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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7-11-24 15:26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 수필

바람 쐴 겸 공원을 찾았다. 오랜 만에 산책하는 기분이 삽상하다. 공원은 도시의 폐와 같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베풀고, 젊은이들에겐 낭만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귓가를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결과 만나고, 녹음 사이로 속삭이는 새들과도 만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오솔길에서 백발노인과 마주친다. 한 쪽으로 물러서서 노인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노인이 미소를 머금고 합장한다. 뜻밖의 합장에 저절로 고개 숙이며 인사 드린다.

백 년 수령(樹齡)도 더 될 법한 소나무들과 만난다. 나무 가지들이 구부정하게 뻗어나간 곡선이 멋들어져 기가 막힌다. 대금산조 한 가락이 허공 중에 뻗어 간 것일까. 소나무들은 수많은 뾰쪽한 솔잎들로 얼마나 오래 동안 바람과 세월을 빗질하여, 수려하고 고아한 멋을 지니게 된 것일까. 경탄스러워 소나무에게도 인사한다.

공원엔 무궁화, 배롱나무 꽃, 자귀나무 꽃 등 여름 꽃들이 피어 있다. 꽃들로 인해 등불을 켠 듯 환하다. 꽃나무들마다 최상의 인사법으로 맞아주니 덩달아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무한으로 열려있는 맑은 하늘을 보며 빛나는 햇살을 온 몸으로 받는다. 티끌 하나 없이 열려있는 짙푸른 하늘에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가 낭랑히 울려올 듯하다. 한없는 깊이로 맞아주는 하늘에 감복되고 만다. 하늘을 우러러 고개 숙이고 인사를 올린다.

할머니 한 분이 두 세 살짜리 손자일 듯한 아이의 손을 잡고 돌층계를 한 계단씩 내려오면서 “옳지! 잘 한다.”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냥 비켜가는 것만으로는 너무 무심할 듯싶다.

“아기가 너무 귀여워요.”

한마디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린다.

“감사하오이다. 손자와 노는 데 그만 정신이 팔려서 길을 막고 말았습니다,”

팔순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마음이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해진다.

왠지 누구에게 또 무엇에도 고개 숙여 감사 드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마음의 소통과 삶의 조화가 아닐까. 일상에서 경배하고 감사 드려야 할 순간이 수없이 많았건만, 왜 고개를 숙이지 못했을까. 절하며 감사해야 할 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을까. 먼저 절하지 못한 미숙함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자연과 삶의 주변엔 감사와 은총으로 가득 차있다. 두 손을 모으고 절하고 나면, 심신이 맑아지고 안온해진다. 감사의 인사는 일상의 발견과 깨달음에서 피어나는 마음의 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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