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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밴쿠버를 마음에 담은 이유”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3-06 16:16

피아니스트 김지윤,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밴쿠버를 연주하다
음악은 즐겁다. 배움의 깊이와는 그닥 상관 없이 음의 높낮이에, 박의 빠르고 늦음에 몸이 알아서 반응해 주니 말이다. 이 단순한, 그래서 더욱 끌리는 음악의 존재 이유를  젊은 연주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레 기억해 냈다. 그는 지난해 UBC 피아노 연주과를 졸업한 김지윤씨(사진)다.





                                                                            사진=문용준 기자  




“이민 초기, 피아노가 제 친구였어요”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건 네 살 때였다. 아무래도 엄마의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생각을 하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이가 된 후에도 엄마의 주선으로 알게 된 피아노가 전혀 밉지 않았다. 한국에서 6학년을 채 마치기 전, 당시에는 낯설기만 했던 밴쿠버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는데, 이때 피아노와의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다.

“이민 초기, 이곳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했어요. 제가 유달리 낯을 가리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유는 하나였어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거였죠.”

이 얘기를 듣고, 혹자는 어린 시절 그녀의 삶을 선뜻 위로하려 들 지 모른다. 그런데 이 인간적인 마음에 진심으로 미안하게도, 이제 막 7학년이 된 꼬마아이는 “외로움”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혼자 있어도 별로 심심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다시 피아노 얘기를 꺼내야 될듯 싶다. 

“친구가 없어 나가 놀 일도 없었고,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도 저절로 길어졌지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피아노가 어린 시절 제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녀는 어떤 틀에 구애받지 않고 피아노를 즐겼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음이 있으면, 그것이 가요든 찬송가든 상관없이 건반 위로 옮겼다. 음악과 논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흔하다면 흔하다 할 수 있는 피아노 레슨은 이민 와서 처음 2년 동안은 아예 받지도 않았다. UBC 피아노 연주과를 졸업했다는 이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행보다. 보통의 음대 준비생이라면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게 세상의 통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행을 통해야만 음대 준비생은 음대생이 되고, 음대생은 또한 예술가로 살아남는다는 “각본”은 우리에겐 너무 익숙하다.

“음악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앞서 얘기했지만, 피아노는 제겐 그저 친구 같은 존재였죠. 어쨌든 9학년 들어서면서 밴쿠버에서는 처음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됐어요. 하지만 이때에도 음대를 목표로 한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사진 제공=김지윤  



“음악은 경쟁의 도구 아닌, 그저 즐기는 거죠”

그녀의 생각이 달라진 건 랭리파인아트스쿨에 들어간 후다. 고교 입학 당시 코퀴틀람에 살았다는 그녀가 랭리까지 건너가게 된 건, 절반은 친구 때문이다. 

“영어가 점차 늘면서 어느새 친구들도 사귀게 됐지요. 그런데 이 친구들 중 한 명이 랭리파인아트스쿨을 선택했고, 저 역시 이 학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지요.”

학교생활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다. 수시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특히 좋았다. 학교에서는 각 장르 사이에 흉물스런 철책선을 세워두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클랙식 뿐 아니라 재즈 등도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음악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그녀는 UBC 입학 오디션을 통과했고, 피아노 연주과 신입생이 됐다. 누가 보더라도 음악인로서 반듯한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물어야 했다. 더 큰 세상, 더 큰 무대에 대한 욕심은 없었냐고. 

“저는 밴쿠버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밴쿠버를 떠나 산다는 생각은 거의 해 본적이 없어요. 물론 미국의 음악 시장이 밴쿠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한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경쟁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저는 제 나름대로의 음악을 즐기는 걸 더 좋아했어요. 음악은 원래 즐기는 거고, 즐거워야 하니까 말이죠.”

자신의 연주 테크닉으로 누군가를 압도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누군가의 시선을 충족시키는 음악 대신, 자신을 위한 음악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밴쿠버 토박이”로서 밴쿠버에 대한 애정을 연주 속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이것이 그녀의 꿈이다. 언뜻 소박하기만 보이는 이 꿈에 친구들은 가끔 그녀를 “애늙은이” 취급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계속해서 연주에 매달릴 수 있어요. 큰 무대 작은 무대 상관 없이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고, 또 그 기회를 찾으려 애쓰지요. 이게 제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그녀가 설렘 속에 기다리는 무대가 있다. 오는 15일 열릴 “메시아 대연주회”가 그것이다. 이틀 후인 17일에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금 마련 갈라 콘서트” 무대에도 선다. 두 공연 모두 밴쿠버 필그림 합창단(지휘자 석필원)과 이세진, 백재은, 강동명, 신금호씨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함께 꾸민다. 그녀는 이 무대의 피아니스트다.

“무대에 서는 성악가들이 하도 쟁쟁하셔서, 벌써부터 많이 떨리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즐겁게 할 거에요, 제 음악을.”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한국의 특급 성악가들, 밴쿠버에서 직접 만난다”

성악 애호가라면 3월 15일 “메시아 대연주회”와 17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금 마련 갈라 콘서트”에 특히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을 듯 보인다. 한국의 특급 성악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신금호씨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학비 및 전액 장학생으로 영국 왕립음악원과 왕립 음악대학에서 실력을 닦았다. 이후 런던시티 오페라단과 알덴비전 오페라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다음으로 서울대 성악과와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거친 소프라노 이세진씨는 유럽 주요 콩쿨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기도 하다. 테너 강동명씨도 유럽파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 시립 음악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고, 이후 유럽 순회공연에 참여했다.
 
메사아 연주회는 15일 오후 7시 센테니얼 극장(2300 Lonsdale Ave. North Vancouver.)에서 열리며 입장료는 각각 30달러와 50달러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금 마련 갈라 콘서트”는 밴쿠버 한인문화협회가 주관하고 민주평통을 제외한 한인사회 주요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다. 장소는 퀸스애비뉴유나이트처치(529 Queens Ave. New Westminster)이며 이 공연의 입장료는 20달러로 책정됐다. 공연 문의 필그림 합창단 (604)785-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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