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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전령이 내게로

조정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11-07 14:02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수필

어둠이 내린 바다는 아늑하고 고요하다. 밀물에 출렁이던 통나무들의 부딪힘도 사라지고 사방은 번잡과 소요에서 벗어나 있다. 바쁘게 주변을 살피던 불루제이들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고 바람에 너울대는 노란 플라타너스 잎새들만 적막을 깨우고 있다. 오늘 밤, 은하수 길이 남서쪽으로 빗겨 흐르는 밤하늘은 별들의 들판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달님이 살포시 웃고 구름속에 박힌 별들은 보석처럼 빛난다. 하늘을 향한 나무들과 바닷속 고래들 모두 소망을 키우기 좋은 고즈넉한 가을밤이다.

밴쿠버에서 38km 북쪽에 위치한 폴튜 코브 캠핑장은 두 달 전 예약이 되어 있었다. 하우 해협의 바닷가, 56에이커 주립 공원에 자리한 이곳은 두 개의 통나무 집과 화덕, 바베큐 테이블, 전기 충전기를 갖춘 44개의 캠핑장 그리고 화덕과 바베큐 테이블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16개의 캠핑장이 있다. 연중무휴의 폴튜 코브 캠핑장은 스콰미시, 위슬러와 가까워 많은 RV 캠퍼들이 장기간 머물며 등산, 산악 자전거 타기, 카약킹, 카누잉을 즐기는 곳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곳에서 남편과 함께 때로는 친지들과 연례행사처럼 캠핑을 하고 있다. 멀리 섬들 사이로 해가 기울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때면 사람들은 잔잔한 바다 위에 카약을 띄운다. 이때쯤 청둥오리와 기러기들은 줄지어 바닷가를 오가고 새끼를 거느린 바다 사자들이 가까이서 얼굴을 내민다.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음식물과 조리 기구는 곰과 레쿤을 유인할 수 있기에 차 안에 넣는다. 지난번 캠핑 때는 레쿤들이 텐트 옆 틈으로 음식물 가방을 끌어내 포식을 하고 주변에 지저분한 흔적을 남겨 놓았었다. 드디어 캠프파이어의 불꽃이 주위의 어둠을 밝힐 때면 마주 앉은 이의 말에 귀 기울이며 감자가 포실 하게 익기를 기다린다. 긴 세월 함께 살며 겪어낸 고통과 기쁨을 담담히 나누다 보면 어느새 밤이 깊어 주위의 RV 실내 등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한다.
나는 숨을 멈추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저 먼 공간에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본다.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별들이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에서 별 중의 별 시리우스와 아득히 먼 북극성을 찾아본다. 밤하늘의 여왕 시리우스는 오늘 밤 검푸른 바다의 고깃배와 연어들의 나침반이 되고 있겠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북두칠성은 서로 다른 밝기의 빛으로 북쪽 하늘에서 반짝인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별자리 옆 알코르도 보일 듯 말듯 희미하게 빛난다.
‘100여 년 전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반 고흐도 이런 밤하늘을 보았을까! 구심점을 향해 원을 그리는 구름 속 별 하나 하나와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밤하늘은 그의 고뇌 어린 영혼의 표현이었겠지. '라마르틴느 광장의 밤의 카페'에서 밝게 빛나는 큰 별들은 그가 그리던 가족과 고향의 상징 이었을까---.'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을 영혼이 담긴 예술로 승화시킨 반 고흐를 생각한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며 가난과 자기 존재의 공허함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예술혼으로 극대화 시켰다. ‘별이 빛나는 밤', ‘라마르틴느 광장의 밤의 카페', ‘편백나무와 별이 있는 길', ‘까마귀가 나는 밀 밭'---, 나는 고흐 그림의 따뜻하고 강렬한 색감, 생동감 넘치는 화법에서 예술과 삶에 대한 그의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다.

국가 간의 전쟁, 종교 극단주의자들의 갈등과 테러, 지진, 산불 등의 자연 재해, 방사능 유출, 다양한 범죄로 인한 살상---, 근래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 벼랑 끝으로 질주해 가고 있는 듯하다. 매일 접하는 뉴스 속 세상엔 탐욕과 분노, 무지로 인한 불의의 악순환이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 절망적인 세상을 사는 나는 어떻게 내 안의 분노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 밤, 모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고요 속에 밤하늘을 볼 수 있음은 큰 축복이다. 434 광년 거리에서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는 북극성---,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무한한 우주 공간의 불가사의한 신비 앞에 나는 깊은 경외심을 갖는다. 밤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은 온 천지를 고루 비추어 사방은 그지없이 아늑하고 평화롭다. 포근한 우주에 안겨 살아있음을 실감하며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두려움을 직시하라, 내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며 더불어 함께하라,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에 머물라---. ’ 태양과 달, 별빛이 내려오는 대지 위에서 맑은 공기로 숨을 쉬며 다른 이들의 노고로 내 생명이 지탱 되고 있음을 자각한다. 언제나 자연과의 교감은 삶의 단순한 진리를 일깨운다.
저 멀리서 나타난 별똥별 하나가 하늘의 전령 되어 손에 잡힐 듯 내게 다가온다. “삶의 축복은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축복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당신, 이제는 누군가를 축복하며 삶의 기쁨을 나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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