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참 오래전에 캐나다 동부 몬트리올에 살 때의 우리 집 어느 해 여름 풍경이다.
하필이면 제비가 왜 그 자리에 집을 지었는지 모른다. 우리 집 앞에는 큰 고목나무가 그 옆으로도 키가 큰 나무들과 마당을 감싸 안은 담쟁이 나무들 때문에 우리 집은 마치 숲속의 집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집이 단층이다 보니까 새들이랑 다람쥐들이 아주 겁 없이 우리 집을 넘보았다. 문을 열어 놓으면 다람쥐가 집안에 들어오려고 하질 않나 새들이 벽난로 굴뚝으로 뛰어들어오질 않나, 한여름이면 유리창이 보이질 않아서 새들이 머리를 박고 유리창에 박치기하여 자살하는 놈들도 있고 아무튼 한여름만 되면 새들과 다람쥐들 때문에 꽤 신경 쓸 일들이 있었지.
나무가 많으니 벌레도 많았고 또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이 모여들어 한여름 우리 집은 자칫 숲속에 자리 잡은 벌레와 새, 다람쥐들의 쉼터요 먹거리 풍부한 집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비들이 집 입구 문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못 짓게 하는 방법도 없고 또 있다 해도 그들 사생활에 인간이 함부로 간섭할 수도 없어서 못 본 척 내 버려두었다.
제비들은 바빴다. 두 놈이 서로 지푸라기를 주어 모아들였다. 진흙을 개어 찌푸리기와 함께 섞어서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제비는 집 짓는 공사 솜씨가 보통 수준 이상이라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정교하게 털실로 짠 모자를 아래위로 뒤집어 놓은 형상이었다. 아래쪽으로는 둥근 듯하며 끄트머리는 깔때기 모양이었고 위로는 작은 사발을 놓은 듯 그렇게 예쁘고 정교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제비들은 알을 까고 어느새 새끼들이 그득 집을 채웠다. 그해 여름 나는 제비들 때문에 한동안 행복했다. 문 바로 위에 집을 지었어도 우리 식구들이 드나드는 것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그래서 우린 서로 쳐다보며 서로 방해하지도 않고 즐거운 여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가 했더니 제비들은 어느새 모두 다 자기들 갈 곳을 찾아 떠나 버렸다. 겨우내 새집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고 라일락 향기가 온 동네를 휘감으며 향기를 퍼드리던 어느 날 비어 있던 제비집에 새 손님이 들어 왔다. 이번엔 제비가 아닌 참새들이었다.
참새들은 자기들이 지은 집도 아닌데 남의 집에 들어와 살림을 차렸다. 제대로 잘 꾸며진 제비집에 자기들 식으로 다시 내부 수리를 하는 리모델링을 하는 모양이었다. 지푸라기들을 엉성하게 물어 와 자기 둥지를 치고 있었다. 바쁘긴 왜 그리도 바쁜지 지푸라기를 쓸 만큼만 물어 오는 것이 아니라 마구 물어와 둥우리를 치고 있었다. 새집은 문 바로 위였기 때문에 어떤 때는 찌푸리기가 머리 위로 떨어질 때도 있고 아무튼 제비와는 달리 참새들은 말도 많았고 지저분하게 일을 했다. 부지런을 떨며 수선스럽게 집을 다 지어 놓고는 알을 까고 새끼들이 생겼다. 이제 참새 부부는 먹을 것을 쉴 새 없이 물어 와 새끼 참새들을 먹이는 일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어찌나 엉성하게 둥지를 쳤는지 하루는 참새에게 큰 불행이 닥쳤다. 새끼 한 마리가 엉성한 지푸라기 둥지에서 잘못하여 땅으로 떨어져 죽었다. 이틀 후에 또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다.
남의 집에 들어가 제 둥지를 다시 틀어 집을 지은 참새는 여러 가지로 실수를 한 것이다.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간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참새는 자기가 참새란 것을 잠시 잊은 것이다. 남이 잘 쌓아 놓은 집을 자기 것인 양 들어간 참새는 처음부터 잘못 판단한 것이다. 또 하나 잘못된 것은 남의 집에 무단히 들어가 놓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그 위에 둥지를 틀은 것도 잘못된 것이다. 자기 새끼들과 거처할 공간이 넉넉했어야 했는데 그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공간은 비좁았고 새끼들이 자라면서 지푸라기로 엉성하게 지은 둥지는 안전성이 없었다. 새끼들이 땅에 떨어지는 비극을 맛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참새 부모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꽃 가게를 하는 교민이 있었다. 갓 이민 와서 일자리를 찾던 한인 이민자를 딱하게 여기고 그에게 자기 꽃 가게에 직장을 제공해 주었다. 꽃에 대한 경험이 없는 고용인에게 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고 꽃 도매 시장에서 어떻게 사와야 하는지 꽃 사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 선한 꽃가게 주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일 년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고 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고용인은 꽃가게를 그만두었다. 주인은 많이 섭섭했다. 앞으로 자기 가게의 매니저로 쓸 생각을 하며 열심히 가르쳤는데 하루아침에 가게를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꽃가게 주인은 고용인을 붙들 힘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 고용인은 꽃가게를 그만두고 바로 그 꽃가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같은 길에 똑같은 꽃가게를 차렸다. 새로 꽃가게를 차린 그 사람에게 법적으로 잘못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먼저 지은 제비집에 들어가 안 주인 노릇 하는 참새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몬트리올 그해 그 여름 제비집 추억을 반추하며 새 주인들이 참새가 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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