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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공이 된 시인, 이민자의 삶에 대해 말하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5-03 11:44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5_시인 오석중
시(詩)에 연애를 걸기 시작한 건 열여섯살 때였다. 쓰고 싶은 것이 있었고 그래서 썼다. “시 한번 참 잘 쓰네”라는 얘길 듣게 되면 기분이 좋아져서 또 쓰게 됐다. 일상의 깨달음이 시어로 표현되는 사이 까까머리 소년은 칠순이, 그리고 시가 되었다. 시인 오석중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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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연애는 5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그 만남이 그에게 "밥"이 되어준 적은 없었다. 가난한 연인을 챙기기 위해선 따로 밥값을 벌어야 했다. 학교 졸업 후 그는 일했다. 때로는 운송회사에서, 때로는 출판사 영업부에서, 또 어떨 때는 자영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지난 1983년 삶의 공간을 캐나다로 옮긴 후에도 생활은 마찬가지였다. 시인은 생계를 위해 기꺼이, 더 정확히 말한다면 선택의 여지 없이 구두 수선공으로 살았다. 그러면서 수필집 <어제 꾼 꿈과 오늘 꿀 꿈의 사이>, 시집 <산중 별곡>, 단상집 <구두 수선공의 짧은 글 긴 생각> 등을 펴냈다. 


“올고 그름이 아닌 다르다는 시각으로…”

1983년, 당시 한국을 떠난다는 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낯선 땅에서의 삶이 불안하지 않았습니까?
유신이다, 새로운 군사 정권이다 해서 모든 게 다 불안한 시절이었는데요, 뭘. 캐나다 이민에 대한 불안함이 뭐 대수겠어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게 다 불안하지 않겠어요?

시인이 느꼈던 불안은 무엇이었나요?
지금하고는 다른 형태의 불안감이었겠지요. 그때의 불안감이란 정신적인, 사상적인 자유와 관련돼 있었어요. 소위 운동권이 아니라고 해도, 사회 분위기상 나는 불안감을 느꼈어요.

사상의 자유를 침해받는다는 것 자체가 불안했다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요.

그래서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건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이민을 오게 된 계기는 여자, 그러니까 지금의 아내 때문이지요. 소개로 알게 됐는데, 그때 아내가 캐나다 거주자였어요. 천생연분이어서 아내를 만난 건지 만나서 우리 둘이 천생연분이 된 건지 몰라도, 아내 따라 캐나다에 오게 됐습니다.

캐나다의 첫 인상은 어땠습니까?
뭐랄까. 그냥 시골 같았지요. 밴쿠버 국제공항이 어느 촌동네의 기차역 같았지요.

그 풍경이 좋았습니까?
나는 좋고 나쁜 걸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판단도 쉽게 하지 않지요. 그냥 "다르다"고만 생각했어요. 옳다, 그르다가 아닌 다르다, 이렇게 말이죠.

보통은 좋고 나쁘고, 옳다 그르다에 관심을 두게 되지 않나요?
한국은 옳고 그름의 기준에 많이 묶여있는 사회였어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자신은 옳다라는 걸 증명하고 또 주장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전부 다 털어놓는 투명한 사회에서는 굳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겠지요. 

첫 정착지는 어디였습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칠리왁에서만 살았어요. 아내 언니가 운영하던 식료품점의 직원으로 이민 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러다 지금의 구둣방을 차리게 된 겁니다.

하필이면 왜 구두 가게였나요?
뭘 하려고 해도 자금이 충분치 않았어요.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고작 1000달러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당시로선 구둣방이 돈 가장 적게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 일이 좋았습니까?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냥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말이죠. 구두 수선공이 되는 건 내겐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영어도 잘 못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

구둣방 운영이 밑바닥 생활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구두 수선하는 일이 창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예전의 나는 구두 닦는 것조차 잘하지 않던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신발 바닥도 거리낌 없이 쓰다듬으며 일을 하지요. 구둣방 운영하며 의식주를 해결했고, 그런 면에서 이 일이 참 고맙지요.

30년 넘게 한길만 걸어온 셈인데요.
주변머리가 없어서 그래요. 처음 이 일을 했을 때만 해도 근처에 구둣방이 다섯 개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 하나만 남았어요. 내가 잘했다기보단 그만큼 구둣방 사업 여건이 어려워졌다는 애기겠지요.

지난 세월 비좁은 공간에서 갇혀만 지냈구나,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까?
음, 글쎄요. 혹자는 갇혀지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어찌됐건 가게 안에서 가게 밖 세상을 보는 것과 가게 밖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는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위치한 곳에서 여러 가지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정리하자면 내가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쁜 일상에서도 시(詩)는 놓지 않았습니다. <산중 별곡>을 비롯해 시집도 여려 권 내셨구요.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열여섯 살 때였어요. 등단 권유도 여러 차례 받았는데, 그때는 시건방해서였는지 혼자서만 시를 써왔죠.

시를 쓰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었을까요? 
시가 내 밥벌이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시를 통해 유명해져야겠다라고 다짐하지도 않았구요. 쓰고 싶은 게 있었고 그러다 보니 쓰게 됐고, 잘 썼다는 얘길 듣게 되면 기분이 좋아져서 또 쓰게 됐지요. 그러는 사이 시를 쓴다는 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되어버린 거죠.

시가 생활의 일부였다는 얘기인가요?
일부가 아니에요. 좀 부풀려서 얘기하자면 시가 내 자신의, 내 인생의 전부라는 거죠.

내 인생의 전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대단한데요. 시인은 참 행복하겠습니다.
행복이 뭔가요? 나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게 나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행복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게 더 좋다고 믿습니다. 시를 쓰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 그건 불행이지 행복이 아니에요. 하지만 나 시를 쓰는데 "의미"를 둡니다.

제가 볼 때는 의미 있는 삶 자체가 행복일 수 있겠는데요. 돈이 많아도 불행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의미는 자기 자신이 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지요.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자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걸 하면 되는 겁니다.

이민 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요. 하지만 어디 살아도 내가 만족하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소소한 불평 같은 건 늘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봐요. 그런 불만족스러운 상황, 불평스러운 상황을 피하는 걸로 끝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피해가 반복되지 않을테니까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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