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부모 따라 밟은 낯선 땅, 외로움을 달래준 내 친구 바이올린”

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5-18 09:02

글렌 구드 스쿨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된 김제영양

부모의 손에 이끌려 캐나다와 조우한 아홉 살 소녀에게 모든 것이 낯설었다. 환경도, 언어도, 사람도 모두 예전에 알던 것과 달랐다. 여기에 소심한 성격이 더해져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그의 이민 생활에 가장 먼저 친구가 되자며 손을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바이올린이었다.

“아홉 살 때였는데,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처음이었거든요.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것은…. 음색이라고 해야 하나요? 활이 바이올린 현을 오가며 나는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바이올린을 배워보고 싶다고 부모님께 졸랐죠.”

김제영(Jessy Kim·18)양과 바이올린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소심한 성격 탓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에게 바이올린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훌륭한 친구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바이올린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는지 사춘기에도 방황할 겨를 조차 없이 바삐 지냈다.

“사회성이 부족했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어렸을 때에는 말수가 적었어요. 그래서 친구도 없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거든요. 바이올린이 없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바이올린 연습을 했어요. 바이올린은 내게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온 친구 같은 존재죠”

실력이 늘수록 자신감도 생겼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습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 연습의 성과는 크고 작은 대회의 우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BC주 음악 경연·스트링 부문(National Strings Class in BC Provincial Music Competition)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어진 캐나다 전국 음악 경연대회(National Music Competition of Canada)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혼자 서는 경연보다 함께 서는 무대가 좋은 그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묻자 그녀는 지난해 공연을 떠올렸다.





“지난해 밴쿠버 청소년 심포니 오케스트라(Vancouver Youth Symphony Orchestra: VYSO)가주최하는 시니어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날 밴쿠버 청소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어요. 3중주나 4중주는 익숙했지만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선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무대 오르기 전 정말 많이 떨렸어요. 그리고 연주가 끝나자 쏟아지는 박수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즐거움을 느꼈죠. 이후에는 그 즐거움을 계속 머리에 두고 연습을 한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오랜 시간 하나의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슬럼프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김 양에게도 슬럼프가 찾아 올 때가 있다고. 그는 그럴 때마다 과거에 촬영했던 비디오를 하나씩 꺼내 본다고 했다.

“연습은 꾸준히 하는데 실력이 원하는 만큼 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내가 또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바이올린을 늦게 시작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면 연습을 잠시 멈추고, 예전에 녹화했던 연주 모습을 보는 습관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주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나도 이렇게 많이 나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힘이 나거든요. ”

김 양은 오는 9월 토론토에 있는 음악 명문 학교인 글렌 구드 스쿨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여느 또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대학 생활의 기대와 설레임을 감추지 않았다.

“대학교에 진학하면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아요.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3중주나 4중주를 구성해 연습하고 작은 공연도 하고싶고, 오케스트라와 협연 기회도 잡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연주자를 따라 하는 연주보다 저만의 연주에 시간을 더 쏟을 거에요. 저만의 연주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거죠.”
 
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한인 참전용사 6·25 수기 정리해 출판한 밥 오릭씨
“저는 한인 참전용사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어릴 때 참전하게 된 것이고…”  “우리말을 모르는 한인 후대에게 6·25와 우리의 경험을 역사로 전할 수 있게 정말 큰...
피아니스트 김지윤,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밴쿠버를 연주하다
음악은 즐겁다. 배움의 깊이와는 그닥 상관 없이 음의 높낮이에, 박의 빠르고 늦음에 몸이 알아서 반응해 주니 말이다. 이 단순한, 그래서 더욱 끌리는 음악의 존재 이유를  젊은...
시인 권천학씨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 <위스키 성지여행>에서 삶이 반짝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 혹은 그 비결을 독자들에게 살짝 흘렸다. “생굴에다 싱글 몰트를 쪼로록 끼얹어서는...
이화여대 약대생 김태연, 최지윤씨
직접 접한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강의실에서 배운 것과는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현장에 있다 보니 책 몇 권, 혹은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상대의 장점이나 단점이 더욱 선명하게...
노래 <밴쿠버> 발표한 김성환씨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장래 희망은 자연스레 가수로 정해져 있었고, 기타줄을 제법 튕기게 된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는 자그마한 카페 무대에도...
꽃제비·탈북자·한반도인 그리고 캐나다 의원 인턴보좌관 이성주씨
사회가 구성원에게 정당한 보호와 대우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은 종말이나 대재앙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서구 사회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그 상황이 실제한다고 보기보다는...
전미 대학선수 랭킹 1위 김수빈 큐스쿨 통과
“피가 마른다”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출전권 확보를 놓고 벌이는 대회, 아니 정확히 묘사하자면 전투에 훨씬 더 가까운 “큐스쿨”....
퍼시픽 선라이즈 푸드 대표 백성렬씨
"북미에서 밴쿠버에 일식당이 가장 많아요. 서양인 입맛에 일식이 잘 맞거든요. 잘 맞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캘리포니아롤 때문이에요."10일 오전 11시 메이플 리지에서 만난 백성렬 퍼시픽...
생소하지만 친숙한 영어 평가 시험 ‘셀핍’
언어 능력 증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초청이민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경제 이민 카테고리에서 언어 능력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는 시민권 신청에도...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 밴쿠버 방문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이 20일 밴쿠버를 방문했다. 이날부터 22일까지 “통일 우리의 희망, 한반도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2014 미주 청년컨퍼런스>에...
책 <이민자의 에세이, 잃어버린 여름날의 사모> 펴낸 장성순씨
이민자라면, 범위를 조금 더 좁혀 오래된 이민자라면, 누군가로부터 한번쯤은 듣게 되는 질문이 반드시 있다.“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태어난 곳을 떠나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된 것...
[한국] 지난 11일 오전 11시 정각.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사이렌과 총성이 울리자 1200여명이 묵념했다. 같은 시각 미국·캐나다·터키 등 20개국에서도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우리는 시간 부자, 지구별을 탐사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한반도 남단에서 “대~한민국”이 가슴 벅차게 연호되던 2002년의 일이었다. 이후 2년 동안 이 둘에게 서로는 그저 아는 남자, 아는 여자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스튜어트 뮤어 리소스 웍스 대표 이사
“천연자원산업이 BC주 지역경제 활성화를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천연자원산업 발전은 장기로 진행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투자자뿐 아니라 시민들이 천연자원에 대해 좀 더 정확히...
노벨물리학賞수상자 나카무라 슈지 교수 인터뷰
[한국]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기업에 들어간 덕분이다. 대기업에 들어갔다면 그저 그런 샐러리맨이 됐을 것이다.”청색 LED(발광다이오드)를 발명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10월 18일 첫 독주회 여는 한인 1.5세 피아니스트 한여울
오는 10월 18일 한인 1.5세대 한여울씨(영어명 모니카 한·1990년생)의 피아노 독주 무대가 마련된다. 지난 2월 있었던 밴쿠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콘체르토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단편 애니메이션 ‘귀머거리와 바람’의 황규일 감독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이 있다. 그의 유일한 벗은 함께 사는 강아지뿐이다. 항상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소년은 바람에 날린 모형 비행기를 쫓아 집을 나선다. 그리고 세상과 마주한다....
우리 모임, 유권자연합회(KCVF) 최강일 회장
모자이크 사회로 불리는 캐나다에서 “코리안”이라는 조각이 차지하는 면적은 그리 넓지 않다. 범위를 밴쿠버로 한정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밴쿠버의 한인 인구 비중은 2%에...
줄리안 판티노 캐나다 보훈부 장관
“한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후대에서도 기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 10일 버나비 센트럴 파크 내 평화의 사도비를 방문해 헌화한 줄리안...
한국 정부 지정 해외명예전승자 한창현 한국전통문화예술원 원장
밴쿠버 거리에 문화 관련 행진이 있으면 어김없이 한국의 장단을 울리며 공연하는 사물놀이패가 있다. 십중팔구는 한국전통문화예술원의 한창현 원장이 이끄는 놀이패다. 한창현 원장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