 소원수리처가 된다면,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된다. 다문화사회 캐나다에서 그런 공격의 빌미를 주면 결국 한인사회에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
신교수가 출사표를 던진 내년 5월 BC주 총선은 선거구의 민의를 대변할 사람을 뽑기 위한 일이지 중국의 전인대처럼 민족 대표자를 뽑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한인사회에 인사를 시작한 신교수를 놓고 혹자는 마치 민족 대표자처럼 치켜세우며 소원을 나열하는 모습은 불안했다. 그 소원 목록에 초선 주의원(MLA)이 할 일 또는 할 수있는 범위에서 벗어난 사항이 적잖게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신교수는 그 부분을 잘 걸러서 듣고 있을까? 이런 저런 기우를 품고 지난 21일 신교수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신 교수는 캐나다의 정치인을 소원하고 있었다. BC주민, 특히 버나비-로히드 선거구민을 대표하는 주의원(MLA)을 원했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의사와 교수가 되기까지 노력한 인생 얘기는 많이 들었다. 정치인 신재경씨가 알고 싶다. 학력이나 직업을 보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왜 불편한 정치인을 택했나?
“(제 직업이) 편안한 것은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스물 일곱살까지 공부하면서 친구들이 시집가고, 차사고 집사고 하는 5년을 구경하며 살다가, 드디어 (서른 넘어) 내 차례다 이러고 있는데, 정치를 할려니까... 반년은 머뭇거렸어요. 저는 앞서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해요. 한 십년 동안 얼마나 돈을 모을 계획을 다 세웠는데, 정치인을 하면 숫자가 크게 달라져요. 부모님께 용돈도 제대로 못드려요. 그래서 꿀꿀했는데...”
그런데도 굳이 정치를 하겠다는 뜻은?
“제 욕심에서 하는 것이죠.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하겠다는 둥, 그런 큰 그릇은 아니에요.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최근에 알았어요. 캐나다란 나라가 어느 정도 좋은 나라니까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끄고 있어도 잘돌아가는구나. 사람들이 크게 불평할 것이 없으니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다른 나라는 기본이 잘못되니까 시위나 쿠테타도 벌어집니다. 캐나다는 가만히 두어도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좀 바뀌었어요. 캐나다는 30~50년대 열심히 뛰어오신 분들 덕분에 좋은 사회보장제도가 있지만 이제는 (사회 제도가) 미국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보건과 교육 분야에 있어 보니, 보건이 분야가 민영화될 가능성이 간당간당하게 보여요. 교육도, 제가 10년 전에 UBC 다닐 때 ‘만불 장학생’이란 게 있었어요. 1만 달러면 4년 학비가 되니까. 1년에 2500달러란 얘긴데, 국경너머 워싱턴주립대만 가도 1년에 2만달러는 들잖아요. 그런데 최근 캐나다도 학비가 꾸준히 올랐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하니까...”
인터뷰 말미에 신재경씨는 자신의 욕심의 정체를 도전의식이라고 밝혔다. “앞에 바위가 있고 손에는 계란이 있어요. 바위가 깨지지 않더라도 그래도 손에 있는 것을 힘껏 던져봐야 겠다고 믿어요.” 이런 도전에 대한 욕심이 스스로를 의사로, 교수로, 이제는 정치로 신 교수를 이끌었다고 했다.
그래서 신민당(NDP)인가?
“네. 그래서 NDP입니다. 이런 말 하면 당에 혼날 수도 있지만, 사실 마음에 드는 백점 정당은 없어요. 다들 장단이 있는데... 저는 자유경제와 자본주의가 경제에 중요하다고 보지만, 그것 자체가 주된 관심사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기본적인 필요(basic needs)해소에 관심이 있어요. 중·저 소득층의 주요 관심사는 교육과 보건 이잖아요. 몸이 아플 때 약 못먹는다는 것,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 못한다는 것. 돈이 없어서 그런 걸 못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에요.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런 제도 자체가 없으면 개인이 할 수가 없지요. 이런 제도를 멋지게 잘만들겠다기보다는 제가 나서서 보호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에서 보니 NDP랑 같이 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 BC NDP 집권 당시 신 교수가 언급한 대학 학비 동결과 의약보험 확대 등 공공보건 강화 정책을 추진했다.
진보적인 가치관은 당에 소속되기 전 부터 있었나?
“1년 전만 해도 정치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때까지 가지고 온 생각, 가치관을 이런 저런 정당과 맞춰보니 NDP가 맞아요. 솔직히 NDP가 좌파(left)라면, 좀 더 중도 좌파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 저랑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중도 우파도 있지만, 중도 우파는 저와는 거리가 있어서 NDP로 가게 됐습니다”
중도 좌파라면 한인 사회가 지원해온 색깔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은 없나?
“한인이 이 당 저 당 나눠서 지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NDP의 방향이 도와줄 수 있는 인구는 전체 50~60% 정도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NDP가 60%의 지지로 정부를 구성한다면, 나머지 40%를 대변해줄 정당도 필요하지요. 만약 NDP를 지원하지 않는 한인이 있다면, 자유당이나 보수당에서 좋은 정치인이 나오도록 열심히 지지해 주셔야 할 겁니다. 그래서 좋은 정치인이 나와서 좌우가 지지자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겠지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뜻인가?
“맞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좌우를 적대 관계로 보는 듯 해요. 선거운동 하면서 일부 친구분들이 와서 ‘미안하다. 너와 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재밌는게... 적이 아니에요. 제가 왼손이면 오른손이 필요한데... 왼손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한국 분들은 저에게 그런 점을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마운데...”
신교수가 지향하는 것은 한민족 정치인인가 아니면 캐나다의 정치인인가?
“저는 캐나다의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원래 뿌리(grass root)가 캐나다인이에요. 제가 10살 때 왔을 때만 해도 한인사회는 참 작았어요. 비디오 가게가 처음 생겨서 신기했고, 한국 가면 오뎅이나 떡볶이를 먹고 싶어한 한인이지요.
그러나 저는 한인 사회보다는 여기 복합문화 사회에 어울려서 살아왔어요. 저를 지원해주시는 분들은 여러 국가 출신에 여러 민족이에요. 그런 분들도 있고, 또 저의 아이덴티티는 캐나다인이에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애국심에 불타는 분 중에는 속상해할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한인사회에만 의존해 선거 운동을 할 생각인가?
“처음부터 한인사회에 인맥이 아예 없었어요. 작년 11월 정도에 버나비 시장(데릭 코리건)께서 한인사회를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서 한인 사회를 접했고, 요근래 한인사회가 크다는 걸 느끼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반가워요. 차세대 분도 멋있는 분들이 많고요. 그러나 캠페인 자체는 캐나다인 중심입니다.”
캐나다인 중심으로 캠페인할 자신이 있는 것인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만난 학생이나 동료 인맥이 2000명이 넘어요. 사회 생활 한지는 얼마 안되는데...사실 쌓아온 인맥이 한인사회는 오히려 없어요. 너무 없으니까, 당에 계신 분이 오히려 한인 사회에 길을 터주고 인맥을 쌓도록 도와주고 계세요”
현재까지 한인 정치후보는 한인으로 나와 캐나다 사회에 도전하는 형국이었다. 도전 뱡항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저는 오히려 반대에요. 캐나다 사회에서만 활동해서 한인사회에 조금 더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지요. 이때까지 (신민당을 지지하는) 아시아계는 주로 중국계가 많았어요. 한인은 모집을 했더니 단 다섯분이 가입했지요. 그래서 지인 분께 사실 징징댔어요. 당에서도 … 아무리 그래도 한인이니까 하는 기대가 있잖아요. 기자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대놓고 가입을 독려해주시고... 그리고 부모님을 유람선 관광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전단을 들고 직접 나서서 모집을 하셔서 그래서 이제 100명 가까이 한인이 가입하셨어요”
당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당원 몇 명의 지지가 필요한가?
“잘은 모르지만 200~300명이 모이면 완전한 공천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에서는 1000명 데려오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캐나다인 네트워크는 1000명은 되요. 그러나 막상 찾아보면 (선거구에서) 한 두 블럭씩 벗어나 살고 있더라구요. 이대로라면 옆 선거구에 출마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한인 분들이 막판에 지원해 주셔서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러나 저의 (지지) 근간은 캐나다인 주류에 있어요. ”
NDP 후보 확정은 언제 되나?
“10월 초에요. 10월 초에 누구를 공천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당원은 최소 90일 이상 당원이여야 해서 6월말이면 모집은 끝나요. 그런데, 당 내에서도 경쟁이 있잖아요? 여기서 당원이 많은 사람이 유리해요. 당 내에서도 제가 루키(신인)고, 경력도 없고 해서 무시할 수 있으니까. 당원을 많이 모아오면 내가 하고자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테니까 열심히 하라 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10월 후보가 되면 내년 5월 본선이다. 자신 있나?
“네. 자신있어요”
어떻게 자신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지난 주총선에서 NDP가 700표 차이로 졌어요. 굉장히 가깝게 졌어요. 헤리 블로이(Bloy)주의원(자유당 소속)이 쌓아놓은 덕도 있고..... 자유당이 여당이었지만 (신민당 입장에서는) 성적표가 좋았어요. 지역 내 신민당 지지세력이 있고, 또 제 인맥 중에, 지난 5~6년간 만난 분들 중에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여기저기 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요. 지금은 제가 정치에 나섰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본선에 들어가면 제가 더 알려지겠지요. 그럴 때 정말 도와주실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자신이 있어요”
그럼 그간 쌓아온 인맥의 힘을 믿는다라고 할 수 있나?
“쌓아왔다는 표현은 좀 거부감이 있네요. 제가 써먹기 위해 쌓은 듯한 느낌이 있으니까요. 이어졌다고 하고 싶네요. 연락이 안되던 40대 후반 중국계 학생이 있었어요. 4년 전에 가르쳤었지요. 어떻게 알았는지. 이 분이 엄마, 아빠 앞에 덥썩 나타나셔서 당원 가입서 한 8장을 가져왔데요. 사실 제 선거구가 아니라 다른 선거구에 사는 분들 입당원서를 가져와서.... (웃음) 그렇지만 그 마음이 정말 고맙잖아요. 이름도 잘 기억 안나지만... 이렇게 저를 위해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만약 MLA가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한인과 연결될 수밖에 없을텐데.
“네. 그래서 교민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어떤 분은 제가 딸 같고, 어떤 분은 동생이나 누나 같을 거에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무조건 찍어줄께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것이 좋은 분들은 그렇게 해주시구요. 그런데 자유당이나 보수당 지지자이신 분은 부담갖지 마시고, 지지하는 당에서 좋은 후보가 나올 수 있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왼손 같으면, 저 도와주실 분들은 도와주시고, 오른손이 좋은 분은, 예쁜 오른손이 나오도록, 그렇게 부담갖지 않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제 주변에는 정말 가족처럼 친밀한 여러 민족 출신의 캐나다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올해에 지원할 수 있는 사항이 10개다 하면 각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들어 그중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골라 일할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한인 사회 요구 중에 하나를 할 수도 있지만 못할 수도 있죠”
민족적 요구가 아니라 지역사회 요구에 따라 일하겠다는 뜻인가?
“네 그렇게 하고 싶고 해야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있어요. 한국분들 프로젝트 중에 정말 해야할 것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교민사회에 중요한 프로젝트라지만,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 일에 대해 제 개인 돈을 기부할 수는 있어도 나랏돈을 쓸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교민사회에 핏줄이 아니라 정치적 요구에 따라서 지지해달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네, 교민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제가 같은 혈육이라서 좋게 봐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지지는 민족적 아이덴티티보다 각자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해주셨으면 해요. 이렇게 얘기해도 나이드신 어르신 중에는 내리 사랑으로 고맙게 정치적 신념과 반해도 지지해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사랑을 고맙게 받지만, 제가 정치적으로 돌려드릴 수는 없는 사랑이에요. 그래도 딸내미 같아서 도와주신다면 짝사랑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웃음) 제가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캐나다에서 정치하는 이들 중 하나가 한국인이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예쁘게 하겠지요.”
만약 NDP가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치 커리어로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
“이런 말하면... 또 캠페인 메니저한테 혼날 것 같은데요. (웃음). 어.... 아까 말한 대로 보호하고 싶은 사회 제도가 있잖아요. 학비동결과 공공보건제도가 없었으면 저나 부모님의 삶은 지금처럼 행복하고 편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 제도의 산물이에요. 그래서 그 제도를 지키고 싶어요.
정치가로서 어느 지위보다는... 우선 정계에 들어가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부터 봐야겠어요.
한인 사회를 보면, 특히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40대, 식당에서 일하는 50대 아줌마를 보면 고생한 엄마 생각이 나요. 또 탁아소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정말 좋은 교육환경에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엄마같은 분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신교수가 원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정치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어요. 왼손과 오른손이 사회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대립이 아니라 사회가 부족한 부분을 각자가 채워나갔으면 해요. 저는 왼손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나가고 싶어요. 자유당이나 보수당에 속한 분들은 적이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해요. 내가 못보는 다른세상, 또는 현실의 뒤통수를 보여줄 수 있는 분들이죠.”
사회는 제한적인 자원과 시간 때문에 100가지 요구 중 몇 가지 밖에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고 선택을 위해 싸움도 일어날텐데... 그 부분을 피해가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싸울 자신은 있어요. 정책가지고 싸우지만, 인신공격을 할 생각은 없어요. 처음에 논쟁을 하는 분위기를 접하면 어렵기는 하겠지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인신공격도 나올 수 있다.
“괜찮아요! 저는 꿋꿋해요. 같이 욕 안하고 저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 교수의 우리말 말투는 수더분하다. 말투에 집중해 들으면 그녀의 말속에 있는 통뼈를 느끼지 못한다. 인터뷰 내용에 집중하면서 루키라지만, 당당한 정치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초심 그대로라면 내년 5월에 꽤 괜찮은 한국계 캐나다 정치인의 성공을 응원해 볼 수 있겠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권민수 기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한인 2·3세 한국 역사 알아야” 加참전용사
2015.03.20 (금)
한인 참전용사 6·25 수기 정리해 출판한 밥 오릭씨
“저는 한인 참전용사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어릴 때 참전하게 된 것이고…” “우리말을 모르는 한인 후대에게 6·25와 우리의 경험을 역사로 전할 수 있게 정말 큰...
|
“내가 밴쿠버를 마음에 담은 이유”
2015.03.06 (금)
피아니스트 김지윤,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밴쿠버를 연주하다
음악은 즐겁다. 배움의 깊이와는 그닥 상관 없이 음의 높낮이에, 박의 빠르고 늦음에 몸이 알아서 반응해 주니 말이다. 이 단순한, 그래서 더욱 끌리는 음악의 존재 이유를 젊은...
|
“캐나다에서 시작된 나의 인생 2막에 대하여”
2015.02.27 (금)
시인 권천학씨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 <위스키 성지여행>에서 삶이 반짝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 혹은 그 비결을 독자들에게 살짝 흘렸다. “생굴에다 싱글 몰트를 쪼로록 끼얹어서는...
|
직접 만난 캐나다, 이것이 달랐다
2015.01.23 (금)
이화여대 약대생 김태연, 최지윤씨
직접 접한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강의실에서 배운 것과는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현장에 있다 보니 책 몇 권, 혹은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상대의 장점이나 단점이 더욱 선명하게...
|
밴쿠버를 선택한 나는 “참 행복한 사람”
2015.01.16 (금)
노래 <밴쿠버> 발표한 김성환씨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장래 희망은 자연스레 가수로 정해져 있었고, 기타줄을 제법 튕기게 된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는 자그마한 카페 무대에도...
|
“석화된 북한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회로 봐야 합니다”
2015.01.01 (목)
꽃제비·탈북자·한반도인 그리고 캐나다 의원 인턴보좌관 이성주씨
사회가 구성원에게 정당한 보호와 대우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은 종말이나 대재앙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서구 사회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그 상황이 실제한다고 보기보다는...
|
밴쿠버 한인 골퍼 큐스쿨 통과, LPGA 전대회 출전권을 획득하다
2014.12.19 (금)
전미 대학선수 랭킹 1위 김수빈 큐스쿨 통과
“피가 마른다”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출전권 확보를 놓고 벌이는 대회, 아니 정확히 묘사하자면 전투에 훨씬 더 가까운 “큐스쿨”....
|
독점 시장에 도전 “최고의 게맛살을 싸게 팔 겁니다”
2014.12.11 (목)
퍼시픽 선라이즈 푸드 대표 백성렬씨
"북미에서 밴쿠버에 일식당이 가장 많아요. 서양인 입맛에 일식이 잘 맞거든요. 잘 맞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캘리포니아롤 때문이에요."10일 오전 11시 메이플 리지에서 만난 백성렬 퍼시픽...
|
영주권·시민권 준비, 언어 능력 증명이 막막했다면
2014.12.08 (월)
생소하지만 친숙한 영어 평가 시험 ‘셀핍’
언어 능력 증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초청이민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경제 이민 카테고리에서 언어 능력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는 시민권 신청에도...
|
“한반도 통일, 캐나다에도 이득이다”
2014.11.21 (금)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 밴쿠버 방문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이 20일 밴쿠버를 방문했다. 이날부터 22일까지 “통일 우리의 희망, 한반도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2014 미주 청년컨퍼런스>에...
|
후회한 적 있나요? 이민 온 것 말이에요
2014.11.14 (금)
책 <이민자의 에세이, 잃어버린 여름날의 사모> 펴낸 장성순씨
이민자라면, 범위를 조금 더 좁혀 오래된 이민자라면, 누군가로부터 한번쯤은 듣게 되는 질문이 반드시 있다.“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태어난 곳을 떠나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된 것...
|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2014.11.13 (목)
[한국] 지난 11일 오전 11시 정각.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사이렌과 총성이 울리자 1200여명이 묵념했다. 같은 시각 미국·캐나다·터키 등 20개국에서도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
자전거로 세계일주, 83년생 동갑내기 이성종·손지현 부부
2014.10.31 (금)
“우리는 시간 부자, 지구별을 탐사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한반도 남단에서 “대~한민국”이 가슴 벅차게 연호되던 2002년의 일이었다. 이후 2년 동안 이 둘에게 서로는 그저 아는 남자, 아는 여자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
“BC주의 미래는 천연자원에 달려 있습니다”
2014.10.30 (목)
스튜어트 뮤어 리소스 웍스 대표 이사
“천연자원산업이 BC주 지역경제 활성화를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천연자원산업 발전은 장기로 진행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투자자뿐 아니라 시민들이 천연자원에 대해 좀 더 정확히...
|
“노벨상 받으려면…작은 기업에 가서 미친 듯 연구하라”
2014.10.21 (화)
노벨물리학賞수상자 나카무라 슈지 교수 인터뷰
[한국]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기업에 들어간 덕분이다. 대기업에 들어갔다면 그저 그런 샐러리맨이 됐을 것이다.”청색 LED(발광다이오드)를 발명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
“음대 진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2014.10.10 (금)
10월 18일 첫 독주회 여는 한인 1.5세 피아니스트 한여울
오는 10월 18일 한인 1.5세대 한여울씨(영어명 모니카 한·1990년생)의 피아노 독주 무대가 마련된다. 지난 2월 있었던 밴쿠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콘체르토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
“사람들이 세상과 교감하길 바라는 마음에 만든 영화”
2014.10.02 (목)
단편 애니메이션 ‘귀머거리와 바람’의 황규일 감독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이 있다. 그의 유일한 벗은 함께 사는 강아지뿐이다. 항상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소년은 바람에 날린 모형 비행기를 쫓아 집을 나선다. 그리고 세상과 마주한다....
|
“강한 소수의 힘, 어디에서 찾을까?”
2014.09.26 (금)
우리 모임, 유권자연합회(KCVF) 최강일 회장
모자이크 사회로 불리는 캐나다에서 “코리안”이라는 조각이 차지하는 면적은 그리 넓지 않다. 범위를 밴쿠버로 한정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밴쿠버의 한인 인구 비중은 2%에...
|
“한국전 참전용사의 헌신,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
2014.09.12 (금)
줄리안 판티노 캐나다 보훈부 장관
“한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후대에서도 기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 10일 버나비 센트럴 파크 내 평화의 사도비를 방문해 헌화한 줄리안...
|
“우리문화 알리자고 이민 와서, 계획은 바뀌었어도 의지는 그대로에요”
2014.08.22 (금)
한국 정부 지정 해외명예전승자 한창현 한국전통문화예술원 원장
밴쿠버 거리에 문화 관련 행진이 있으면 어김없이 한국의 장단을 울리며 공연하는 사물놀이패가 있다. 십중팔구는 한국전통문화예술원의 한창현 원장이 이끄는 놀이패다. 한창현 원장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