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사랑
권순욱
지난 5월 교회에서 마련한 효도 관광을 다녀오면서 받아온 선물 중에 요즘 내가 애용하는 것이 세숫비누이다. 그 비누를 사용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보니 비누의 원형은 점차 변하여 처음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타원형을 이루고 겉에 상표 이름까지 새겨져 있던 이 비누는 내가 사용할 때마다 자기 살이 점점 녹아서 지금은 좀 볼품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비누를 바라볼 때마다 참으로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그건 내가 사용할 때마다 비누는 나의 더러움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비누는 사용할 때마다 자신을 녹여서 없어진다. 만일 비누가 사용할 때마다 녹지 않고 본래의 모양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사람이 지기 희생을 통해 작게는 가정과 이웃과 나아가서는 사회와 국가에 공헌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로서의 쓸모가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것을 지나치게 아끼려는 사람은 마치 물에 잘 녹지 않는 비누와도 같이 인색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백화점 왕이었던 워너메이커가 한 말이 기억난다.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는 삶만큼 숭고한 삶은 없다”는 것이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인간관계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게 마련이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고,
동료애가 그렇고,
전우애가 그렇다.
비누처럼 나를 희생해 상대방을 돋보이게 하는 삶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삶이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이런 희생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 사랑이 아름다운 건 상대방의 몸에 찌든 때를 씻어 겉모양을 아름답게 할 뿐 아니라 마침내는 향기 나는 모습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가끔은 따뜻한 가슴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녹여 작아지는 비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 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성경은 “진정한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섬김의 희생 없는 사랑은 거짓된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쉬지 않고 실천해 가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곧 하나님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은 우리의 성품 속에 꼭 있어야 할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우리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그분을 믿고 의지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믿음 안에서 사랑의 수고를 다 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기 몸을 녹여서 더러움을 없애주는 비누처럼….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요한복음 1:17)”
S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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