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수정 : 2018-02-05 10:01

박병호 / 한국문입협회 밴쿠버지부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청마는 우연의 일치 치고는 기막힌 일치라고 생각했다. 이사벨이 3개 국어를 말하는데 모두가 그가 꿈에 그리던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덴마크어, 영어, 그리고 그린란드어.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자체는 환영했으나 걱정거리 하나는 남겨두었다. 그녀가 자기 자리를 위협할 사람이 아니라는 남편의 암시는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감정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태도는  완전한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아무튼 당신이 수십 년 내 남자친구들도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나도 보답은 해야지? 이사벨이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어. 나는 음성으로 내면을 보는 안목이 있으니 언제 나와 전화 한통 할 수 있게 해줘. 여느 사람들처럼 잡채 좋아하면 집에 한번 초대하고." 짐작은 했지만 아내가 생각보다 더 쉽게 반응한 것에 대해 큰 기쁨은 아닐지라도 자신과 이사벨의 그린란드 왕국건설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 같았다.
 
그날 밤 이사벨의 남편은 아내가 걸어오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두 가지가 아닌 일치가 한 번에 터진 다는 것이 우연이야? 동양인들은 영리해서 우연으로 짜 맞춰 접근 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나에게 당신이 조심하라 마라 말할 자격이나 있어요?" 청마처럼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긴 말을 웃음 자아내게 하며 해준 적 있었냐고. 나는 그가 설령 짜 맞춘 우연으로 나에게 목적을 갖고 접근했다 할지라도 그를 믿을 거야. 웃음을 되찾게 해 주었으니. 기획적 만남이었다면 그 노력까지 더 감사할 거야. 내가 사랑에 빠진다 해도 그를 원망하지 마. 당신이 나와 이혼은 안 할 거라면, 그래도 법적인 부인인 나의 몸과 마음이 점점 상해지는 것보다 상한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는 이를 껴안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당신이라면 한 번 초대해서 감사의 와인이라도 부딪쳐야 한다고 했을거야." 둘의 관계는 여전히 그린란드의 큰 빙산처럼 냉랭했다.
 
청마의 영어가 부쩍 늘어 영어가 사전에 몸을 얼어붙게 하진 않았다. 덴마크어를 가르쳐 달라고 말 할 수 있는 날도 언젠가는 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사벨은 그를 만날 시간이 기다려졌다. 다시 부족한 철분을 채울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같은 한국인이자 나이든 남성인 둘이 어쩌면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궁금했다. "인준은 정말 내 영어를 형편없게 생각했을까?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선생 탓으로 돌린 것이 그의 성격 때문일까?" 사실 자신보다 열 살도 더 들어 보이는 인준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좋은 학생으로 생각했던 이사벨이었다. 살 빼려는 생각을 던져버리고 청마가 말한 보름달이 되고 싶었다. 한국이란 나라에 왕조가 재 탄생한다면 둥글고 큰 보름달같은 왕비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돕느라 손에 밧줄의 힘을 견디어 낸 자국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니었다. 바다를 물려받은 것처럼 다가왔다. 그린란드 땅에 대한 그리움은 얼음 땅이 꽃과 야채와 과일로 뒤 덮인 생산의 땅으로 변신해 기대가치가 더해져 왔다. 원래의 그녀처럼 항상 젊고 명랑한 여인으로 돌아온 듯 했다. 남편을 끌고 빙하가 보이는 둔덕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노아의 방주 같은 크고 튼튼한 배를 타고 그린란드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 캔에게 그린란드 독립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었다.
 
이사벨은 덴마크보다 캐나다를 좋아했었다. "아니야 이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혼자말했다. "난 이제 떠날 수 있어 재수 있는 학생을 만났으니까. 25년 동안 쓸만한 놈 하나 낚지 못했는데 이제야 낚았어. 노인과 바다의 늙은 산티아고가 낚은 청새치보다 더 대물임이 분명해, 게다가 이놈은 상어에게 뜯겨 먹히지도 않을 거야. 그를 낚지 못했다면 내 꿈을 실현시킬 생각도 못했어." 부슬부슬 비 오는 날 수업이 끝나고 퇴근길에 둘은 이사벨의 차에서 만났다. 이후에도 집이 같은 방향이라 비 오는 밤 간혹 집에까지 바래다 주는 그녀의 호의를 그가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은 청마에게 이사벨이 벤쿠버 집 값 폭등을 비판하며 말을 걸었다.
 
"지난 3년 동안 집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잘 알지요?" 그녀가 살고 싶었던 넓은 정원과 닭을 키울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이젠 절대로 살수가 없게 된 것은 정부 탓이었다. "맞아, 보수의 탈을 쓴 신민당 정부 탓이야. 빌어먹을. 리치몬드와 칠리왁을 30분만에 주파하는 고속전철하나 만들면 집값 폭등은 끝이 날 텐데." 그것으로도 안잡히면  칠리왁역, 랭리역에 신도시 하나씩 만들면 되고." 청마가 거들었다.
 
빗길을 조심해서 운전했으나 차는 벌서 퀸 엘리자벳 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 잘 아는 스시집이 근처에 있는데 먹고 갈까요?" 이사벨이 청마를 돌아보며 눈을 꿈쩍했다. "예, 그래요." 청마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사벨에게 말을 걸었다. 언젠가 빙하가 떠다니는 바닷가 테라스에서 빙하수로 만든 맥주를 한잔 하고 싶어요. 이사벨과 캔과 아내 수빈과. 그리고 내가 기른 닭이 달려 다니며 낳은 그린란드 청란과 연어로 오므라이스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우리가 재배한 콜리플라워, 그린란드 초절임 고래고기도 함께 곁들고 싶습니다."  "좋지요!" 이사벨이 발그레한 얼굴로 환호했다.
 
다음해 여름 그날은 원래 여름이라 해도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바뀌는 변화 무쌍한 파미르고원 같은 바다가 당분간 며칠은 환한 햇살의 화창한 날씨를 예고하고 있었다. 날씨만큼이나 화사한 두 얼굴, 변화 무쌍한 한 얼굴, 그리고 어둠이 짙게 드리운 또 한 얼굴로 구성된 그들 넷이 뱃길을 나서기 위해 와 있는 이 곳은 누나부트 준주 주도 이칼루이트였다. 동쪽으로 항해해서 그린란드 수도 누크로 가기 위해서였다. 캔이 여전히 불만이 남아있었지만 대세에 따라가지 않으려면 그가 그렇게 싫어하는 이혼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마지 못해 따르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한 주점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람이 북동쪽에서 불어올 때면 정어리 공장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풍겨왔다. 테라스에는 햇볕이 잘 들어 기분이 좋았다."이사벨," 청마가 불렀다. 그녀는 맥주잔을 든 채 옛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가서 그린란드에서 먹을 정어리랑 식품들 좀 구해 올까요?" 청마가 제안했다. "아니야, 당신은 캔과 함께 여기 있어요. 수빈과 내가 갔다 올게요." 이사벨은 햇볕에 적당히 그을린 얼굴을 들더니 자신만만해 하며 말했다. 부자연스럽게 자애로운 모습을 띠고 청마와 캔을 연신 번갈아 쳐다보며 두 남자의 분위기를 살피는듯했다.
 
이사벨과 청마는 언제고 희망과 자신감을 버린 적이 없었다. 오래지 않아 바람이 미풍으로 바뀌었다. 희망과 자신감이 더욱 넘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둘은 조류가 이대로만 유지 된다면 내일은 출항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바람이 동풍으로 바뀌면 단박에 누크까지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온 것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수빈이는 자신이 운전하지 않은 모든 탈 것에 대해 멀미를 해왔고 캔은 틈만 있으면 투덜댔다. 육중한 몸이 차문에라도 슬쩍 부딪치기만 해도 "퍽.퍽." 하며 욕인지 뭣인지 모르는 짧은 된소리를 쏟아냈다. 커누를 타기에는 캔의 몸이 너무 육중해서 일행은 모터달린 소형 보트를 타는 것으로 바꾸었다. 커누는 사실 이사벨의 오랜 로망이었었다. 그녀는 선조들이 아이슬란드에서 커누를 타고 뉴펀들랜드로 왔다는 할머니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벨과 수빈이 배가 표류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몇 주일도 더 넘게 먹을 량의 식품과 식수를 사왔다. "쉰 살이 넘은 늙은 탐험대를 하늘이 도와 주지 않을 수도 없을 거야. 이렇게 바람이 잠잠해진 것 보면." 캔과 청마를 보자마자 이사벨이 여전히 오묘한 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게다가 청마를 봐서도 그래. 그가 원래 좀 특이하게 하늘이 사랑한 사람이니까." 수빈이 청마가 어려서 죽다 살아난 이야기가 두 가지나 된다며 거들었다. "참 우린 정말 큰 파도나 상어의 공격도 이겨 낼 만큼 힘이 남아 있다고." 청마가 캔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때려눕히듯이 으시댔다.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캔도 알고 보면 사실 여러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요령도 알고 있어." 이사벨이 캔을 추켜 세우듯 말했다. "짐들을 내가 배로 나르지요." 기분이 좋아진 캔이 말했다. "함께 합시다. 그리고 투망을 가지고 정어리를 잡으로 갑시다!" 청마가 캔을 따라서며 말했다.
 
청마와 캔은 배에서 고기잡는 도구를 집어 들었다. 청마는 배안에서 단단히 꼰 낚싯줄이 들어 있는 나무 궤짝과 창 달린 작은 작살과 낡은 투망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배의 아래쪽에 내려간 캔은 미끼가 들어있는 통과 작은 몽둥이를 가지고 나왔다. 그 몽둥이는 혹시나 생각보다 큰 물고기가 걸려들었을 때 날 뛰는 고기의 힘을 빼기 위해 기절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닷가로 한참 걸어 갈색 통나무집으로 올라가서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둘은 우선 몽둥이와 작살을 이누이트족의 액세서리들이 걸린 벽 한쪽에 기대어 놓고, 다른 도구들을 그 밑에 놓아 두었다. 작살과 몽둥이는 그 통나무집의 천정 높이만큼 높았다. 길다기보다 통나무집의 천정이 낮은 집이었다.
 
통나무집은 '슈거색'이라고 부르는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이었다. 이누이트족이 단풍나무의 수액을 모아 끓이는 설탕 통나무집이었다. 아궁이와 가까운 어느 한 면의 중간 아래 부분은 좀 심하게 바래서 까만 색을 띄고 있었다. 방에는 침대 하나와 테이블 하나 그리고 의자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그리고 땅바닥에는 장작을 아궁이에 집어 넣어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뭐 좀 먹고 싶지요? 코리안 전통스시와 주먹밥이 있고 김치 팬케익이 있어요." 수빈이 말했다. "여기 식초에 절인 청어요리 하링과 올리브절임 그리고 피자가 있어요." 이사벨이 꺼내며 말했다. "여기도 있네요." 닭 앞가슴살 통조림과 마른 알버타 쇠고기 육포를 꺼내면서 캔이 말했다. "이건 스뫼레브뢰 호밀빵 샌드위치예요. 그린란드에 살려면 이 맛 정도는 미리 길들여야 할 거예요." 언제 준비해 뒀는지 청마가 꺼내며 말했다.
 
"둘은 여기 있어요. 청어든 정어리든 며칠 먹을 분량만 잡아서 얼음에 채워 놓은 다음 바로 돌아올게요." 캔과 청마가 문을 열고 나갔다. "돌아오면 우리 둘이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나눴는지 들려줄게요." 이사벨이 두 남자의 등뒤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한참 후 돌아왔을 때 두 여자는 하나의 의자에 함께 앉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이미 해도 진 후 였다. 청마는 자기의 체온을 나누어 주려는 듯 자기 검은 털옷을 벗어 수빈의 몸에 둘러 주었다. 그것을 본 캔도 묵은 가죽 옷을 벗었으나 이사벨의 몸이 아니라 어깨에 던지듯   감싸 주었다.
 
늙어 처져가는 어깨임이 분명한데도 아직 튼튼한 여성으로 착각하고 있는 여자, 척박하고 강풍이 내리는 그린란드에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여자가 밉다가도 남자로서의 여자에 대한 일말의 보호본능 같은 게 남아 있었다. 머리를 떨구고 잠들어 있는 뒤 목덜미는 아직 희고 탱탱해 보였지만 아랫배에 나온 뱃살은 그녀의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두 남자는 각자의 부인 옆에서 좀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고기 잡을 때는 여름 밤이 좀 춥기는 했어도 한기를 느끼지 않았으나 금새 몸을 녹이는 잠에 빠져 들었다. "캔, 청마,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이사벨이 두 남자의 한쪽 어깨씩 양쪽 어깨 위에 손을 올려 놓으며 깨웠다. 캔은 눈을 뜨고도 먼 꿈나라에서 현실로 되돌아 오느라고, 청마는 마음의 눈은 떴으나 떠지지 않는 육체의 눈으로 인해 한참이나 걸렸다. <3>편에 계속 



한인 사회의 중요한 소식을 캐나다 서부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제보 이메일: news@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 투고안내
밴쿠버 조선일보에 투고는 편집부 이메일(news@vanchosun.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투고 시에는 본인 사진과 간단한 소개, 연락처를 첨부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아니하는 것이 아니라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Lotus Chung
일몰을 기다리며 2018.02.19 (월)
무술년 새해가 왔다. 모두 바라보고 싶은 새해 아침, 떠오르는 일출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앞으로의 바램과 지난 세월의 아쉬움이 교차한다. 여러 해를 지나며 밝아온 새해 첫날, 지나간 추억을 마음에 담은 채 새해에는 조국 땅 대한민국에서 모처럼 새해 첫날을 맞고 있다. 일출 기회보다는 가까운 서해 일몰을 맞이라기 위해 여유로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새해 아침이 지난 오후 한나절, 눈에 밟히는 해안가가 사뭇 낯선 풍경이다....
서정식
          하 늘 끝과 바다 끝이 닿아          한 줄로 이어진 곳 이라 해도          섣불리 수평선이라 부를 수 없구나.          멀어 가물한 작은 물결은          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도          찢겨 나가는 물방울로 흩어지고          바람에 불려 부대끼며          덮치는 큰 파도에 밀리고 있었네. ...
조규남
크루즈 단상 2018.02.13 (화)
작년 겨울에는 밴쿠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그 까닭인지, 새해가 시작되면서 연초에 햇빛 많은 멕시코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모처럼 저렴한 크루즈가 나와 전화로 예약하였다. 공항서 내려 부두까지 가는데 그곳 크루즈에서 제공한 관광버스를 탔다. 이미 예약 시 추가로 낸 그 버스 가격이 거의 택시 비용과 맞먹었다. 먼저 다녀온 분의 말에 의하면 Blue Shuttle 이라는 것이 있어, 이것을 이용하면 좀 저렴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예약한 버스를...
이종구
희망과 절망 사이 2018.02.13 (화)
아무리 거친 바람도 바람결  틈새가 있다아무리 드높은 파도라 해도 물결 새 쉴 참이 있다아무리 척박한  삶이라 할지라도  설마 웃음 방긋 지을 일 없으랴 거친 바람 부는 사이 고요드높은 파도 몰아치는 틈새  평온척박한 삶의 궤적에서 반짝이는 기쁨의 조약돌을 줍는 사람은희망과 절망 사이그 좁은 간극에서도 행복을 유물처럼 발굴하리니 겨울 종탑에 갇혀그 존재마저도 잊혀져 가는 그대의녹슨 종을힘차게...
김해영
고사목 2018.02.13 (화)
마음 닿는 곳에 하늘이 있고 그 하늘 닿는 곳에 하늘과 땅 연결이라도 하듯이 소복 입은 무녀처럼 하늘 보고선 너 이 세상에 올 때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왔듯이 죽어서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순백으로 서서  뒤돌아보면 멀어지는 모습에 스쳐 가는 수많은 영혼의 춤 바람에 꽃씨 흩날리듯 인연을 날린다 아이처럼 웃음 지으며 산허리에 서서
전재민
그린란드<2> 2018.02.05 (월)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청마는 우연의 일치 치고는 기막힌 일치라고 생각했다. 이사벨이 3개 국어를 말하는데 모두가 그가 꿈에 그리던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덴마크어, 영어, 그리고 그린란드어.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자체는 환영했으나 걱정거리 하나는 남겨두었다. 그녀가 자기 자리를 위협할 사람이 아니라는 남편의 암시는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감정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태도는  완전한...
박병호
"아이쿠, 이를 어쩌나. 다 날려 버렸네."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소리가 나왔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했는데, 카카오톡*에 저장되어 있던 대화방과 자료 파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껏 사람들과 편리하게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연기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미리 백업으로 저장해 두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내가 일부러 한 게 아닌데 대화방에서 홀연히 빠져나간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카톡 메시지가...
정재욱
맨 아랫간 서랍 2018.01.29 (월)
요즘, 골방 서랍장을 정리하는 날이 부쩍 늘었다놓지 못해 떠나지 못한 나의 어제들이 매미 허물처럼 모여 사는 곳돌쩌귀도 녹스는 늙은 세월에 대부분은 떠나고 몇은 아직 남아서 민속촌처럼 함께 저무는 그곳엔 늦가을 저녁의 체온 닮은 서늘한 바람이 분다 어린 별바라기의 못 이룬 꿈들도, 이민의 자갈밭에 무시로 무릎 깨던 한낮도, 에움길에 갈증 앓던 사추思秋의 그리움도… 이제는 모두 치수 안 맞는 치마 허린데! 많은 것을 버리고도...
안봉자
지난 연말 2018.01.29 (월)
새해가 시작된지도 얼추 한달이 다 되어간다. 아들 내외와 같이 연말 연시를 보내려고 무거운 가방과 가방 만큼이나 부풀대로 부푼 꿈을 제 각기 지닌채 밴쿠버를 떠나 딸 아이가 살고 있는 오타와로 향하였다. 거기서는 구하기 힘들거나 좀더 비싼 한국 식품들, 즉 순대나 오징어, 멸치와 풋고추 등을 챙겨서 꾸역 꾸역 밀어 넣었지만 터질듯한 여행 가방이 조금도 짐스럽지 않았다."갖고 계신 옷 중에 가장 따뜻한 옷만 챙겨 오세요." 라는 딸의 충고를...
박인애
겨울 향기 2018.01.29 (월)
겨울 냄새가 짙다. 밤새 내린 눈을 밟으며 출근하는 마음은 어느새 동심이다. 날씨는 매섭도록 차갑지만 그만큼 맑고 상쾌한 영하의 아침은 한껏 겨울 맛을 돋군다. 내리면서 얼어버린 눈이 발에 밟히는 감촉도 또 다른 맛을 더해 준다.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아야 서민들 생활에 좋다고들 하지만 사실 서민들이야 한 철 벌어 한 해를 살아야 하는 철 농사, 장사꾼들일진대 겨울이 겨울답고 여름이 여름다워야 더 신이 날 일이다....
최원현
겨울 나그네 2018.01.22 (월)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백철현]겨울 나그네                                                          겨울강 한복판에서오래된 우산을 접는다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데처음처럼 하늘이 열리고나를 휘감아 흐르는 강물은이내 소용돌이치면서 저만치하늘이 맞닿은 곳으로 사라져 간다남은 길을 산다는 건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고질병 같은또...
백철현
박 선생 어머니 2018.01.22 (월)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김춘희]박 선생 어머니                                                             김 춘 희   거의 40년을 살았던 몬트리올을 떠나 밴쿠버로 완전히 이사 오기 까지 족히 3년은 걸렸으리라. 살던 집을 팔고 임시로 아파트에 살면서 일 년에 두세 번 밴쿠버 사는 아들 집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남편이 가고...
김춘희
기쁨이 슬픔에게 2018.01.22 (월)
기쁨이 슬픔에게 이원배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나는 너였다.우리는 한 배를 타고 났다어느 봄날, 너와 나동산에 활짝 핀 꽃 구경 가다가진흙탕에 넘어졌다. 미끄러졌다.너는 엎어져 진흙탕을 내려다 보며여기 비를 내린 하늘을 원망했지만나는 엎어져 하늘을 올려다 보며푸르게 깔깔 웃는 심술쟁이 뭉게구름을 보았다.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착실하게 쌓아 올린 명예, 재산, 지위의 상실태산도 들어 움직일 듯한 젊음의 소멸친구의 배신, 가난의...
이원배
진안대군 2018.01.17 (수)
진안대군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연말 연시를 맞이하여 본인의 뿌리를 돌아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라 생각 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특히 이민 일세대인 경우는 우리 자신이 앞으로 캐나다에서 뻗어 나갈 우리 후손들의 시조가 되는 셈이기에 말이다.족보(族譜)의 사전적 의미는 한 족속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밝혀 놓은 책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이민 초기 애들이 학교에서 가족의 뿌리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이현재
캘린더 2018.01.17 (수)
오정 이봉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캘린더 한 장을 넘기면 꽃이 피었다 새가 울었다 캘린더 한장 또 한장을 넘기면 바람이 불었다캘린더 한장마다 웃고, 때로는 울고, 허전해 하던 지나간 얼굴…착하게 부지런하게 참되게 그리고 행복하게…밤마다 내일과 다짐한 캘린더캘린더에는 언제나 한장뿐인 오늘과 두툼한내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정 이봉란
배꼽 2018.01.17 (수)
배꼽박정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한국에서 십여 년을 분만실 간호사로 일했었다. 분만 중에는 많은 응급상황이 발생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위급한 게 탯줄 문제이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한 몸으로 살지만, 사실 둘은 서로 붙어있는 게 아니라 겨우 가느다란 탯줄 하나로 연결돼 있을 뿐이다. 즉, 아기에겐 이 탯줄이 유일한 생명줄인 셈이다. 그런데 이 탯줄이 꼬이거나 눌려 막히게 되면 몇 분 안에 아기의 심장이 멎는, 그런...
박정은
비누 사랑 2018.01.08 (월)
비누 사랑                                          권순욱     지난 5월 교회에서 마련한 효도 관광을 다녀오면서 받아온 선물 중에 요즘 내가 애용하는 것이 세숫비누이다. 그 비누를 사용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보니 비누의 원형은 점차 변하여 처음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타원형을 이루고 겉에...
권순욱
'그래도' 섬 2018.01.08 (월)
' 그 래 도' 섬                          늘 물     남 윤 성     '그래도' 섬은 대체로 세상에서 잊혀진 자들이 찾아가는  섬이라 한다. '그래도' 섬은 대체로 세상에서  버려진 자들이 찾아 가는  섬 이라 한다. 생의 밀물 한떼 들어 오기도 하고  생의 밀물 한떼 나가기도 하고 들고 나고 하는 가운데   잊혀진 자의 입에  헛된 것...
남윤성
달랑 한 장 파리한 모습으로 달려있는 2017년 12월 저녁,   한줌이나 될까 몰라 마른 꽃잎 같은 아흔 여섯의 내 어머니 고관절이 부서져 응급실에 드셨다.   ‘우리주님은 내 기도를 잊으신 것일까 왜 나를 안 불러 가시는지’ 꺼질 듯 가물거리는 가슴 말에 내 사지가 말라가는 듯 아프다.  오래 사는 일이 그토록 미안해 할 일인가! 너무 오래 살아있다 늘 미안해하시던 어머니 그 모습 안타까워 함께 우는 12월의 어둔 저녁 아무도 모르는...
추정 / 강숙려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Copyright © vanchosun All rights reserved
☎ 604-877-1178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