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성인부문 캐나다 피겨 국가대표 “한계선 밖 세상을 꿈꾸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3-04 13:18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1-유캔스케이트 유현아
미리 정해버린 마음속 한계선은 세월과 함께 더욱 선명한 색을 띤다. 확실히 이 선(線) 밖으로의 이탈은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단 그저 무모한 도전 쯤으로 폄하되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말이다. 정규 교육 과정을 마치고, 거기에 알맞는 직장을 찾고, 또 그 일에 익숙해지면 일상의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그간의 경험이 준 일종의 신호와 같다. 자동차 알피엠이 3000에서 4000을 넘어서는 순간, 액셀에서 저절로 발이 떼어지는 것도 한계 긋기에 익숙한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신호를 가볍게 무시했다. 한계선 밖 가능성에 마음을 내준 것이다. 그 결과 40대 중반인 지난 2014년 피겨스케이트 선수로 정식 복귀했고, 성인 부문 캐나다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캐나다스케이트협회 공인 스케이트 코치이자 선수인 유현아씨(사진)와 만났다.


“캐나다 공인 코치, 선수로 복귀하기까지”

그녀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다. 영하의 빙상장이 삶의 주된 공간인 탓이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자신의 개인 연습을 위해 그녀는 하루 중 최소 여섯 시간을 얼음판 위에서 보낸다. 몸이 찌뿌드드한 어떤 날에도 스케트화의 끈을 질끈 매고 빙상장 안으로 들어서면, 자기 인생의 온전한 주인이 된 것 같다. 유현아씨의 행복한 고백이다.

“참 신기해요. 아무도 없는 빙상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웰컴 투 현아,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죠. 오늘 하루는 쉬고 싶은데, 좀 게으름을 피고 싶은데, 하는 그런 날에도 빙상장의 환영 인사는 늘 한결 같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이 느껴지는 소중한 순간이에요.”

그 느낌에 충실했던 때문인지, 선수 복귀 후 그녀의 수상 실적은 꽤 화려하다. 북미 웨스트코스트 성인부문 피겨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해 복귀 첫해인 2014년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5년과 올해 2월 13일에도 같은 대회에서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전국 어덜트컴피티션에서는 동메달을 받아 캐나다 국가대표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캐나다 대표로 2015 국제 어덜트컴피티션에 참가했는데, 40명 선수 가운데 저는 5위였어요. 메달권에는 들지 못한 거죠. 하지만 괜찮아요. 좋은 경험이었고, 체력이 뒷받침되는 한 선수 생활을 포기할 생각도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죠.”

그녀의 스케이트 인생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처음 시작됐다. 텔레비전에서 피겨스케이팅 중계를 우연히 보게 된 게 인연의 첫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선수로서 그녀의 모습은 화려함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대회에 출전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지만, 2위 입상을 아깝다고 표현하는 사회에서 그녀는 돋보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꿈은 오랫 동안 지속됐다. 적어도 선수생활을 온전히 포기해야 할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캐나다로 이민 오고 얼마 안 됐을 때, 그러니까 선수로서 아직 활동할 여력이 남아있을 때,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저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는데 사고 차량이 저를 덮친 거였어요. 많이 다쳤어요, 특히 왼쪽 다리가.”

앞으로 선수로서 스케이트를 타는 건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은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는 힘들었다. 인생의 좌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생각에 한동안 우울했다. 그 깊은 상실감을 채워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다시 스케이트였다. 그녀는 코치로서 충실했다. 그래서 한인사회에서는 최초로 캐나다스케이트협회(Skate Canada)가 공식 인정하는 코치가 되었다. 캐나다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올림픽 무대를 밟아보겠다는 꿈도 갖게 됐다.

“실력 있는 코치가 되기 위해서는 저 역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어요. 과거에 습득한 이론만으로는 코치로서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다른 코치들과 함께 연습을 시작하게 된 거고…, 이게 3년 전 일이네요.”

과거의 움직임을 몸은 잊지 않고 있었다. 오랜 휴식 덕분인지 교통사고 후유증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동료 코치들이 그녀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성인 부문 피켜 선수로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라는 그런 주문이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한 연습이 그녀의 오랜 꿈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특별한 아이들 위한 특별한 코치 될 것”

“40대 후반에 접어들게 되면, 대개 자기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동안 뭐 하나 해놓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하게 되지요. 저는 제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생각해 봤어요. 어차피 내게 올 시간, 그때가 되기 전에 뭔가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이제 내 인생에서 두번째 마라톤이 시작된 거라고, 완주할 때까지 나를 100% 연소시켜 보자고, 그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선수로서 다시 찾은 스케이트장에 걸림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메달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가슴 벅차게 즐거운 일도, 시린 시련도 있었다.

“전국대회 출전을 얼마 앞두고 큰 부상을 입었어요. 제 샐력을 발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요. 한번은 점프 도중 다른 선수와 충돌하는 바람에 뇌진탕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어요. 이 때문에 한 동안은 휴식을 취해야 했는데, 전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 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부상 후 처음 대면한 빙상장은 두려운 장소였다. 또 다시 다칠까봐 무서웠다. 평소의 스피드를 내기가 어려웠고, 때문에 점프도 힘들었다. 

“연습 도중 누군가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덜컥 겁이 났어요.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제겐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오기 같은 게 생기더군요. 죽는 한이 있어도 한번 뛰어 보자, 하는 마음이었던 거죠.”

선수가 되면서 금전적으로 포기해야 할 일들도 여럿 생겼다. 코치 일에만 전념하면 꽤 윤택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일상은 그게 아니었다. 

“독일 세계대회 때에는 경비로 1만달러 정도가 든 것 같아요. 캐나다 국가대표팀이라고 해서 국가의 지원 같은 걸 받는 건 아니거든요. 캐나다의 피겨 스타이자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게리 비컴도 저와 함께 독일 대회에 출전했는데, 그 사람도 아마 개인적으로 경비를 마련했을 거에요. 아, 참 비컴 얘기를 좀 더 해야겠네요. 올해로 57세이데도, 그는 여전히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제겐 큰 영감을 주는 분이죠. 비컴이 언젠가 그랬어요. 저를 세계적인 피겨 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그런 말 한마디조차 제겐 즐거운 자극이 되곤 합니다.”

그녀에게서 피겨 선수로서의 삶을 분리하면 남을 것이 없어 보였다. 선수 생활 이후에도 그녀는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당연히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요. 50대가 지나가면 선수의 삶도 자연스럽게 마감될 겁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코치로서의 삶은 계속될테니 말이에요. 여든 넘어서도 피겨 코치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꽨 많습니다. 이들 중 어떤 코치는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하지요. 이런 모습, 멋지지 않나요?”

코치로서 그녀의 관심은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스케이트를 통해 발달장애, 과잉행동, 다운증후군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많이 힘들었고, 많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분야에서도 크진 않지만 성취감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저조차도 이랬는데, 저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아이들, 여러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은 당연히 더 행복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그들의 조력자, 그들을 위한 훌륭한 코치가 될 겁니다.”

유현아씨는 지금 또 다른 세계대회를 준비 중이다. 자신의 한계선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도전이, 그래서 갖게 된 새로운 꿈이 한때 우울했던 40대 중반의 그녀를 일어나게 한 힘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2개사 상장 진행하는 K&C 인터내셔널 허성범 대표
“이민 1세대로 의미 있는 발자취 남길 것”
한국 스타트업 기업들은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초기에 지속적인 자금 조달을 받기가 힘들고 규제가 많아,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다.   그에 비해...
‘바이오린클’, 음식물찌꺼기 퇴비화 기술
나나이모 시청에도 음식물 처리기 설치
▲애크미그린 박진근 대표(가운데)를 비롯한 직원들이 '바이오린클' 사용법에 대해 시연하고 있다. / 사진=애크미그린 제공팬데믹으로 인한 변화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지만, 환경과 위생에...
화이트캡스 2년 차 시즌 “작년보다 자신 있어”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새로운 시즌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시즌 8승 18패 10무(승점 34점)로 서부지구 최하위에 그쳤던 화이트캡스는 캐나다 국가대표 공격수 루카스...
‘세비야의 이발사’로 북미 무대 데뷔하는 성악가 전태현
▲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바실리오 역할을 맡은 베이스 전태현 (사진=손상호 기자)유럽과 한국 오페라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성악가인 베이스 전태현(39)이 밴쿠버 무대에...
BC주 한국교육원 설립 추진위원회 ‘한마음’ 발족
랭리 파인아트 스쿨 교사와 학생들 주축으로 첫 삽
교육청 소속 직원 및 교사들 적극적인 관심 보여
▲랭리 파인아트 스쿨 강수연 교사 / BC주 한국교육원 설립 추진위원회 위원장 / 사진=배하나 기자BC주에 한국교육원을 개설하자는 추진위원회 ‘한마음’ 이 지난 2월 5일 발족되었다....
밴쿠버 총영사관 개설 50주년 정병원 총영사 인터뷰
“밴쿠버만큼 안정된 교민사회 보기 힘들어”
▲총영사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자가 묻는 답변에 정병원 총영사가 답하며 웃고있다. (사진=손상호 기자)1969년 11월 6일 장재용 (2014년 별세) 전 스페인 대사가 1대 밴쿠버 총영사로...
25년간 한 자리에서 홈리스 돕는 ‘희망의 집’ 김용운 목사
▲ '희망의 집'의 김용운 목사 (사진=손상호 기자)가족, 친구들 다 함께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연말연시. 그 와중에도 거리에는 춥고 비 내리는 날씨에도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잠을...
행동컨설턴트 홍유화 씨
전 세계적으로 부족해 수요 급증하는 직업
최근 자폐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관심은 높아지지만, 이를 교육하고 치료하는 전문가들은 한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5년간 라오스 야구발전과 재능기부에 온몸 던져
“움켜쥐었던 것들을 놓아버리고 나누니까 행복해요”
한국 야구의 전설 ‘헐크’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밴쿠버를 찾았다. 지난달 29일에 있었던 광림교회 30주년 기념 간증 집회를 위해 밴쿠버 교민 앞에 선 것이다. 이만수 감독은...
대형 배달앱 상대 차별화 두려 노력
▲푸들리 김보성 대표겸 개발자와 오현정 마케팅 팀장. 사진 = 손상호 기자음식 배달 중개 어플리케이션(배달앱)의 홍수의 시대다. 앱(어플리케이션) 하나로 주문, 결제부터 배달까지...
전세계적으로 수요 늘어
가장 인기 있는 직업순위 ‘단골손님’
<▲ 2년차 보험계리사 김주선 씨 >캐나다 유력 경제지 ‘캐나디언 비즈니스’는 매년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 탑 25’를 뽑아 발표한다. 지난 5월 발표된 2019년 인기 있는...
캐나다 최초 한인 연방 하원의원의 탄생 여부에 대한 한인사회와 여론의 관심이 뜨겁다. BC주에서는 제이신-넬리신 후보가 각기 다른 선거구에서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지지율 경쟁에서...
<생일>, 세월호 다룬 최초의 극영화이자 100만 관객 영화
제 38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초청
때로 어떤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지독하게 낫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2014년 4월 16일읠 사건이 그러하다. 세월호가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지 벌써 5년니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5년차 20대 물리치료사 윤솔씨
“활동적 성향 가진 학생에 추천해요.”
캐나다에서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면서, 앞으로 노년층이 증가할 수록 더욱 필요한 직업. 바로 물리치료사(Physiotherapist)다. 지난 4월 캐네디언 비즈니스(Canadian Business)는 물리치료사를...
아이스하키 선수, 모델 거쳐 BC주 최초 한국인 아이스하키 심판된 한율씨
<▲캐나다 아이스하키협회, BC주 심판협회 패치를 들고 포즈를 취한 한율씨 (사진=손상호 기자)>아이스하키 선수에서 인기 광고모델, 평창패럴림픽 심판과 국제학교 선생님을 거쳐...
한인 비행교관 파일럿 서수지씨
국내 한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항공유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고액 연봉과 안정된 정년이 보장되는 ‘꿈의 직장’이라 여겨진 것이다. 이는 비단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대...
캐나다 연방경찰 스티브 김·다니엘 정
<▲ 써리 지역에서 연방 경찰(RCMP)로 활동 중인 다니엘 정(좌)·스티브 김(우)·경관>최근 밴쿠버 취업 시장 내 한인 청년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국 문화를 가진 1.5세의 젊은...
한국전통예술원 12회 정기공연 개최
29일 오후 7시 노스 밴쿠버 쉽야드-쉽빌더스 스퀘어
<▲존 호건 수상에게 2019년 다민족 문화예술 관련 상을 받은 한창현 대표>“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으로 새롭게 탄생한 우리 전통예술의 진수로 모든 분들에게 잊지못할 여름 밤의...
한인 넬리 신씨, 연방하원 보수당 경선에 도전장
포트무디 코퀴틀람 지역...한인들 당원 가입 ‘호소’
연방총선이 10월21일로 다가온 가운데 연방하원에 도전하기 위한 관문인 연방 보수당 경선에 한인 넬리 신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이달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경선에서 BC주...
미국 리그(MLS) 진출사 '큰 획'... 최고 신인 꿈꿔
구단 최우수 선수·매치 키플레이어 등 선정 활약
지난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미드필더 황인범이 MLS행 특급 노선을 밟고 밴쿠버에 등장했다. 해외 타 리그를 거치지 않고 K리그에서 미국 프로축구 MLS로 이적 직행 노선을 탄 것이다....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