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양념 속에 가려진 원재료의 맛, 이젠 느껴보세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6-17 13:26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0-한국전통예술원 한창현 원장
익숙했던 요리에서 원재료의 맛을 찾아내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조미료나 양념의 향이 지나치게 강한 탓이다. 값비싼 참치 뱃살과 그저 흔한 기름치가 미각 세포 내에 동일한 맛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초고추장이나 겨자의 매콤함 때문이다. 도가니탕과 설렁탕의 국물맛이 거의 같게 느껴지는 배경에는 다대기가 있다.

이처럼 원재료의 맛을 숨겨버린 양념이 식탁의 주인공 역을 꿰찰 때도 사람들은 별다른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 자극적이어서다. 심할 경우엔 원재료는 아예 “지나가는 사람 1”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래의 맛을 추구했던 사람은 아마 낭패감이 느껴질 것이다.



“매번 공연 때마다 진수만을 소개해 왔다”


조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연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비단 요리의 세계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예술계에서는 각 배역들의 경계가 더욱 모호하다. 크로스오버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실험이 시도되고, 이 결과 만들어진 퓨전이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국전통예술원의 한창현 원장(사진)은 “멋있다. (변형된 예술이) 수백년을 이어간다면 전통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 같은 변형이 우리 세대의 전통으로 포장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전통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지는 화려함은 양념일 뿐, 전통이라는 원재료를 훼손해선 안된다는 게 한 원장의 생각처럼 보였다. 그는 한민족만이 낼 수 있는 원재료의 맛, 즉 전통예술을 이곳 밴쿠버 사회에 선보이는데 지난 16년 세월을 보냈다. 오는 29일(수) 공연을 앞두고 있는 한 원장과 마주했다.





사진 제공=한창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보통은 2년에 한번꼴로 정기 공연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요.
맞아요. 올 한해는 공연을 쉬고, 캐나다 건국 150주년인 내년에 축하의 의미로 큰잔치를 벌일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TD은행으로부터 후원을 받게 돼서 또다시 벅찬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개인이 기업체의 후원을 받는 것, 이거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그렇지요. 저도 이곳저곳에 여러 차례 후원 요청을 해봤고, 또 그만큼 거절도 당했으니까요. 특히 단체가 아닌 저 같은 개인이 기업체 후원을 받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16년을 한결 같이 전통만을 고수해 오다 보니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더군요. 한창현이의 공연은 뭔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저로선 뿌듯한 일입니다.

TD은행도 한 원장을 계속해서 지켜봐 왔다는 거군요.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제가 한인 행사할 때마다 “길놀이”를 도맡아 했고, 정기 공연도 나름 꾸준히 해왔는데 그 모든 활동을 은행 측에서 좋게 봐준 거겠지요.
 
TD은행에서 큰 도움을 줬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공연을 꾸리기가 버거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공연 경비 전체를 후원받는 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경비의 일부는 제가 발로 뛰어서 해결해야지요. 그게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올해에는 준비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데다 예산도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지난해보다는 작은 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관객들은 분명 만족하실 거라 믿고 있어요.

매 공연 때마다 한국의 전통문화, 그 진수를 이곳 밴쿠버 사회에 소개해 왔습니다. 덕분에 인간문화재의 줄타기도, 최고 수준의 사물놀이와 산대놀이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무엇을 선보일 예정입니까?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8호인 진도북춤이 29일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이를 위해 진도북춤 보존회 분들을 초대하게 됐는데 좀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요.

왜죠?
제대로 된 진도북춤을 보여주려면 적어도 여섯 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해요. 이 규모의 공연팀을 초대하는 건 예산 문제상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도 진도북춤을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메인 요리가 진도북춤만은 아니겠지요.
한국무용가인 김영주씨가 저와 함께 길놀이를 할 예정이고 한국전통예술원은 상모놀이와 사물놀이 등을 준비합니다. 이 뿐 아니라 타문화권, 예를 들어 원주민, 아프리카, 일본, 중국 등의 고유 문화를 접할 기회도 마련했습니다.

한국의 전통만을 고집하는, 그런 공연은 아니라는 얘기네요.
한국과 다른 나라의 문화를 한그릇에 버무려 놓은 게 아니라 각 나라의 전통을 하나하나씩 맛볼 수 있는 공연이 될 겁니다. 

타문화 예술인과 계속해서 교류해 온 결과겠군요.
그네들이 공연을 할 때 저를 초대했으니, 저도 일종의 답례로 그들을 제 무대에 세우는 거죠. 그래서 이번 공연 제목을 “인터내서널 전통 북춤 페스티벌”이라고 정했어요. 하지만 주연은 우리 전통이에요. 여러 나라의 전통 문화 중에서 우리것이 역시 멋있구나, 이런 느낌을 관객들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사진 제공=한창현





“우리 것이 고루하다고? 그 흥을 안다면…”


다문화주의 사회에서 우리 문화를 선보일 때 소위 양념을 좀 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까? 누군가에겐 전통이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죠.
한국에서도 전통문화를 표방하는 여러 팀들이 요즘 감각에 맞게 개량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저는 이게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웅장하고 멋있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이 모습대로 수백년이 이어진다면, 개량화된 예술이 전통으로 인정받을 날도 올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보여주기식에 집착하면 곤란하죠. 그런 건 두번 세번 보면  금방 질릴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좋은 것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전통 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리 나쁜 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시도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좋아요, 다 좋아요. 대신 전통이란 이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거죠. 한국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는데 우리 것 같다는 느낌이 없다면 그건 분명 문제겠지요. 좀 더 덧붙이자면 일본이나 중국 사람이 한국 공연을 보고 “아, 이건 우리 거랑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데”라고 생각한다면 어쩌겠어요.

우리 고유의 색만 보여줘도 소위 승산이 있다는 애긴가요?
물론이에요. 그리고 저처럼 계속해서 전통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 문화가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의 북춤이란 건 풍년을 기원하고 흥을 돋구기 위한 거였어요. 우리 조상들은 막걸리 한잔 마시면서 북을 치고 춤을 췄던 거죠. 우리의 이 같은 본래 모습에, 타문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마음을 열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와서까지 왜 전통문화 계승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요?
여긴 다문화주의 사회잖아요. 각 나라 사람들이 저마다의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지요. 이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 사라질 수 있는 거니까요.


한창현 원장은 송파산대놀이(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49호) 인간문화재인 고(故) 한유성 선생의 아들로, 본인 역시 이 분야의 해외명예전승자다. 한 원장은 오는 6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버나비 제임스코완 극장(James Kowan. 6450 Deer Lake Ave.)에서 “인터네셔널 전통 북춤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연다. 한국 전통문화 뿐 아니라 각국의 다양한 북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 한 원장은 “이번 공연 입장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문화 중에서 그래도 우리 것이 가장 멋있네, 라는 얘기가 들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 >


 이번 공연에서 각 나라의 다양한 북춤을 접할 수 있다. 위 아래 사진 제공=한창현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밴쿠버 20년차 현역 트럭커 김유훈씨
한인 트럭커 1세대. 밴쿠버 트럭커 붐의 선봉장. 현역 최고참 트럭커 김유훈씨(73)를 일컫는 수식어다. 그는 1992년 목사 신분으로 밴쿠버에 유학 와 3년, 목회로 5년을 보내고 북미를 오가는...
월넛 그로브 세컨더리 12학년 정지우 학생
랭리 초등학교서 코딩캠프 개최해 큰 호응 얻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코딩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는 코딩의 장점이...
‘Stand With Asians Coalition’ 도리스 마 회장
뿌리 깊은 인종차별, 변화 위해 목소리 내야
지난달 19일 본지는 동양인 반인종차별 단체인 ‘Stand With Asians Coalition’(이하 SWAC)의 설립자 도리스 마(Mah) 회장과 온라인 미팅을 갖고, 팬데믹 이후 심각한 사회 이슈로 떠오른 동양인...
공관을 ‘열린 공간’으로···작은 소리도 경청할 것
차세대 인재 발굴 강조···美 서부 공관과 협업 기대
송해영 신임 주밴쿠버총영사가 지난달 23일부터 공식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송 신임 총영사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국회의원이던 지난 2000년 그의 비서로서 처음 국회에...
한국 17년 베테랑 간호사, RN으로 새 출발
버나비 종합병원 응급실 2년차 김진숙 간호사
▲한림대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아주대 병원 응급실에 입사해 17년간 간호사로 근속했다. 이후 주임 간호사로 승진해 일하다 2013년 5월 해외 간호사의 꿈을 안고 캐나다로 왔다....
노스로드 BIA 최병하 신임회장 인터뷰
한인타운 성장시켜 지역사회 영향력 키워야
지난 10월 버나비 노스로드 비즈니스 협회(North Road BIA, 이하 노스로드 BIA) 이사회는 최병하 주리스 법률공증사무소 공증사를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한인 업주들 목소리, 당국에 직접...
심진택 BC 한인회장 인터뷰
“BC 교민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한인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7월 BC 한인회의 제44대 회장으로 선임된 심진택 회장의 포부다.   7월 1일 닻을 올린 제44대 BC 한인회는 지난...
‘프리미엄 소금’ 인산가 죽염, 캐나다 상륙
“소금에 대한 오해, 인산가 죽염이 풀 것”
한국 죽염의 원조인 동시에 최고의 프리미엄 소금인 인산가 죽염을 드디어 밴쿠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빛과 소금’의 최성훈 대표는 인산가 죽염 본사와 공식적으로...
NDP 소속으로 랭리-앨더그로브 지역구 ‘도전장’
“힘든 싸움이지만 한인사회 발전 위해 끝까지 최선”
이번 연방 총선에서 랭리-앨더그로브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장민우(영어명 마이클) NDP 후보를 만났다.   장 후보는 지난 수년에 걸쳐 BC 주정부 다문화 자문위원회 위원과...
한인 최초 연방 하원의원 영광 이어갈까 '촉각'
신 의원, 이민자·소수 계층 권익 향상에 역점
"해결해야 할 지역 현안 많아"··· 적극 지원 약속
포트무디-코퀴틀람 선거구의 현역 의원으로 활동한 보수당 넬리 신 의원이 이번 연방 조기 총선에서 두 번째 연임을 노린다. 지난 2019년 한인 최초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된지 2년 만이다....
아웃도어 액티비티 매니아 ‘밴쿠버 아재' 이상현 씨
유튜브로 오프로드 여행과 캐나다 대자연 소개
혹자는 캐나다에 대해 “할 것 없고 따분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 캐나다는 모든 곳곳이 그야말로 대자연의 놀이터이다.   올해로 이민 15년 차를 맞이하는...
동화 ‘When Father Comes Home’의 사라 정 작가
어린 시절 실제 겪은 이야기 동화에 담아
한국 기러기 가족의 애틋함과 그리움을 담은 영어 동화가 북미 독자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화의 주인공은 바로 밴쿠버 출신의 사라 정(25) 작가다. 그는 지난해 가을, 본인의...
82세에 국선도 사범 자격증 취득한 정병조 사범
국선도로 건강도 찾고 ‘코로나 블루’도 이겨내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약한 인구에 특히 치명적이기 때문에, 노년층의 활동이 제한되면서 이들의 신체적 건강은 물론,...
‘코로나19 상황에 알아둬야 할 BC노동법’
KSW로펌 홍준기 인권 변호사의 일문일답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기업과 근로자들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노사간 법적 분쟁의 우려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로 해고를 당했거나 근무 중 확진된...
제25대 BC한인실업인협회 김성수 회장
“한인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한 데 모아 BC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지겠습니다”지난 1984년 출범한 BC한인협동조합 실업인협회(이하 실협)는 소상공인 1950명이 소속되어 있는 BC주 최대 한인...
어려워진 채용시장, 전문가 도움 활용해야
캐나다의 '유망 직종·구직 전략' 파헤치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래한 언택트 시대가 국내 취업시장에도 찬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 틈새시장은 언제나 존재하듯, 얼어붙은 취업시장도 문을...
국가대표 출신 승마 강사 한준태 코치
승마 효과·성장 가능성 ‘무궁무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실내보다는 실외 활동이 권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따분한 팬데믹 일상을 견디기 위해 색다른...
밴쿠버 한인기독교회협의회 이흥수 회장
"뉴노멀 시대 맞아 비대면 사역길 열어야"
밴쿠버 한인교회 나아갈 미래 방향성 제시
▲밴쿠버 한인기독교협의회 대표 회장을 맡고 있는 이흥수 목사. 한국 기독교계가 코로나19 재확산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1차적인 비난의 화살이 전 세계 한인 기독교계를 향하고 있다....
14세 권예지양, 전국 아마추어 대회 최연소로 참가해 우승 차지
중학생 한인 골프 유망주가 성인도 참가하는 대회에서 우승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일 앨버타 체스터미어 레이크사이드 골프클럽에서 막이 내린 앨버타 여자 아마추어...
2020년 RMC 공대 전체수석 졸업생 김지훈 군
1876년에 개교한 캐나다 사관학교(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RMC)는 캐나다 육·해·공군의 통합 사관학교로써, 캐나다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가 되길 원하는 학생에게는 꿈의 학교다.  ...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