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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병리사가 되기까지, 나의 '고집스런' 도전기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12-20 13:34

로열컬롬비안병원 이선영
‘한 우물을 파다보면…’이라고 시작되는 문장이 ‘언젠가는 이루어질거야’라는 말로 완성되기까지에는 계량하기 어려운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가정’이 항상 달콤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목표와의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을 때,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이쯤에서 ‘다른 우물을 파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신을 100% 연소하지 못한 대부분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2001년 이민 온 이후, 그녀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웠고 그 길만을 고지식하게 걸었다. 약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자신만의 우물을 갖게 된다. 로열컬럼비안병원(RCH)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고 있는 이선영씨의 이야기다.




“서류 준비부터 영어까지, 꼼꼼히 준비해야”

결론부터 얘기하면, 임상병리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BCIT에 3년 과정이 개설돼 있지만, 입학 문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임상병리사 자격증을 여기에서 다시 인정받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또 다른 관문이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다. 영어에 다소 서툰 이민자라면 더디게라도 끊임없이 걸을 수 있어야 마침내 원하는 곳에 서 있게 된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했던 이선영씨도 이 과정을 거쳤다.


임상병리사로 일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2001년 이민 왔는데, 그때만 해도 어렵지 않게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캐나다 이민부가 원하는 직업 리스트 안에 임상병리사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임상병리사가 부족하니까, 내게 영주권을 준 거라고… 그렇게 순진하게 미리 짐작했던 거죠.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군요.
그랬지요. 정신차리고 보니 살아남는 건 이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 지, 모든 것이 막막했어요. 우선 인터넷 사이트부터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무조건 부딪혀보자고 결심했지요. 그래서 무작정 임상병리사협회를 찾아갔습니다.

직접 협회 직원을 만나 조언을 구했을 정도였으면, 이민 초기인데도 영어 실력이 꽤 탄탄했나 봅니다.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읽는 것만 빼면, 영어는 거의 초보 수준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설퍼도 한참 어설픈 표현으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물어봤던 것 같아요.

절실함을 보인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요. 어찌됐건 어떻게 하면 임상병리사가 될 수 있는지, 그곳으로 가는 버스 노선 정도는 알게 됐습니다. 

그 방법이 궁금한데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합니까?
그런 셈이지요. 한국의 임상병리사가 이곳에서 같은 일을 하려면 캐나다임상협회(csmls.org)가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해요. 그런데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기까지의 과정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선 필요한 서류로는 학력 증명서, 경력 증명서를 비롯해 이전 직장에서는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지도 상세히 작성해 협회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문제는 그런 서류들을 본인이 직접 제출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한국의 학교나 병원에서 관련 서류들을 곧바로 캐나다임상병리사협회로 전달해야 해요. 모든 내용이 영문으로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많이 어려운 부분이지요. 한국에서 이 일을 해주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니까요.

그 다음 해야 할이 또 있습니까?
영어 능력을 증명해야 해요. 고등학교 12학년 과정을 마치거나 토플, 아이엘츠(IELTS) 성적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영어 성적을 만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든 서류가 다 접수되면, 바로 시험을 볼 있는 자격이 주어지나요?
아니요. 이때부터 심사에 들어가요. 한국의 학력이나 경력이 여기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재교육을 받아야 해요. 대부분은 다 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왜 그렇지요?
서류를 낸 시점으로부터 5년 전까지의 경력이 검토 대상이에요. 이 기간 내에 임상병리의 다섯 가지 파트(미생물, 혈액, 화학, 병리, 혈액은행)를 다 경험해야 하는데, 한국의 근무 여건상 이게 사실상 불가능하거든요. 

재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BCIT에 1년짜리 재교육 코스가 있다고 하지만, 제가 공부할 때는 폐강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저는 통신교육을 선택했습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재교육 과정을 이수하려면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이 점이 좀 까다로웠습니다. 시험은 학교에서 보는 게 아니었어요. 제 스스로 감독관을 선정해야 하고,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시험을 봐야 하죠. 훨씬 부드러운 환경에서 시험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감독관은 친구나 가족은 절대 할 수 없고, 개인적 친분이 없는 패밀리닥터나 변호사 등만이 할 수 있죠. 인맥 없는 새내기 이민자가 감독관이 되어줄 사람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 로열컬럼비안병원 이선영 임상병리사. 사진=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



“다른 길을 선택? 그게 더욱 후회될 것 같았다”

  
재교육 과정은 언제 마친 건가요?
2005년이요. 그런데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했어요. 

어째서요?
재교육 과정을 마치게 되면 비로소 임상병리사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험에 몇 차례 불합격하게 될 경우, 다시 재교육 코스를 이수해야 해요.

시험이 많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저한테는 그랬어요. 한국의 시험과 형식 면에서 너무 달랐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시험이 문제은행 방식이라면, 캐나다는 지원자의 업무 해결 능력을 더욱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갖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가 시험의 핵심이지요.

어찌됐건 자꾸 시험에 떨어지면, 괜히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런 심정이 들 것 같은데요.
포기하고 싶었지요. 앞날도 막막하고, 통장 잔고도 점점 없어지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겠다, 라는 생각도 여러 차례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까웠어요. 공부를 포기하면, 언젠가는 그 선택을 후회할 것만 같았죠. 

결국엔 ‘한 우물을 판 것’이 정답이었다는 얘기인가요?
제 믿음은 그래요. 한길만을 가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2008년, 그러니까 이민 오고 나서 7년 정도 흐른 뒤 드디어 임상병리사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취업은 어렵지 않았습니까?
운이 좋게도, 이력서를 낸 곳 두 군데에서 다 면접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취직은 비교적 쉽게 했지만, 산 넘어 또 산이라고 병원 생활이 그렇게 순조롭지는 않았어요. 영어 때문이었죠. 연구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마다, 등에서 땀이 주루룩 흐르곤 했어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들으면 어떻게 하나…. 늘 전전긍긍했죠. 지금은 그래도 많이 편해졌지만, 영어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임상병리사의 보수는 괜찮은 편이지요?
급여는 시간당 26달러에서 33달러로 책정되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보수보다는 병원의 연금이나 각종 베네핏이 더욱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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