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 난간에 매달린 으아리 잎들이 곧 떨어질 듯 말라간다. 초가을까지도 가녀린 줄기에서 크고 화려한 꽃들이 지치지 않고 피고지고 하더니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진다. 잔디도 푸르름을 잃고 누렇게 바랬다. 나무들은 여름의 치장을 버리고 본래 색을 드러낸 채 편안히 쉴 준비에 들어간 모양새다. 가을 차림새는 아무리 꾸며도 요란하지 않고 정취가 있다. 용담과 아스타가 진한 색을 뽐내고 좀 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가 흐드러져도 그윽하게 서로 어우러진다. 차분한 가을의 분위기 탓이다. 비어가는 마당에 아침부터 새들이 날아와 풍성한 먹이들을 줍느라 분주하다. 지난 계절 동안 나뭇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새들이 겁 없이 마음껏 마당을 누빈다.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 아침에는 텅 비우기 직전의 허무와 고요가 있다. 가을 아침의 대기 속에서는 마음자리가 투명해진다. 허상과 욕심들이 어느새 빠져나간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대기와 식물과 새들과 친구처럼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잠깐 동안 선물처럼 주어지는 산뜻한 즐거움의 시기이다.
이 계절엔 남편과 함께 산책 삼아 동네 안에 있는 음악감상실로 즐겨 외출하곤 하는데 가을만의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음악감상실은 아날로그 감성의 엘피 음반으로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인데 토요일이면 연주자를 초청해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이런 음악감상실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근교의 시골이지만 찾아오는 연주자들의 수준은 높다. 질 좋은 음악을 작은 공간에 모여 오붓하게 감상하는 순간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이전 시대 귀족들이 저택에 연주자들을 모셔와 가까이에서 음악을 듣는 호사를 누렸지만 그런 귀족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음악을 듣고 편안한 마음으로 공유하는 것이 만족의 비밀이다. 이곳에 모인 청자들 모두 같은 마음이리라.
가을로 들어서며 열린 첫 음악회의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소나타였다. 피아니스트가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자 베토벤의 ‘열정’과 ‘비창’을 실은 선율이 가을밤의 대기를 로맨틱하게 채웠다. 연주자가 긴장해서 그런지 연주가 툭툭 끊어져서 베토벤의 열정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래도 피아니스트의 정성만은 충분히 느껴졌고, 베토벤의 선율은 가을밤을 풍성하게 채울 만큼 아름다웠다.
두 번째 연주회는 비올라 4중주였다. 익숙한 파헬벨의 <캐논>으로 시작했다. 네 명의 주자는 선명하게 다른 음색을 보여주었다. 주저하듯 조심스레 첫 주자의 연주가 시작되고 이어서 맑은 소리의 연주가 이어진다. 세 번째 주자는 거침없고 경쾌한 음색으로 마지막 주자는 자신감 넘치는 활달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다양한 음색이 어우러지는데도 화려하기보다 정감 있고 차분한 것이 영락없이 가을을 닮았다.
마레의 <비올라 4중주 조곡>, 바흐의 <샤콘느>, 비발디의 <4대의 비올라를 위한 콘체르토>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비발디의 콘체르토는 원래 바이올린을 위한 콘체르토를 비올라용으로 편곡한 것이다. 당시 비발디는 자신이 일하던 베네치아의 피에타음악원 여학생들을 위해 작곡한 것 중 특별히 좋은 12곡을 선택하여 ‘조화의 영감(L’estro armonico)이라는 이름의 협주곡으로 발표하였다.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곡 형식을 차용해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와 관심을 끌었다. 그 중 10곡이 오늘 연주한 B단조 곡이다. 후에 바흐가 <네 대의 챔발로를 위한 현악합주곡>으로 편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혹자는 독주 악기가 4대나 되는 것은 피에타음악원 학생들의 기량을 좀 더 많이 보여주려는 선생으로서의 비발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추측해보기도 한다. 비발디의 따듯한 마음이 담긴 곡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당시에는 자유롭고 기발한 형식의 곡이라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가 듣기에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비올라 주자들은 각자의 개성대로 낮고 신중하게, 맑고 선명하게, 자유롭고 매끄럽게, 활달하고 강하게 독주 파트를 연주하며 서로 어우러졌다. 가끔씩 어긋나고 음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가을을 담은 음색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가을에는 살짝 서툴고 삐걱거려도 모자라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빈 공간이 감사로 채워져서일까. 아침마다 비어가는 마당을 보며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진다. 비어가는 것은 어쩌면 감사와 기도를 배우는 소중한 기회인지 모른다. 내가 종교인이 아님에도 감사하는 마음과 기도가 고요함 속에서는 저절로 차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 텅 비고 고요한 계절이 가져다 주는 진정한 풍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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