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한국문협회원 / 이원배
무술년 새해 KBS에서 신년 기획특집으로 "신 노년시대"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60대 후반의 노년기에 접어든 내게 혹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없을까 해서 시청했다. 그런데 이제 갓 60이 되는 팔팔한(?) '58년 개띠' 생들의 노년 대처기가 주 내용을 이루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노인이라고 생각해 본적 없는 나는 막냇동생 세대의 노년기 진입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노년층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소위 7080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전 후세대로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연령층이다. 1958년 생들은 그 중반 정도에 해당된다. 그들이 금년에 환갑을 맞는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는 예전 노년층과 사뭇 다르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고, 젊은 시절에는 새로운 문물을 가감 없이 받아 들이던 청바지와 통기타 세대. 중년에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수출전선에서 활약하던 세대. 그리고 IMF의 아픔을 견뎌온 세대이다.
그들은 노후를 걱정하기 보다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여섯 아이들을 가졌던 부모세대의 가난과 아픔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한 두 명의 아이를 가지는 대신 세계무대가 아이들의 것이 되도록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현재는 소위 '낀 세대'가 되어 버렸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80세는 보통이고 90세, 100세 가까이 생존하는 부모세대를 부양해야 하고, 청년실업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자식세대를 걱정해야 한다. 은퇴가 가까웠지만 아래 세대에게서는 '올드패션' 즉 퇴물 취급을 받고, 위세대의 기득권은 물려받기에 아직 요원하다. 92세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평생직업'이라고 여왕 직을 내놓지 않는 동안 아들 촬스는 70에도 그냥 왕자로 남아 있다.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 '신 노년'들이다.
직장에서는 물러났지만 살아야 할 날 들이 아직 많이 남은 주니어 시니어 세대.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앞서 말한 KBS 신년특집에서 독일의 민간사회복지협회 회장인 마하엘 뢰허씨가 노년을 맞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사회의 불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장수시대의 신 노년층은 '쓸모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것, 즉 외국어를 배운다던가, 그림을 그린다던가, 글을 쓴다던가 하는 생산적인 것에 도전해야 한다. 춤을 배워도 좋고, 목공기술을 배워도 좋고, 노래를 배워도 좋다. 그렇게 배운 내용들을 발표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기쁘게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여생의 크나큰 보람이다. 젊을 때는 쓸모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이 들었다고 왜 그 쓸모를 포기하는가. 길을 잃고 헤매는 젊은이들에게 자기가 익혀온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나는 2013년부터 "캐나다 한인 늘 푸른 장년회"를 조직하여 주로 교양강좌 위주로 내 지식을 나누어왔다. 장년이라는 한자어는 길 장(長), 해 년(年), 즉 오래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30, 40대를 뜻하는 장년(壯年)과 발음은 같지만 뜻은 다르다. 내가 임의로 지어낸 말이 아니다. 2012년 한국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10월 2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장년)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공식화 된 말이다. 고용관계법에서 그 동안 사용하던 고령자란 단어 대신 55세 이상 64세 까지를 장년으로 바꾸었다. 65세 이상은 종전처럼 노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나는 65세가 넘어도 스스로 '장년'이라 자신을 호칭한다. 늘 푸른 장년회의 설립목적이 "40대 이상부터 60대까지 중 장년층이 100세 시대를 대비하여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여 보람 있고 행복한 노년을 누릴 것인가 고민하는" 데 있다.
장년 세대.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변화하는 신 문명에 익숙해진 세대. 대화와 토론으로 목적달성을 도출하고 이해와 타협으로 슬기로운 공존을 이루어본 경험이 있는 세대. 이들 세대가 밴쿠버에서 차츰 늘고 있다. 기존의 세태에 물들이 않고 창의적으로 교민사회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능력이 있는 세대이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후배세대를 이끌어주고 선배세대를 밀어 준다면, 항상 늘 푸른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밝아질 것이다. '늘 푸른 장년시대'. 그들이 이끄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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