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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하나에 목숨 건 두 남자 이야기, 이순창·이송 父子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3-16 09:48

“요리를 파는 ‘햄버거 가게’ 들어보셨나요?

햄버거는 사소한 음식이다. 햄버거 입장에선 좀 안쓰럽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패스트푸드점 계산대에서 후다닥 주문을 마치고 나면, 곧이어 달작지근한 탄산음료와 함께 등장하는 햄버거. 자신을 담은 그릇도 없이 쟁반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 음식을 요리라고 부르기엔 다소 민망하다.

토마토, 치즈 등으로 분장해 봤자 격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오늘 점심으로 뭐 드셨어요?”라는 질문에, 패스트푸드점을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냥 햄버거로 대충 때웠어요.”라고 답하기 일쑤다. 먹었다는 말보다 때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음식, 그게 바로 햄버거다.


“버거는 버거일 뿐, 뭐 다를 게 있나?”

스카이트레인 메인스트리트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햄버거 가게 ‘투다인포이터리’(To dine for eatery)를 알게 된 것은 한 달 전 쯤, 지인의 전화를 통해서다.

“다운타운 방향으로 나올 일 있으면, 한번 들러봐. 맛이 진정 예술이라니깐...”

사소한 음식, 햄버거의 맛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건 TV 광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호들갑’이라고 생각했지만, 은근히 궁금해졌다. 지인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맛인데?” 답을 듣고 난 후에야, 이 질문이 우매해도 참 우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말로 묘사한다 해도 맛을 알아채고 이해하는 것은 혀끝이니깐. 결국 호기심을, 정확히 얘기하면 식탐을 누르지 못하고 가게 문을 열었다. 주인장은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기자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날이 꽤 쌀쌀해졌는데,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그가 건넨 커피향이 무척 깊다.

“브라질에서 직수입한 원두로 만든 겁니다. 물론 유기농이죠.”

햄버거 가게에서 남다른 커피 맛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신선했다. 이 가게의 주인은, 맛에 대해선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기는, 꽤 깐깐한 사람인 듯 하다. 그는 자신을 부르스 리라고 소개했다. 한국 이름은 이소룡, 아니 이순창이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이순창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를 따라 밴쿠버에 정착했다. 이때가 83년의 일이다.

“오자마자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밤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밟았지요.”

당시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20대 초반의 젊음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는 말 그대로 ‘주경야독’에 매달렸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장단지가 터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하루종일 서서 일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늑막염을 앓았는데, 그것 때문에 1년 동안 아무것도 못한 채 누워만 있었거든요. 그래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행복인 셈이었죠.”

착한 아들은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을 때, 그는 힘든 일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1년이다.

그 후에는 선물가게를 운영했다. 아내와 둘이서 밤낮 없이 일했다. 그러다 요식업계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된다. 2005년에 그는 노스로드에 위치한 한 서양식 레스토랑을 인수했다. 본격적으로 음식 얘기를 하기 전에, 그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건넸다.

“안전한 창업, 그러니까 실패 확률을 줄이려면 새로 가게를 여는 것보다는 기존 영업점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은근히 보수적이라 새 가게에는 잘 가려 하지 않거든요.”

가게를 인수하기 전에 이순창씨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평판’이었다.

“평판을 확인하는 것은 의외로 쉬워요.  손님들의 표정만 보면 확인할 수 있죠. 표정이 밝다면 그 가게의 음식이, 서비스가 괜찮다는 뜻 아니겠어요?”

좋은 가게를 인수했다 해도 현실에 안주하다 보면 금세 뒤쳐질 수 있다. 기존 손님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작지만 신선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곳 사람들은 꽤나 보수적이라 새로운 메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이전 주인이 세워 놓은 원칙을 따라하는 동시에, 저만의 메뉴를 조금씩 조금씩 첨가해 나갔죠.”

그는 손님들 중에서 특히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아이들을 만족시키면, 정작 즐거워하는 것은 부모들이에요. 이런 분들이 단골이 되는 거죠.”

그가 인수했던 가게에 주었던 변화 중 하나는 ‘가격’이었다. 요리의 맛과 질을 높이려면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 입장에선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겠지만, 맛만 좋다면 지지 않는 승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가격 대신 맛으로 승부를 보려했던 음식이 바로 ‘수제 햄버거’다. 밴쿠버에서 맛있다는 햄버거 가게는 다 순례한 후에, 이순창씨는 자신의 맛이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맛 유지할 자신 있을 때까지 프렌차이즈는 사양”


그의 햄버거는 곧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메뉴를 쳐다보지도 않던 손님들조차, 다른 사람들이 시킨 햄버거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다. 맛집 블로그 사이트에 그의 햄버거가 오르내리더니, 나중에는 분점을 내달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저도 프렌차이즈 사업에 관심이 좀 있었는데, 결국에는 생각을 접었어요. 맛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그는 두 달 전 쯤 새 터전을 마련했다. 그게 ‘투다인포이터리’다. 그전까지 운영했던 가게는 자신에게 햄버거 만드는 법을 배우던 지인이 맡았다.

이순창씨는 새 가게 ‘투다인포이터리’의 실질적인 주방장은 자신의 아들인 저스틴(한국명 이송)이라고 했다. 부자는 입맛에 대해선 한치의 양보도 없다.

“저희 가게의 모든 메뉴는 저스틴이 개발했어요. 스스로 연구해서 요리를 만들어 내는데, 미각이나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타고난 거 같아요.”

그의 가게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계란부터 고기까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계란은 방목한 닭에서 얻은 것을 사용하고, 고기 역시 웨스트엔드의 최고급 정육점 것만을 고집한다. 이것저것 섞은 이른바 ‘잡고기’는 당연히 사절이다.

그런데 한 가지 드는 의문. 재료가 좋다고 해서 전체적인 맛이 저절로 훌륭해지는 걸까? 숱한 경험에서 비추어볼 때, 정답은 ‘No’에 가깝다.

요리만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맛의 달인’은 햄버거를 초밥에 비유한다. 아무리 최고급 횟감과 쌀을 사용한다 해도 두 재료의 궁합이 좋지 못하면 감탄할 만한 초밥은 맛보기 힘들다. 햄버거도 마찬가지다. 최고급 고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두 재료의 맛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요리사의 일이다. 이런 노력이 수반될 때, ‘사소한 음식’ 햄버거도 요리로 인정받게 된다. 인터뷰 말미에 이순창씨는 그의 아들 저스틴이 손수 만들어 온 햄버거를 한번 맛보라고 권했다.

그 햄버거를 한입 깨어문 순간, 이제까지 이순창씨와 했던 햄버거와 그 맛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무의미해졌다. 그렇지, 결국 입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니깐.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To dine for eatery. 333 Terminal Ave. Vancouver. 604-568-7106
  

 

 

 


이순창씨(위)의 아들 저스틴은 이제 막 스물한 살이 됐다. 워낙 수줍음 많은 청년이라 깊은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그의 요리를 맛본 사람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밴쿠버 요식업계가 이 청년을 비중있게 대접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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