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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7-09-15 14:51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수필

할머니는 내게 항상 친절 하였다. 언제나 보아도 남자들이 입는 밤색 재킷에 두터운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일흔을 훌쩍 넘어 여든에 가까운 나이였으나 등과 허리도 구부정하지 않아 꼿꼿한 자세로 일관 하였다. 짧게 잘라 뽀글뽀글 파마한 할머니들과는 달리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가르마타서 쪽지은 머리가 남 다른 인상을 풍겨 주었다. 젊어서는 한 인물했을 법한 단아한 얼굴로 복사꽃같던 처녀 시절과 새 각시때를 저절로 떠 올리게 하였다. 그러나 투박한 손은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듯 손톱이 깍을 것도 없이 닳은데다가 살과 손톱 사이가 벌겋게 쩍쩍 갈라져있어 고달픈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유달리 관심있게 본 것은 손에 들고 천천히 돌리는 갈색의 염주 때문이었다. 한알 한알 힘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겨지는 동그란 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손에 길 들여져 반짝 반짝 윤기가 났다. 나는 그앞을 지날때마다 왼손에 쥐어져 물레방아 처럼 돌아가는 염주가 기이하고 신비스러웠다.대 여섯살때 나의 할머니도 꼭두 새벽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중얼중얼 기도문믈 외우는 것을 보아온 터였다. 더구나 여기는 분주하게 사람이 오가는 장터여서 더욱 특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는 궁금하여 어떤 염원을 가지고 염불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당신 아이들이 복을 많이 받을 것과 온 세상이 화평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이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간절한 바람과 가슴을 가득채운 이룰 수 없는 그리움이 하나의 행위로 녹아 그녀를 형성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크고 작은 함지박에 우렁과 바지락, 생 새우들이 햇볕에 비늘을 반짝이며 수염을 길게 뻗고서 누군가가 사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렁을 아주 좋아하는 나는 사나흘에 한번씩 우렁을 샀는데 큰 사기 공기에 수북하게 담은 것은 만원, 그보다 좀 작은 공기는 오천원 이었다. 동생집에 갈때는세 공기씩 샀지만 나는 보통 만원 어치를 사서 고추장, 식초, 설탕, 마늘과 파 그리고 깨소금을 넣어 주물러 무치면 쫄깃쫄깃 한게 입맛을 살리기에 아주 좋은 식품이었다.이미 삶아 껍질을 까 놓아서 손 볼것도 없었다.

탱글탱글한 깐 우렁 살은 짙은 회색과 어두운 흑색을 띄고 있어서 신선하고 맛갈스럽게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어렸을때 엄마가 논에서 잡아 온 우렁을 요리 해주었던 그 맛을 상기시켜 주었으며 친척 언니 오빠들과 같이 모심기 전에 물을 가득 채워 놓은 논에서 검정 치마에 희 저고리를 입고 바람이 물위에 잔잔한 무늬를 그리고 있을때 검게 엎드려 더듬이를 뻗어낸 우렁을 잡았던 즐겁고 행복한 어린 날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우렁은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 피라미나 붕어를 잡기보다 훨씬 수월했다.

오전 열시 쯤 가면 저 만치서 할머니가 보였는데 팔아야 할 물건들을 이미 보기 좋게 정리 정돈을 끝내고 방석위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면 한사코 만류하는데도,돌아다니며 커피를 파는 리어카 아줌마에게서 커피를 사주었다. 천원 짜리 커피는 보기 보다 맛이 좋았다. 할머니의 정이 듬뿍 들어가서였을까?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때로는 비 바람이 또는 땡볕이 들어와서 힘들어도 의연하게 앉아 자신의 삶을 녹여내는 그녀가 진정으로 성숙한 어른으로 보여,자주 다니며 우렁을 산 후 짧은 말들을 나누다가 의례적인 인사를 넘어 우리는 서로 사적인 일을 주고 받을만큼 가까워졌다.

그녀는 영감님이 일찍 세상을 뜨고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딸과 아들을 뒷바라지 하는 재미로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아이들이 결혼하여 외국으로 떠난 뒤로는 참 적적하다고 하면서 먼 하늘을 지긋이 보며 한숨지었지만 한편으로는 훌륭한 아이들을 둔 여늬 엄마들처럼 자녀들에대한 뿌듯한 자랑스러움도 살짝 엿보였다. 아이들은 그저 크리스마스에나 한번씩 돈으로 선물을 대신한다고 하였다. 남의 나라에서 사는게 그리 호락 호락한게 아니라고 생면부지의 아들과 딸을 변호해 주며 어느 덧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나의 엄마를 생각하니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다가 며칠간 가 보아도 그녀의 좌판대는 비어있고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혼자 살고 있으니 하면서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다. 한 열흘만에 나타난 할머니는 친목계 모임에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일주하였다고 나를 보며 반가워 하였다.

시간이 지난만큼 우리는 더욱 친해져서 화장실 갈 때와 점심식사 할 때에는 내가 대신 좌판에 앉아 우렁 등을 팔아 주었다. 가격과 상품의 질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손님들에게 자랑 할 만큼 훤하게 알아서 할머니를 돕는데 일조 하기도 하였다.

카나다에 되돌아 올 무렵 "나 이제 카나다 가요."하니까, "내가 저녁 한끼 사야지."하더니 내게 소박한 순두부 백반을 사주어 따뜻하고 다정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나는 답례로 뻐꾸기 울음소리 들으며 뜯었던 보드라운 쑥을 한 소쿠리 주었다. 새 소리 뒤섞인 물씬나는 쑥 향기가 살 맛 나는 소중한 인연을 더욱 강한 고리로 묶어 주었다. "쑥버무리 하면 참 맛나겄네."하는 소리를 뒤로 한채, 나머지의 시간들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원하면서 나는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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