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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1-20 14:30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29- 한인신용조합 석광익 전무
옛일을 떠올릴 때, 어떤 이는 일종의 자기애를 종종 발휘하곤 한다. 어설프기만 했던 과거와 그때의 잘못을 포장하기 위해서다. 한인신용조합(이하 신협)의 최고 경영인인 석광익 전무(사진)는 달랐다. 신협 평직원으로 시작해 CEO의 자리까지 오른 그는 40년 가까운 자신의 이민사(史)를 회상하는 내내 솔직함을 잃지 않았다. 덕분에 그가 걸어왔던 길은 미화되지 않았고, 실수담은 자연스레 공개됐다. 석 전무는 “한인사회 후배들이 내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번 인터뷰가 그저 그런 성공 스토리가 아닌 이유다.



“자격지심, 남들과의 비교에서 시작돼”

이민은 언제 온 건가요?
1979년 4월 1일. “이 날”은 잊기가 힘들어요.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가 생긴 날이니까. 당시 대학 3학년이 되기 전이었는데, 그저 유학길에 오른다는 기분으로 이민 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민이라는 게 그 자체로 정말 큰 변화이기는 하죠.
밴쿠버에 제 형님이 먼저 가 계셨어요. 다시 말해 믿을 구석, 연고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캐나다에 정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웬만한 용기 아니고서는 이민을 결정하기 어려웠을테니 말이에요. 이민 올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용기만으론 뭔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낯선 땅에 정착한다는 것,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밴쿠버에 처음 왔을 때, 제 나이 만 스물하나였어요. 어딘가 애매한 나이였지요. 영어를 배운다는 게 일단 버거웠습니다. 영어를 영어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대신 공부를 통해 습득해야 할 나이였으니까 말이죠. 이게 당시의 나에겐 하나의 좌절이었어요. 언어 장벽 탓에 정작 하고 싶은 공부는 곧장 시작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더군요.

예를 들자면요?
그때만 해도 한국과 캐나다간 경제 격차가 상당했습니다. 근로자에 대한 보수도 캐나다가 훨씬 후했지요. 물론 양국 생활비를 감안하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어찌됐건 나 같은 경우엔 식료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보수로 시간당 6달러50센트를 받았어요. 당시 밴쿠버를 드나들던 한국의 외항 선원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이었지요. 돈 버는 게 비교적 쉽다 보니 어느 순간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공부의 목적이 돈 버는 데 있다면 내게 공부는 필요 없다는, 뭐 그런 생각이었지요. 어려운 공부를 피하고 싶은 일종의 자기합리화였던 거죠. 

그래도 계획대로 학업을 이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간 셈이었어요. 지금 와서 후회되는 건, 이민 와서 처음에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했다는 거에요. 처지가 비슷한 이민 동기들하고만 자리를 함께하곤 했죠. 물론 이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편하고 즐거웠지요. 하지만 캐나다 사회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내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멀리했다는 건 정말 큰 문제였어요.

왜 그랬던 거죠?
자격지심 탓이죠. 20대 초반의 쓸데 없는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던 거에요. 하다 못해 식당을 가더라도 나보다 영어 잘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왠지 주눅이 들곤 했지요. 영어를 못하면 손짓 발짓이라도 해가며 내가 원하는 음식을 시켜 먹으면 될텐데, 그걸 못했던 거죠.

결국엔 자격지심을 극복했습니다.
내가 특별히 노력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에는 앞서 온 사람을 따라잡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민 선배나 후배 사이에, 애초부터 큰 차이는 아마 없었을 거에요. 자존심 탓에 폭넓은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꾸 남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는 게 너무 부질없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요. 그게 정말 후회돼요.

시행착오 같은 거였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잃은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에요. 같이 이민 온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너무 한정돼 있었어요.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예를 들어 이곳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그 이유는 무척 단순해요. 한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는 것 그게 다였죠. 애초부터 기계공학에는 관심도 크지 않았지만, 다른 쪽으로는 눈길조차 돌리지 못했습니다. 회계나 법학 공부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저건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꿈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거였죠.








“당신은 생각보다 큰사람, 한계를 정해두지 마라”

스스로의 한계를 미리 규정해 버린 거군요.
딱 그거에요. 어렸을 때부터 의사의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민 후 내 한계를 정하면서, 그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 거지요. 난 이민 후배들이, 좀 더 범위를 좁혀 얘기한다면 신협 직원들이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해 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계를 정한다는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미래의 불안 요소를 없앴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계를 정하면서 현실에 안주할 수 있어요. 이게 안타까운 거죠. 내 한계는, 내가 정해 놓은 한계보다 훨씬 클 수 있어요.

젊은 날의 실수 중 후배들이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또 있습니까?
대학에서 전공 결정과 관련해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내가 의사의 꿈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우선은 그 길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일을 해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일단 방사선사가 되면 어떻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그러더군요. 방사선학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년에서 2년 정도는 영어 공부를 더 해야 될 것 같다고…. 좌절했지요. 남들보다 1,2년 뒤처진다고 생각하니 조급해지더군요. 그래서 그 길을 곧바로 접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1,2년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군요.
바로 그거에요. 어떤 씨앗도 뿌리지 않고 당장의 열매만을 기대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지요.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것도 다 조급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느긋하게 이것저것 재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한 건 아니겠지만.

계획을 세운 후에는 거기에 맞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지요.
물론이에요. 다시 영어 얘기를 한번 해볼께요. 특히 초기 이민자들은 영어 때문에 많이 괴롭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요. 노력해야지요. 기초 영문법이라도 꺼내 놓고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눅들고 자격지심에 빠져들 수가 있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영어 때문에 괴로운 게 오로지 나만일까요? 아니에요. 이민자들 모두 힘들어요. 20년을 산 사람도, 40년을 산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냥 극복해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협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합니다. 평직원에서 최고 경영인의 자리까지 올랐으니까요.
운이 좋았지요. 서른한 살 때 입사했는데, 신협 일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저절로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그냥 신협을 하나의 일터라고만 생각했다면 오랫동안 몸담지 못했을 겁니다. 자부심과 보람, 이게 내게는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이었어요.

적성에 딱 맞는 직장, 그런 일을 찾는 게 쉬운 건 아니겠지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걸 아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으니까요.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신협 수장으로서도 걱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게 문제지요.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거고, 밤이 깊으면 분명 아침이 오겠지요. 견뎌 나가면 반등의 시기가 언젠가는 올 겁니다.


신협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인사회에 대한 기부는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석 전무는 “한인사회로부터 받은 이익을 한인사회로 환원하는 것이 신협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자신의 실수담을 이민 후배들을 위한 “지도”로 활용하려는 석 전무의 마음도 일종의 환원 또는 기부로 느껴졌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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