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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7-12-22 12:59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시

당신이 오지 않는 저녁

둑길을 따라 긴 산책을 나선다

물가에 속삭이는 잡풀과 흰 꽃들

그들의 작은 목소리를 알지 못해도

물 위에 퍼덕이는 백로와

청둥오리의 다정을 흉내 낼 수 없어도

마냥 흐르는 물소리가 좋다

막힘 없이 돌아가는 저 몸짓

여울을 훌쩍 흘러가는 넉넉한 소리

노을 속에 붉게 지는 해와

바람에 안기는 산과 구름이 모두

전설이 되고 역사가 되는

흐르는 소리의 은유를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당신은 내게 오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마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깊고 또 높아 

가슴 위 멍울마다 엉겨 붙은

내 마음의 응어리를 한없이

부끄러워하면서 강둑을 걷는다

 

당신이 오지 않는 저녁

속을 박박 긁어 파는, 나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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